블로그 325

만봉림(萬峰林, 완펑린)과 마령하 협곡(마링허시에구)

석림에서 북대촌, 북대촌에서 뤄핑, 뤄핑에서 씽이를 거쳐 만봉림까지 왔습니다. 뤄핑에서 씽이로 이동하는 도중, 윈난성과 구이저우 성의 경계를 알리는 비석 앞에서 버스기사는 사진을 찍으라고 일부러 차를 세워주었지요. 센스 만점이었네요.^^ 귀주(구이저우)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땅으로 산과 구릉이 전체 면적의 97%로 '평평한 땅이 세 척 이상 되지 않고, 3일 이상 맑은 날도 없으며 그 맑은 날에도 겨우 3시간 정도 햇빛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중국에서도 오지랍니다. 버스 요금에는 여전히 보험료가 더 붙었습니다. 굵은 비가 쏟아지는 밤, 씽이에서 1번 버스를 타고 만봉림 매표소 앞에서 하차, 마을까지 걸어 들어가 초입의 민박에 방을 잡았습니다. 현판의 이름이 멋진' 峰林有閑居', 씽이에서 45km의 거리입..

따리(大理)와 석림(石林, 스린)

여강에서 출발한 버스가 따리에 가까워지면서 '얼하이 생선', '바이족 풍미' 같은 음식점 간판과 얼하이 호수, 창산에 따리 삼탑, 전통 가옥들이 보입니다. 따리 남문입니다. 바이족의 오래된 도시, 따리 고성은 여강보다 소박합니다. 남문 앞의 뜰이 예쁜 MCA GH에 숙소를 잡고 고성 산책에 나섰습니다. 대리석으로 유명한 동네답게 가게마다 그 돌로 만든 소품이 많습니다. 북쪽으로 통하는 부흥가를 기웃거리다가 음악소리에 끌려 들어간 가게에서 표주박 모양의 전통악기로 연주한 CD를 사고 카페가 많은 양인가 한쪽에서는 바틱으로 염색한 침대 시트도 한 장 구입. 남문 성루에 올라 성벽길을 걸었습니다. 멀리, 따리의 상징인 세 개의 탑이 보이고 잘 구획된 시가지에는 검은 기와에 하얀 벽의 바이족 전통가옥이 많습니다..

호도협(虎跳峽, 후타오샤)과 여강(麗江, 리지앙)

아침 일찍 여강 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의 차오터우에서 하차, 만년설인 옥룡설산(5596m)과 합파 설산(5396m) 사이의 깊은 협곡인 호도협에 들어왔습니다. 입장료 50위안. 매표소 부근 잡화점에 1박 2일의 트래킹 기간 동안 캐리어를 맡기고(1개 5위안) 산에 오르면서 중간, 장생촌 민가에서 점심 준비로 찐 옥수수를 샀습니다. 점점 고도가 높아지면서 구름은 발아래. 우리가 지나온 마을과 주차장의 차들이 아주 작게 보이는 그 옆으로 엄청난 굉음을 내며 강물이 흘러갑니다. 왼쪽의 합파설산과 오른쪽의 옥룡설산은 비구름 속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 여기는 5월에서 8월까지가 우기입니다. 28번의 오르막이 이어진다는 곳, 비가 내려 질퍽한 급경사의 28 밴드에서는 정말 힘이 들었습..

윈난의 더친(德欽)과 샹그릴라(香格里拉, 향격리랍)

야딩에서 나와 따오청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윈난으로 가는 길에 샹청을 지납니다. 번화한 거리의 가로등에 티베트어로 '옴마니반메훔'이 쓰여 있는 특별한 동네입니다. 쓰촨 성의 서부는 대부분 높은 설산과 척박한 땅입니다. 오늘도 4292m의 최고점을 지나면서 버스는 시속 20~30km 정도로 천천히 운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고개를 넘고 산허리를 돌아 깊은 계곡과 울퉁불퉁 비포장 길을 달리다가 포장도로가 나오자 운전수도, 승객도 모두들 긴장을 풀고 한동안 쉬고 있습니다. 버스 지붕에 얹은 짐은 계속 내리는 비로 모두 젖었지요. 새벽 6시에 출발하여 샹그릴라까지 거의 10시간이나 걸렸네요. 샹그릴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더친으로 다시 이동, 7시간 거리입니다. 중국 땅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하..

캉딩(康定, 강정)과 따오청(稻城, 도성) 그리고 야딩(亞丁)

오늘은 전날 예매한 버스를 타고 동 티베트의 깊은 산속 마을, 캉딩(강정)에 왔습니다. 청뚜를 출발한 버스는 야안으로 들어서면서 몇 군데 도로 공사 현장을 만나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신두차오(新都橋, 신도교)를 거쳐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8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네요. 야안 입구에 실물 크기의 조형물, '일단의 마부와 짐을 실은 말'이 서 있어 우리가 차마고도에 들어섰음을 실감했지요. 이쪽, 쓰촨의 서부인 장족자치구는 동티베트이라고도 부릅니다. 거리에는 장족의 전통옷을 입은 강인한 인상의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버스 터미널에서 물동이를 멘 장족 여자 조각상을 지나 시내를 가로지르는 물결 거센 캉딩하를 따라 걷기 20여 분. 장족이 운영하는 민속풍의 게스트 하우스, '블랙텐트(헤이 짱 퍼)'에 짐을 풀고..

아미산(峨眉山, 어메이산)

구채구와 황룡을 여행하면서 가깝게 지냈던 현지인들과 기념사진 한 장으로 작별하고 우리는 청뚜를 거쳐 아미산에 왔습니다. 청뚜 공항에서 신남먼 버스터미널로 가는 택시비 38위안에는 부가세 1위안이, 신난먼에서 아미산 행 버스 요금 45위안에는 보험료 1위안이 별도로 붙습니다. 아미산 버스터미널에서 유람 광장까지 버스 이동, 거기에서 보국사 터미널까지 또 버스를 타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도착, 보국사 근처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아미산은 오태산, 보타산, 구화산과 함께 중국 불교의 4대 명산답게 입구부터 화려합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만년사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에도 대웅전 앞은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향과 촛불로 연기가 자욱했고. 땅 넓은 중국답게 향도, 초도 ..

황룡(황룽)과 구채구(주자이거우)의 풍경

2009년 두 명의 여행친구들과 중국 서남부를 돌았던 8월 한 달 간의 여행을 다시 정리하여 올립니다. 쓰촨 성 성도인 청뚜로 들어가 한국에서 예약한 중국 현지 투어로 황룡과 구채구에 들른 다음 우리끼리 중국 서남부를 돌고 계림에서 아웃했지요. 청뚜에서 황룡 공항까지는 국내선으로 이동. 구채구-황룡 공항은 해발 3500m에 있기 때문에 착륙 직후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거나 메스꺼움 등 고산증을 느낍니다. 공항에서 황룡까지는 40km, 버스는 험한 산길을 천천히 달렸습니다. 황룡 풍경구 전경도에는 한글 안내도 보입니다. 걸어서 올라가면 3시간. 해발 4200m의 황룡에서 겪을 고산증이 걱정되어 체력을 아끼려고 케이블카(1인, 80위안)를 탔습니다. 탑승장은 정문에서 왼쪽으로 600m 거리. 날카..

루마니아

발칸반도 8개국 35일 일정의 마지막인 루마니아입니다. 한반도와 면적이 비슷한 이 나라의 화폐는 레이(Lei)로 1유로에 3.38 레이, 약 500원입니다.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에 부쿠레슈티에 들어와 역에서 곧바로 시외버스를 타고 이 나라의 중서부인 트란실바니아 지역, 브라쇼브에 도착하였습니다. 숙소에 이른 체크인 후, 브람 스토커의 소설 '흡혈귀 드라큘라'의 무대로 알려진 브란 성에 왔지요. '흡혈귀 드라큘라'의 모델인 블라드 공은 원래 15세기의 루마니아 역사에 등장하는 이 나라의 영웅으로 배신자나 전쟁포로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기 때문에 '블라드 체베슈(창꽂이)'라 불리면서 무시무시한 인물로 묘사되었답니다. 중앙 뜰에 우물이 있는 전형적인 중세의 이 고딕 성채는 소설처럼 으..

불가리아

베오그라드에서 밤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아침 10시,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내렸습니다. 이 나라는 한반도의 1/2 크기로 언어는 키릴 문자, 통용 화폐는 레바(Leva, L). 현재 1유로는 1.44레바로 우리 돈으로는 약 870원입니다. 버스를 타고 네델리아 광장 근처의 소피아 호스텔에 도착, 짐을 풀고는 곧 시내를 돌았지요. 이 도시의 이름이 유래된 소피아 성당과 성 네델리아 교회, 바냐 바시 모스크, 금빛 돔이 아름다운 성 니콜라이 러시아 정교회며 알렉산더 넾스키 교회 등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릴라 수도원, 소피아의 숙소 앞에서 5번 트램을 타고 쿠베르 버스터미널로 이동, 릴라 마을 행 직행버스를 탔습니다. 국립공원 안의 피린 산속 깊이 자리 잡은 이 작은 마을에..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밤 기차로 사라예보를 떠나 국경을 넘어서 12시간 만에 옛 유고연방의 맹주였던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역에 도착했습니다. 베오그라드라는 키릴 문자가 보이네요. 이 나라는 한반도의 2/3 크기로 화폐는 디나르(Dunar)를 사용합니다. 1유로에 90디나르로 우리 돈으로는 약 20원. 이곳은 현재 코소보의 독립투쟁과 연관되어 살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에 그냥 지나치려다가 마음을 바꾸어 시내로 들어간 곳이지요. 생각 외로 한가롭게 체스 놀이를 하는 노인들처럼 거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지요. 그러나 시가를 돌아다니는 중에 코소보 학살과 관련된 전범, 카라지치를 석방하라는 집회와 시위를 보았습니다. 유고 연방을 주도했던 그 옛날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세르비아의 현재 모습이 보이는 듯했지요. 티토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