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인천, 5. 팔미도와 월미도

좋은 아침 2022. 11. 12. 06:36

인천 연안부두에서 13.5km, 섬의 모양이 여덟 8(八) 자와 같이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 '八尾島'에 갑니다.

이 섬에는 1903년 6월에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한국등대문화유산 제1호인 등대가 있어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천항을 오가는 선박의 길잡이가 되었고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냈지요.

106년간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었지만 2009년 '인천 방문의 해'를 맞으면서

이후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었습니다. 

 

연안부두의 팔미도 선착장에서 물고기 모양의 유람선을 타고 오전 9시 30분 출항, 1시간 걸려 도착하여

섬에서 1시간 머물다가 11시 30분 다시 승선, 12시 20분에 돌아왔습니다.

성인 33000원, 경로할인이 있으며 운항 여부 확인은 전화 032 885 0001. 예약은 https://palmido1.modoo.at

 

 

아라뱃길과 팔미도, 바다낚싯배들 사이에서 출발,

 

 

인천대교를 지납니다. 

 

 

총연장 18.38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긴 다리, 

 

 

6차선의 고속도로인 세계에서 4번 째로 긴 사장교,

 

 

세계적 수준의 최신 토목기술을 총동원하였다는 서해의 이 다리는 언제 보아도 멋지고 자랑스럽습니다. 

 

 

우리의 유람선은 그야말로 유람하듯이 천천히 

 

 

한 시간 걸려 무인도인 팔미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선착장과 등대역사관, 옛 등대와 전망대가 있는 새 등대, 짧은 둘레길이 있는 작은 섬입니다.

 

 

등대로 가는 길에는 팔미도 등대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조형물, '천년의 빛'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서 있는 등대가 지금까지의 100년을 넘어

앞으로도 1000년 동안 인천의 바다를 비추어 달라는 염원을 담았다네요.

 

 

옛 등대 뒤로  2002년 건립한 높이 31m의 새 등대가 보입니다. 

그 앞에는

 

 

'등대에 불을 밝혀라!

1950년 9월 15일, 한국전쟁 승기를 마련한 인천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의 상륙작전과 더불어 불가능을 가능케 한 작전으로서 세계전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그 작전에 앞서  팔미도 등대를 탈환, 점등하기 위하여 조직된 특공대는 6명의 켈로(KLO, Korea Liaison Office) 부대였다.

9월 14일 19시,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15일 0시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히라는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의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은 9월 14일 22시 팔미도에 상륙, 북한군과의 격전 끝에 등대를 점령하였으나

점등장치의 나사못이 빠져 점화 불능 상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연히 등대 바닥에서 최규홍의 손에 잡힌 나사못으로 특공대는 등대의 불을 밝히는 데 성공하면서

성조기를 높이 게양하였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맥아더 사령관은 등대의 불과 성조기를 확인하고 

연합국 함대 261척, 7만 5천 명에게 인천 앞바다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 이 작전을 성공하게 한 특공대 중 군인 5명에게 '미국 은성 무공훈장'이 수여되었고

최규홍 대장에게는 등대에 게양했던 성조기와 맥아더 장군이 친필 서명한 사진이 증정되었다.

그 성조기는 최규봉 대장의 기증으로 현재 맥아더 장군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사진과 감사장은 용산의 우리나라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제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아 팔미도 등대가 간직한 희귀한 역사, 특공대의 공적과 아울러

이 작전에서 희생된 켈로 대원들의 넋을 기리고

길이 이 내용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그들의 발자취기 깃든 이곳에 기념비를 세우는 바이다.'라는

시인, 구상의 당시 긴박했던 상황 기록이 있고 그 옆에는 맥아더 사령관의 흉상도 보입니다. 

 

인천은 수로가 좁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서 이로 인해 상륙 시간은 단 2시간.

모두들 터무니없다고, 1/5000의 확률이라며  반대했지만

맥아더 장군은 이 작전만이 승리의 길이라고 확신, 그대로 밀고 나갔답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13일 후 유엔군은 서울을 수복합니다. 

그 후 평양까지 탈환한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빼앗기며 긴 공방전을 이어가던 중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 3년여 년의 전쟁은 양측 3백만이 넘는 사상자를 내면서

휴전에 들어갑니다.   

 

 

새 등대 건물 2층의 전망대에서는 1999년 위성 항법 보정 시스템(DGPS 기준국)을 설치, 운영하면서

이곳을 통과하는 선박들에게 정교한 위치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고  

 

 

멀리 북서쪽으로 무의도와 인천공항이,

 

 

북쪽으로는 인천항과 인천대교, 송도국제도시가 보입니다. 

 

 

2층의 건물 안의 홍보관에서는 우리나라 전역의 아름다운 등대들이 영상으로 나오고 

 

 

디오라마로 만든 팔미도 등대 탈환 모습과 

 

 

포연 가득한 인천항으로 상륙선을 타고 돌진하는 연합군의 모습도 있습니다. 

 

 

퇴역한 그 옛 등대의 라이트는 이제 전시용이 되었네요. 

 

 

2009년 섬 개방 이후 여기서는

갯벌 체험과 낚시 체험을 하거나 인천 8경의 하나인 '팔미도 낙조'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우리는 작은 해변을 내려다보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향기로운 들국화가 피어 있는 둘레길,

 

 

오밀조밀 예쁜 길은 너무 짧아서 아쉬웠지요.

 

 

 

'팔미도 등대 역사관'에는 팔미도의 아름다움과 

 

 

이 섬의 등대가 한국전의 흐름을 바꾸는 희망의 불빛을 밝힘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알리고 있었네요.

 

 

계단을 이용, 인천의 등대가 차례차례 건설되었음을 알리는 발상도 재미있습니다.

 

 

팔미도에서 나와 월미도로 이동,

 

 

월미공원역에 주차하고 섬을 한 바퀴 도는 '월미바다열차'를 탔습니다.

운행거리 6.1km, 평균 시속 9km로 배차 시간은 11~15분, 중간에 한 번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습니다. 

운행 시간은 성수기인 4~10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주 월요일은 휴무랍니다.

 

 

바다 열차는 레일을 따라 

 

 

곡물 저장고인 높이 48m의 원통 사일로에 그린 대형벽화와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고 즐기며 체험할 수 있는 '월미문화관'을 지나

 

 

영종도 하늘도시를 옆에 두고

 

 

수변공원으로 돌았습니다. 

우리는 박물관역에서 내려 

 

 

'1950년의 인천상륙작전, 그날의 월미도' 안내판에 가서

 

 

인천을 상륙지로 선정한 이유와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버금간다는 인천상륙작전이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알았네요.

세기의 도박이었답니다. 

 

 

상륙을 위해 인천 앞바다로 진입하는 미국 함선들과

지원을 위하여 해병 1사단이 월미도로 2차 상륙하는 그 당시의 사진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근처에는 기념탑도 있습니다. 

 

 

카페와 레스토랑, 횟집이 밀집한 인천의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는

 

 

 

인천대교와 

 

 

종이학 형태의 야외무대,

바다 건너 아파트가 밀집한 영종도에

 

 

수변공원과 

 

 

영종도행 선착장,

 

 

인천상륙작전의 상륙지점, 세 군데의  하나였던 '녹색 해안' 표지석과

 

 

바다열차가 돌아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요.

월미도 입구 사거리에는 또 하나의 상륙지점인 '레드비치' 표지판이 있다는데 확인은 못했네요.

'블루비치'는 인천 남동부에 있답니다.  

 

 

테마파크에서 대관람차를 타고

 

 

내려다보는 풍경도 좋았습니다. 

월미도의 '문화의 거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작약도와 영종대교, 

 

 

인천 북항의 배후단지까지 보입니다. 

뒤쪽으로는 송도국제도시가 있습니다.

 

 

대관람차 옆, '디스코팡팡'을 탄 젊은이들의 즐거운 함성을 들으며 우리의 평화를 실감합니다. 

 

 

다시 박물관역에서 바다열차 탑승, '한국이민사박물관'과 

 

 

우리나라 국민이 이민을 간 국가의 숫자를 표현했다는,  정원의 200여 개가 넘는 파란 천,

 

 

사일로 벽화의 다른 면, 거대한 책꽂이를 보면서 다시 월미공원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벽화는 2018년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벽화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면서 인천의 명물이 되었다네요.

전문가 22명이 100일 동안 페인트로 그린 이 벽화는 2019년 '독일 아이에크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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