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325

스리랑카의 누와라 엘리야, 스리 파다, 하푸탈레

남인도 첸나이에서 항공편으로 스리랑카에 도착, 캔디에서 불교유적을 찾는 일행들과 헤어져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누와라엘리아에 왔습니다.콜롬보 공항에서 환전하니 1유로에 14.5 스리랑카 루피. 1루피는 우리 돈으로 약 10원입니다.  고원의 서늘한 날씨를 기대했지만12월이면 끝난다는 우기가 1월이 되어도 여전하여  누와라엘리야에서는 계속 비가 왔습니다.그러나 남인도와 비교되는 짙푸른 숲과 울창한 가로수들, 깨끗한 거리에 사람들의 표정도 밝습니다.이곳은 스리랑카 중부의 고원지대로 차 재배의 중심지입니다.    첫날의 내 숙소는 숲에 둘러싸인 외곽에 있었지요.  다음날 아침 일찍, 'Sri Pada'에 가기 위하여 이동.누와라엘리아에서  Hatton까지 2시간, 거기에서 Maskeliya는 1시간, 다시 1시간..

바르깔라, 트리밴드럼과 깐냐꾸마리, 폰티체리, 마말라뿌람, 첸나이

남인도의 대표적 도시인 바르깔라, 트리밴드럼과 깐냐꾸마리, 폰티체리, 마말라뿌람, 첸나이로 죽 내려가면서 남긴간략한 기록, 사람살이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먼저 바르깔라입니다. 바르깔라 시내에서 축제를 맞이한 자이나 교인들의 거리 행진이 보았습니다.자이나교는 영혼의 완전한 정화를 통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 철저한 무소유를 수행하는 불교의 한 종파로 여기 바르깔라는 그들의 성지 중 하나랍니다.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도 경건한 행진은 오랫동안 길게 이어졌습니다.곳곳에서 행사 진행 요원들이 신도들에게 물을 나눠주고 있었지요.   이들의 행진 목적지는 자이나교에서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자나르다나 사원.   정문 장식이 화려했습니다.  언덕 아래에 있는 바르깔라의 해변은 현지인과 여행자의 해변의 두..

마이소르와 코친

밤 기차를 타고 뱅갈로르를 거쳐 마이소르에 도착하였습니다.함피가 있는 호스펫에서 이곳까지는 기차가 다니지만 식민지 시절, 각 지역의 통치자들이 건설한 선로의 폭은 지방마다 달라서 호환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을 아끼려고 뱅갈로르에서는 아예 시외버스로 갈아탔습니다. 마이소르의 마하라자 궁전은 휴일을 맞아 찾아온 인도인 관광객들로 아주 복잡해서 그야말로 '발 디딜 곳'도 없기에 일단 철수,    조금 한산해진 밤에 다시 갔습니다.나를 이곳에 오게 한 풍경,  마이소르의 마하라자 야경입니다.건물에 매단 수 천 개의 작은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서 만들어지는 환상적인 야경은 남인도 여행의 대표적인 이미지였지요.전력 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에는 이 행사 때문에 마이소르 시 전체가 일시 정전되는 일도 있었다네요..

남인도에서 고아, 함피

2010년 12월 20일 출발, 1월 14일까지 26일 동안 뭄바이 인, 캔디 아웃의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돌았던 여행입니다.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묶은 25일의 단체 배낭에서 남인도 마말라뿌람을 끝으로 스리랑카에서는 혼자 돌아다녔지요. 여행의 시작은 뭄바이로 중부를 돌았던 10년 전의 여행에서 한 번 거쳐간 도시입니다.인도문 앞에 있는 타지마할 호텔은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바로 옆 빈민가의 초라함도 변함이 없었네요.      뭄바이 앞에 있는 작은 섬, 엘리펀트에 다녀왔습니다. 11km, 편도 1시간 거리입니다.선박 요금은 현지인들보다 30루피를 더 받아서 130루피.거기다가 섬 입장료 10루피, 유적지로 가는 꼬마 열차 요금 10루피에 석굴 사원 유적지 입장료는 250루피로 현지인의 10배가 ..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과 자코파네 국립공원 트레킹

폴란드 비엘리치카의 소금 광산입니다. 이 작은 도시의 지하에는 큰 규모의 암염 채굴장이 있었습니다. 1250년부터 1950년까지 암염을 채굴했던 이곳은 이제 그 역할이 끝나면서 광부들은 그 속에 남은 암염을 이용하여 많은 조각품을 만들었고 그러면서 197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지요. 지하 325m까지 파내려 간 채굴장은 현재 2.5km 거리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안 곳곳에 소금을 채굴하는 광부의 모습을 실물 크기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암염 조각품과 같이 전시하고 있었지요. 무명의 광부들은 소금 바위를 이용하여 '이집트로 피난 가는 성 가족'과 '최후의 만찬', 폴란드인들의 긍지, 교황 바오로 2세에 독일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 국가를 수립했던 이 나라의 영웅,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등 폴란드..

쿠라코프와 오비시엥침(아우슈비츠)

폴란드의 쿠라코프 중앙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쿠라코프는 우리나라 경주와 같이 유서 깊은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입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사령부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戰禍를 피할 수 있었다네요. 숙소에 들어와 짐을 풀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구 시청사 탑에 올라 시내 조망하기. 그 옛날 몽골 군대가 이 도시를 침략했을 때 나팔을 불어 적의 침입을 알리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죽은 나팔수가 있었답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매 시 정각, 살아남은 동료들이 탑에 올라 나팔을 불던 애도행사가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만들어졌다지요. 오른쪽에 보이는 첨탑은 마리아 교회입니다. 구시가 중앙광장에서 거리의 예술가와 쿠라코프 입성 기념 사진을 찍고 직물 회관의 1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 구경에 나섰습니다. 길..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기차역을 떠나  Sestokgi에 도착, 버스로 갈아타고 목카바까지 간 다음, 다시 기차로 타고  Suwatki를 거쳐  바르샤바의 중앙역에 도착했습니다.       바르샤바는 2차대전 때 독일군의 공격으로  도시의 절반이 파괴되었던 것을 시민들이 기억을 되살려 '건물 벽에 있는 금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복원해 놓은 도시랍니다.      역 앞 광장에 그려 놓은 밝은 이미지의 벽화에서 이들이 되찾은 평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광장에서 바로 보이는 큰 건물은 '문학 궁전'으로소련 시절, 스탈린이 이 나라에 선물로 지어준 것인데 정작 이 나라 사람들은 이 건물을 치욕적으로 생각하여 '소비에트가 세운 바르샤바의 묘비'라고 비꼰다는군요.   그 '묘비'도 여행자에게는 이 도시..

리투아니아 - 2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구시가로 들어가는 '새벽의 문'입니다. 문 위 2층의 아주 작지만 '영험이 있는 마리아상'으로 유명한 이 교회에서는 일요일 아침의 미사가 경건하게 진행되고 있었지요. 좁은 그 안에 미쳐 들어가지 못한 신자들은 밖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내 손바닥 위에 올려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며 나폴레옹이 욕심을 냈다는 요나 교회는 붉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섬세함이 인상적이었네요. 교회 앞에는 1991년의 독립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습니다. 빌뉴스 대학의 도서관 천장화가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갔지만 마침 수리 중. 학교 앞에 있던, 표정이 밝아서 더 예쁜 학생들만 찍고 왔습니다.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는 건국 영웅, 게르미나스 장군 동상이 서 있고 번화가인 게르미나스 거리가 펼쳐집니다. ..

리투아니아 - 1

라트비아를 떠나 리투아니아에 왔습니다. 한반도의 3/1 크기로 남한보다는 약간 작지만 세 나라 중에서는 제일 큰 나라입니다.리투아니아는 영어식 발음이고 현지인들은 레투바라고 부르더군요. 수도는 빌뉴스.    우리는 클라이페다 항구에서   먼 선사시대부터 발트 해의 물결을 따라 밀려온 모래가 만들어 놓은 섬, 모래톱 섬인 'Curonian Spit'에 가기 위하여 배를 타고 섬 입구인 스밀튀네 항구로 들어갔습니다.   섬 안에는 유오드그란테, 페르발카, 프레일라와 니다, 네 개의 작은 마을이 있고 그 마을들을 잇는 버스가 다닙니다.    이 섬은 그 지질학적인 가치로 인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유오드그란테의 해안가에는 조깅하는 사람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