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중남미 7개국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와 떼오띠우아깐

좋은 아침 2014. 5. 24. 21:30

인류학박물관에서 지하철을 타고 소깔로까지 이동, 광장 주변의 성당과 대통령궁을 돌았습니다.

모두 11개 노선의 지하철은 환승 표시가 잘 되어 있어서 이용하기 편했지요.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했던 멕시코시티가 10년이 지난 지금은 지하철에서도 별 문제가 없어 보였네요.

 

대성당은 식민지배자들이 마지막 고대 문명인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태양의 신전'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지은 것으로 

여러 차례의 지진에 파손되면서 계속 보수 중이었습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그들의 건물 중 하나인 국립궁전도 역시 보수 중. 

 

 

아스텍의 목떼수마 2세 궁전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세운 이 총독부 건물은  

 

 

지금 대통령의 집무실과 몇 개의 정부 부처로 사용되면서  

별다른 검색 없이 여권을 제시하고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시작으로 네 방향의 긴 회랑에는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벽화가 있습니다.

멕시코 원주민의 평화로운 시대와 스페인의 침략이 빚어낸 대 학살, 착취로 이어지는 어두운 시절을 지나

독립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땅에 있었던 여러 문명, 올맥과 떼오띠와칸, 똘떽, 마야와 아스텍 문명들이 그 특징을 보이며 등장합니다.

 

 

 

 

11세기, 멕시코 북쪽에 살던 아스텍인들은

그들의 수호신인 '우이칠로포츠틀리'의 계시를 받고 새로운 땅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200년 가까이 떠돌던 그들은 신의 계시대로 

'부족의 이름을 멕시카로 바꾸며 선인장 위에 독수리가 뱀을 물로 앉은 곳을 찾아 정착', 도시 국가를 세웠지요. 

그곳은 멕시코 중앙고원에 있는 테스코코 호수 안의 섬으로

훗날 아스텍의 중심지인 테노치티틀란, 지금의 멕시코 시티입니다. 

그들은 주변을 차례차례 정복하여 대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1519년 아스텍에 황금이 넘쳐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코르테스가

50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나타났을 때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아스텍의 목테수마 2세는

그들과의 무력 충돌을 피하려 노력했지만 격렬한 전쟁 끝에 결국 1521년 무너졌습니다. 

코스테스군의 신식 무기와 오랫동안 아스텍과 충돌하며 과도한 공물과 잔혹한 통치로 고통 받던  

주변 원주민 국가들의 지원에 최강의 아스텍 군대도 당할 수 없었다지요.

그러나 그들 국가도 결국은 코르테스에게 속아 같은 신세가 되었고 

이어 천연두가 유입되면서 큰 피해를 입습니다. 

 

아스텍을 정복한 침략자, 백인의 등장 이후에는

 

 

'선인장 위에 앉아 뱀을 물고 있는 뱀'의 아스텍 전설이 서린 이 땅을

힘으로 유린하는 그들의 횡포가 보입니다.

 

 

스페인의  300여 년 식민시대를 거치며 1821년 오늘날의 멕시코가 탄생하지만

 

 

1845년에는 미국과의 전쟁에 패하여 지금의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애리조나, 뉴멕시코 등을 빼앗기면서

내란과 쿠데타의 혼란한 시기를 겪습니다.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배는 이 나라를 가톨릭 국가로 만들었지요.

문맹률이 높았던 멕시코에서 인디오의 삶과 역사를 강렬한 색채, 섬세한 묘사로 표현한

디에고의 이 역사화는 이 나라 국민들에게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 좋은 자료였습니다. 

 

 

소깔로 한쪽에는 깃털 장식 모자에 전통 문양 옷을 입은 아스텍 후예들이 

향을 피우면서 영혼을 정화하는 의식을 진행합니다.  

그 화려함과 요란한 북소리가 여행자의 눈길을 끌었네요. 

지금은 돈벌이로 전락했지만 현지인들은 아직도 이 의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메트로 5호선을 타고 북쪽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서 Piramid 행 왕복 버스표를 샀습니다.

시티에서 40km의 거리입니다.

기원전 300년부터 시작된 이 떼오띠우아깐 문명은 기원 후 600년이 지나면서 갑자기 쇠퇴, 사라지면서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했지요.

'인간이 신이 되는 장소'라는 뜻의 이 떼오띠우아깐은

거대한 고대 도시의 하나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천 년이 지나면서 폐허가 되었고 

훗날 이 유적을 발견한 아스텍인들은 '거인이 이곳을 세웠다'며 신성시했다지요.

지금도 복원과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입구의 석상, 물의 여신인 '찰치우뜰리꾸에'를 지나면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인 '태양의 신전'이 보입니다.

후에 이곳을 발견한 아스텍인들은 이를 태양의 신에게 바쳐진 피라미드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떼오띠우아깐 시대에 섬겼던  비의 신 '뚤랄록'의 신전이었답니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비의 신'을 모시는 건물이었습니다. 

 

 

가파른 경사, 

 

 

250개의 계단을 오르면 이 '태양의 신전'.

 

 

그 앞의 길 끝에는 태양의 궁전보다는 작은, 인신 공양이 이루어졌던 '달의 신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스떽인들은 길 양쪽에 줄지어 서 있던 건물을 왕족의 무덤이라고 생각하여

이 길을 '죽은 자들의 길'이라고 불렀다네요.  

 

 

입장권에 나오는 깃털 장식을 한 뱀, 

 

 

떼오띠우아깐 사람들이 인간과 신의 중개자이며 정치적 지도자로 숭배했다는 그 '께쌀꼬아뜰 신전'에 왔지만

계단 좌우와 기단마다 '깃털 달린 뱀'을 새겼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 양쪽으로는 복원 중인 건물과 

 

 

 

그 순서를 기다리는 폐허가 이어집니다. 

 

 

 

회벽 사이사이에 돌을 쌓고 그 겉에 작은 돌을 박아 놓은 독특한 건축양식이 눈에 띄었지요.

 

 

계단 사이의 벽에서 발견된 '발톱이 날카로운 재규어 그림'도 보입니다.

 

 

달의 신전 옆, 신전에서 의식을 진행하는 신관들의 거주지인 께쯔알빠빨로뜰 궁전은 

조각과 채색 벽화가 화려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멘트 기둥이 보여서 제대로 복원이 되고 있는지 염려스러웠네요.

 

 

태양의 신전 앞에서 한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