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체코, 폴란드와 발트 3국 11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과 자코파네 국립공원 트레킹

폴란드 비엘리치카의 소금 광산입니다. 이 작은 도시의 지하에는 큰 규모의 암염 채굴장이 있었습니다. 1250년부터 1950년까지 암염을 채굴했던 이곳은 이제 그 역할이 끝나면서 광부들은 그 속에 남은 암염을 이용하여 많은 조각품을 만들었고 그러면서 197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지요. 지하 325m까지 파내려 간 채굴장은 현재 2.5km 거리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안 곳곳에 소금을 채굴하는 광부의 모습을 실물 크기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암염 조각품과 같이 전시하고 있었지요. 무명의 광부들은 소금 바위를 이용하여 '이집트로 피난 가는 성 가족'과 '최후의 만찬', 폴란드인들의 긍지, 교황 바오로 2세에 독일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 국가를 수립했던 이 나라의 영웅,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등 폴란드..

쿠라코프와 오비시엥침(아우슈비츠)

폴란드의 쿠라코프 중앙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쿠라코프는 우리나라 경주와 같이 유서 깊은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입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사령부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戰禍를 피할 수 있었다네요. 숙소에 들어와 짐을 풀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구 시청사 탑에 올라 시내 조망하기. 그 옛날 몽골 군대가 이 도시를 침략했을 때 나팔을 불어 적의 침입을 알리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죽은 나팔수가 있었답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매 시 정각, 살아남은 동료들이 탑에 올라 나팔을 불던 애도행사가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만들어졌다지요. 오른쪽에 보이는 첨탑은 마리아 교회입니다. 구시가 중앙광장에서 거리의 예술가와 쿠라코프 입성 기념 사진을 찍고 직물 회관의 1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 구경에 나섰습니다. 길..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기차역을 떠나  Sestokgi에 도착, 버스로 갈아타고 목카바까지 간 다음, 다시 기차로 타고  Suwatki를 거쳐  바르샤바의 중앙역에 도착했습니다.       바르샤바는 2차대전 때 독일군의 공격으로  도시의 절반이 파괴되었던 것을 시민들이 기억을 되살려 '건물 벽에 있는 금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복원해 놓은 도시랍니다.      역 앞 광장에 그려 놓은 밝은 이미지의 벽화에서 이들이 되찾은 평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광장에서 바로 보이는 큰 건물은 '문학 궁전'으로소련 시절, 스탈린이 이 나라에 선물로 지어준 것인데 정작 이 나라 사람들은 이 건물을 치욕적으로 생각하여 '소비에트가 세운 바르샤바의 묘비'라고 비꼰다는군요.   그 '묘비'도 여행자에게는 이 도시..

리투아니아 - 2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구시가로 들어가는 '새벽의 문'입니다. 문 위 2층의 아주 작지만 '영험이 있는 마리아상'으로 유명한 이 교회에서는 일요일 아침의 미사가 경건하게 진행되고 있었지요. 좁은 그 안에 미쳐 들어가지 못한 신자들은 밖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내 손바닥 위에 올려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며 나폴레옹이 욕심을 냈다는 요나 교회는 붉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섬세함이 인상적이었네요. 교회 앞에는 1991년의 독립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습니다. 빌뉴스 대학의 도서관 천장화가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갔지만 마침 수리 중. 학교 앞에 있던, 표정이 밝아서 더 예쁜 학생들만 찍고 왔습니다.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는 건국 영웅, 게르미나스 장군 동상이 서 있고 번화가인 게르미나스 거리가 펼쳐집니다. ..

리투아니아 - 1

라트비아를 떠나 리투아니아에 왔습니다. 한반도의 3/1 크기로 남한보다는 약간 작지만 세 나라 중에서는 제일 큰 나라입니다.리투아니아는 영어식 발음이고 현지인들은 레투바라고 부르더군요. 수도는 빌뉴스.    우리는 클라이페다 항구에서   먼 선사시대부터 발트 해의 물결을 따라 밀려온 모래가 만들어 놓은 섬, 모래톱 섬인 'Curonian Spit'에 가기 위하여 배를 타고 섬 입구인 스밀튀네 항구로 들어갔습니다.   섬 안에는 유오드그란테, 페르발카, 프레일라와 니다, 네 개의 작은 마을이 있고 그 마을들을 잇는 버스가 다닙니다.    이 섬은 그 지질학적인 가치로 인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유오드그란테의 해안가에는 조깅하는 사람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곳..

라트비아

발트해에 면해 있는 세 나라 중에서 오늘은 라트비아입니다.1989년 8월 23일 저녁 7시,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염원하는 세 나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국민 200만 명은 각각의 수도인 탈린에서 리가, 빌뉴스까지 600km 거리를 서로 손을 잡아 인간띠로 이으면서평화와 독립의 노래를 불러 전 세계의 이목을 받은 끝에 드디어 독립을 쟁취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지요.탈린에서 출발한 버스는 리가에 도착할 때까지 울창한 숲과 작은 경작지, 목초지와 발트 해변을 지났습니다.  세 나라 중 라트비아는 경제적으로 제일 어렵다는데 그래서인지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도 어두웠습니다.오랜 기간 독일과 소련의 지배를 받으면서 많이 피폐해진 나라, 전체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러시..

에스토니아

프라하에서 에스토니아의 탈린으로 이동하는 길입니다.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얼굴이 보이는 노르웨이지안 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환승,   바이킹 상징이 그려진 에스토니아 항공의 비행기로    탈린에 도착하니 오후 10시에도 이 북극권의 여름은 낮처럼 밝았지요. 서머타임이 실시되면서 우리나라와 6시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중형 택시(100쿠루니, EEK, 우리 돈으로 약 1만 원)를 타고 4박을 예약한 올드타운의 '탈린 백팩커스'에 체크 인.                    다음날 아침, 구시가로 들어가   시청 앞 광장의 주말 시장을 구경하는 중입니다.탈린은 13세기 한자동맹의 중요도시로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면서 다양한 길드가 존재했던 경제도시였습니다.    토요일의 느긋한 브런치를 ..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 훌라쇼비체, 카를로비바리

프라하를 떠나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했습니다.프라하에서 버스로 3시간 거리입니다. 떠나기 전에 예약했던 숙소를 찾아 헤매다가 그 사이에 폐업했다는 소식에 황당했던, 그러나 그런 시간 낭비와 나쁜 소식도 용서해 줄만큼 예쁜 도시, 작은 프라하라고도 불리는 체스키크룸로프입니다.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두 개의 절벽을 이은 돌다리, 플라슈티 위에 3층 건물을 세우면서 연결한 궁전으로  입구에는 처음 이 성을 지었던 비트코프치 가문과 그 뒤를 이어 대대적으로 개조, 증축했던 슈바르젠베르그 가문의 문장이 나란히 새겨있는   견고한 석조 건물에 빨간 지붕의 웅장한 건물입니다.     그 안의 정원도 예뻤네요.   블타바 강이 도시를 휘감아 도는 이 강 위에는 여행자를 태운 배들이 돌아다닙니다.  푸른 숲으..

프라하 근교와 국립공원, 체스키 라이

프라하 근교, 베로운카 협곡의 세계문화유산, 카를스테인 성에 왔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며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카를 4세가 1348년에 세운 '카를의 돌성'입니다. 보헤미아 왕실의 위상을 보여주는   고딕 양식의 견고하고 웅장한 이 성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여러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네요. 주차장에서 내려 마차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지만 주변의 풍경이 아름다워서 걷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 성이 특히 기억에 남은 이유 중의 하나는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환영 연주 때문.   모두가 즐거워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에서 내려다본, 작고 오밀조밀 예쁜 이 마을에는    예스러운 풀무질로 기념품을 만들어내는 대장간 하며    화사한 찻집에   레이스로 만든 섬세한 벽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