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장흥과 보성, 고흥과 순천에 경남의 진주를 거쳐 합천으로 이동했던 10일간의 남도여행입니다.
먼저 남북으로 긴 동네, 장흥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일정에 들어 있는 '천관산'과 '정남진 전망대' 안내를 보면서
저물 무렵의 천관산, 해발 723m의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라는 이 산의 휴양림에 들어왔습니다.
정상 부근에 삐죽삐죽 솟은 기암절벽이 마치 하늘을 다스리는 천자의 왕관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 '천관산'입니다.
봄에는 동백나무숲이, 가을에는 산 전체를 덮은 참억새가 볼 만하다네요.
다음날에는 천관산에 올랐습니다.
일반적인 등산로는 장천재 - 체육공원 - 금강굴 - 환희대 - 억새평원 - 연대봉에 이르는 편도 3.6km, 2시간 정도의 길과
탑산사 - 탑산암 - 구룡봉 - 환희대 - 억새평원 - 연대봉의 편도 2.8km, 1시간 30분의 코스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휴양림에서 시작, 2.4km의 A코스로 올랐다가 2.2km의 B코스로 내려왔습니다.
휴양림 위쪽의 계곡으로 연대봉까지 갔다가 환희대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초록의 편백나무 숲을 지나
11월 중순에도 아직 고운 단풍 속으로 들어갑니다.
계속 오르막인 등산로의 참나무들은 아래쪽과 달리 모든 잎을 떨군 나목이 되어 황량했지만
양쪽 능선을 따라 즐비한 기암괴석으로 산행이 즐겁습니다.
금강굴을 지나
대세봉을 거쳐
도착한 환희대는
'네모로 깎아져 서로 겹쳐진 모습이 마치 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것 같다'는 대장봉의 평평한 석대로
이 환희대에서
멀리 연대봉에 이르는 구간, 약 40여 만평에 이르는 이 억새 평원은
전국 5대 억새 군락(민둥산, 명성산, 오서산, 천관산, 영남알프스)의 하나로
9월 중순에 피기 시작, 10월 중순에 장관을 이룬다 했네요.
억새가 가장 보기 좋은 때는
햇빛과 억새가 45도 이하를 이루며 역광을 받을 때인 오전 9시 이전이나 오후 5시 이후라지요.
해마다 10월 초에는 '천관산 억새제'가 열립니다.
11월 중순인 지금은 절정을 지났지만
이런 풍경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발 723m의 천관산 정상, 연대봉입니다.
고려시대에 설치된 연대봉의 봉수는 장흥의 또 다른 봉수대인 전일산에서 이곳을 거쳐 강진의 원포 봉수와
전라병영으로 이어졌던 중요한 위치의 봉수가 되어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했답니다.
정상에서는 방조제로 둘러싸인 '삼산호'와 '정남진 전망대', 염전들이 있는 장흥 앞바다와
멀리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맑은 날에는 제주의 한라산까지 보인답니다.
다시 환희대로 돌아와 그 반대편,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아직 억새가 남아 있어 갖가지 이름의 기암절벽과
첩첩한 산들이 어울린 그 풍경이 좋았습니다.
가파른 내리막에 수북이 쌓인 낙엽이 발등을 덮으면서 그 아래 작은 돌들에 걸려 여러 번 넘어졌어도
이런 길 안내가 곁들어 있어 더 즐거웠지요.
휴양림 입구에는 계곡 하나가 완전히 동백으로 덮인 동백숲이 있습니다.
멀리 '천하제일, 천관산 동백숲'이라 새긴 돌비석이 보이는
엄청난 규모의 숲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개화기가 아니라서 겨우 몇 송이 동백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네요.
지난봄 해남을 돌면서 잠깐 들렀던 '이청준의 문학자리'에 이어
오늘은 소설가 이청준의 생가를 찾았습니다.
단편 '퇴원'으로 등단한 이래 1960년대부터 35년간 창작활동을 통해 그 작가적 면모를 굳건히 정립하였던
작가의 생가에는
'하늘과 땅이 아득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것의 하나가 이청준의 소설이라' 했던
당대의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찬사와 작가의 연보가 보입니다.
거기에서 나와 영화, '천년학'의 촬영지인 선학동으로 왔습니다.
회진면 진목리의 산저마을 바닷가에는 이 영화의 주 무대였던 주막 세트장이 남아 있습니다.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 '소리의 빛', '축제'에 이어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2007년)'은
아름다운 영상미로 한국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지요.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는 '서편제', '소리의 빛'과 연작 형태를 이루면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 전개하는 액자 소설입니다.
'서편제'에서
한 사내가 소릿재 주막에 머물며 그 이름의 내력을 묻고 주인남자에게 '소리꾼과 계집아이의 사연'을 듣습니다.
주모였던 어머니와 떠돌이 소리꾼에 대한 기억을 회상한 그는 계집아이가 장님이 된 사연을 듣고
그 아이의 이복 오라비임을 밝히며 누이동생을 찾고 싶다 하지요.
오직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일부러 딸을 장님으로 만들었던 그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의붓누이의 恨은 이제 화해와 사랑을 담은 소리의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지요.
'선학동 나그네'에서 소리꾼 부녀의 흔적을 찾던 오빠는 선학동 포구의 기적 같은 이야기 끝에
자신이 그렇게 증오했던 의붓아비가 죽어 선학동의 포구에 묻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소리의 빛'에서는 소리꾼 딸과 의붓오빠인 사내가 상봉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정체를 짐작하면서도 무덤덤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밤새워 소리와 북장단으로 회포를 풀고 다음날 새벽에 사내가 떠나는 것으로 끝납니다.
영화 '서편제'는 임권택 감독이 이청준의 단편소설 '서편제'와 '소리의 빛'을 각색하여 만들었고
'선학동 나그네'로는 영화, '천년학'을 만들었습니다.
마을 입구, '선학정'에서는
맞은편의 공지산 줄기가 마치 '한 마리 학이 물이 마른 포구 위로 천천히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 신비로운 풍경의
회진면 고즈넉한 바닷가, ‘산저 마을’은 ‘천년학’ 촬영지가 되면서 마을 이름까지 ‘선학동’으로 바꾸었지요.
주민들은 문학과 영상 예술이 접목, 승화된 이 마을을 기념하여
봄에는 유채꽃밭, 가을에는 메밀꽃밭을 조성하면서 남도의 명소로 가꾸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 언덕의 메밀꽃도 져버린 계절,
사진으로 만난 봄과 가을의 마을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작가의 작품들, '눈길',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축제' 등 그의 수많은 소설에는
이청준에게 삶을 주고 길러준 고향, 남도 사람들의 혼이 녹아들어 강인하면서도 향토적인 서정미가 담겨 있습니다.
'선학동 나그네'길은 '이청준 문학길'로 다시 정비되어
'회령진성'에서 '선학동 마을'과 '이청준 생가', '이청준 문학지'를 연결한 8.1km의 '이청준 문학길'이 되었고
그 길은 '한승원 소설문학길'과 연결됩니다.
한승원 문학의 고향인 회진면 신덕마을, 천관산과 우산도, 금당도와 고흥반도가 보이는 마을의 이 넓바우 포구에는
'한승원 문학 현장비'가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바다 소설, '갈매기', '그 바다 끓며 넘치며', '우산도', '동학제', '해변의 길손', '갯비나리' 들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목선을 타고 다녔던 젊은 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랍니다.
그는 '내 소설 8할은 고향 바닷바람에 의해서 탄생된 것이다'라 했지요.
'그 바다에는 천만년의 신화가 살고 있었다.
흩어지면 별빛, 달빛, 안개, 바람, 땅, 하늘, 벌레, 이슬, 물결이 되고
한데 모이면 유령 같은 거대한 괴물이 되어 꿈틀거리고 술렁거리고 앓아대었다.
넓바우는 자그마한 연안이었다.
검푸른 해송 숲이 빽빽하게 들어선 두 개의 산굽이가 자줏빛 바위를 디딘 채 바다 깊숙이 묻히면서
연안을 만들고 있었다.
모래밭 너머로는 솔숲 짙은 계곡이 새텃몰로 넘어가는 잔등의 메밀 씨 같은 바위 밑으로 음험하게 패어 들어가 있었다.'는
한승원의 장편소설, '해일'의 일부가 담긴 문학비 뒤로
'넓바위 포구'와 멀리 '정남진 전망대'가 보입니다.
현재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장흥 율산 마을의 집필실, '해산토굴' 아래, 방조제 위쪽으로
그의 시비가 있습니다.
한승원 소설문학길, 생가로 이어지는 신상리 마을 담장에도 작가의 시가 보입니다.
여기는 정유재란이 있었던 1597년 당시 관직에서 파직당하여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군사, 무기, 군량, 병선을 모아서 명량대첩지로 이동하던 구국의 길로
현재 '남도 이순신길'이라는 '역사 스토리 테마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길은 두 갈래인 '조선수군 재건로 전 8개 코스'와 '백의종군로 전 4코스' 중 나뉘면서
이 구간은 '조선수군 재건로 5코스'의 일부인
회령진성에서 천년학 세트장을 지나 마량 바다로 이어지는 18km의 길이며
그 안에는 '한승원 문학현장비'와 '한승원 생가', '한재공원'과 '장흥 회령진성'을 잇는 4.4km의 '한승원 문학길'과
'회령진성'에서 시작되는 8.1km의 '이청준 문학길'이 있습니다.
인근의 신동리 사금마을, 관광지구의 '정남진 전망대'는 10층 규모로 높이는 45.9m로
1층에는 관광안내소, 2 ~ 8층에 북카페, 문학영화관, 추억여행관, 축제관, 트릭아트 포토존 등이 있고
9층 카페와 10층 스카이워크에서는 득량만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해맞이 명소로 매년 1월 1일에는 '정남진 장흥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지요.
11 ~ 12월에는 09:00 ~ 19:00, 3 ~ 10월은 09:00 ~ 19:00에 오픈됩니다.
득량만 안의 섬들, 거금도와 연홍도,
가운데 고흥의 녹동항, 그 옆의 소록도며 다도해의 섬들이 모두 보입니다.
여기는 서울의 광화문을 중심으로 북쪽의 중강진과 동쪽의 정동진에 이은 남쪽의 정남진이랍니다.
통일광장에 있는 한반도 모양의 바닥분수와
정남진을 표시한 높이 7m의 화사한 조형물, '율려-어울림의 시작'이 화려했지요.
근처 남포마을의
소등섬은 이청준의 ‘축제’를 영화로 만든 촬영지로
고기잡이 나간 가족을 기다리며 소등(호롱불)을 밝힌 데서 이름이 유래한 작은 섬인데
하루 두 차례, 썰물 때나 오갈 수 있습니다.
장흥 사람들이 손꼽는 겨울 해돋이 명소랍니다.
이 섬 안에는 바다로 나간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빌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여인상이 있습니다.
득량만 안의 물결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모습도 멋지네요.
이제는 장흥을 떠나 '정남진 대교'와 '장재교'를 지나 다음 행선지인 보성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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