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거리는 ‘봉선화’의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1920~2004)을 기리는 골목입니다.
옷가게가 밀집한 초정거리 중간, 함석으로 둘러싸인 낡은 일본식 2층 건물이 그의 생가.
부친은 이 자리에서 통영갓을 만들던 장인이었답니다.
곧 유적지로 정비될 계획이어서 옷가게 주인은 조만간에 이사를 해야한다 했네요.
거리 입구에 시인의 대표작인 연시조, '봉선화'가 보입니다.
비 오자 장독 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노나.
이 시조에서 보이는 것처럼 정 많고 섬세했던 초정은
말년에 자신을 병구완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
엿새 만에 그 뒤를 따랐다는 순애보의 시인이었습니다.
큰 거리에서 나오면 그의 동상이 보입니다.
'청마 기념관'으로 내비를 따라가다가 어찌어찌 '이순신 공원'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맑은 공기 속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하는 싱그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무성한 동백숲을 지나면서 남해안에는 동백꽃 피는 계절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길이 우리가 찾던 청마 기념관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내비는 '청마기념관'이 아니라 '청마기념관 주차장'으로 찍는 것이 정확합니다.
멋진 산책길에 아쉬운 마음 남기며 되돌아 찾아낸 '청마문학관'.
2000년, 이순신 공원의 망일봉 아래에 조성한 청마문학관에는
청마의 생애, 청마의 문학, 청마의 발자취까지 세 개의 주제로 청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50년을 전후로 통영은 문화의 르네상스를 맞았답니다.
이 시기에 통영에서는 청마 유치환을 중심으로 윤이상, 전혁림, 김상옥, 김춘수 등
뜻을 같이 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통영문화협회를 결성, 한글강습회, 농촌계몽운동, 연극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 계몽운동을 하는 동시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지요.
입구를 장식한 사진에서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에 시인 김춘수, 네 번째는 작곡가 윤이상,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로는 유치환, 네 번째에 화가 전혁림 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청마의 형이었던 극작가 유치진, 박경리까지 모두 통영을 빛낸 쟁쟁한 예술가들이었습니다.
청마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연대별 시집과
그의 대표작들이 반갑습니다.
그러나 아, 59세!
교통사고로 운명하기 전날의 마지막 일기는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과 짙은 바다 빛깔을 보고 싶다던 시인은 그렇게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지요.
기념관 위쪽에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을 재현해 놓았고
숲이 좋은 기념관 뜰을 내려가면 전용 주차장.
여기서는 강구안 항구가 지척입니다.
미륵도의 서쪽 자락에 있는 박경리 기념관에 왔습니다.
기념관 뜰에는
작가가 20여 년 혼신을 다하여 써 내려갔던 대하소설, '토지'의 시작 부분과
초기의 작품, '김약국의 딸들' 일부가 새겨진 글비가 있습니다.
작가는 당항포를 바라보며 정원에 서 있었지요.
묘소로 가는 길은 예쁜 추모공원을 만들어서
시내에서 먼 길, 접근하기 쉽지 않은 단점을 상쇄하고 있었네요.
글비가 맞아주는 작가의 묘소에 술 한 잔 올리고
나도 당항포를 바라보았습니다.
미륵산 자락의 북쪽, 전혁림(1916~2010) 미술관은
'통영의 야경, 암청색 하늘과 바다를 캔버스 삼아 불 밝힌 가로등과 어선의 그림자를 색색의 물감으로 풀어놓은 듯
강렬한 통영의 이미지를 화폭에 담았다'는 화가의 기념관입니다.
화가의 집을 허물고 등대와 탑의 형상을 접목하여 신축, 미술관을 장식했다는 설명이 보이네요.
3층의 대형벽화는 작가의 1998년 작품 '창'을 재구성, 11종의 도자기 작품을 조합하여 만들었다는데
그 외에도 건물 벽면을 장식한 타일 작품에
충무교의 교각에서 본 코발트블루의 맑은 컬러가 인상적인 화가였지요.
아, 그러나 오늘 화요일은 관람 불가!
특이하게도 매주 월, 화, 이틀간 휴관합니다.
돌아서는 발길에 마을의 작은 도서관 벽, 이 도시 예술가들의 작품을 엮은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저기, 문향이 가득한 도시입니다.
유치환의 결혼식에서 화동 역할을 했었다는 시인 김춘수(1922~2003)의 '유품전시관'.
여기는 ‘삼백리 한려수도’가 시작되는 미륵도 바닷가입니다.
건물 외벽에 그의 대표작, '꽃'이 보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도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도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시인은 사걀의 그림, '나와 마을'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지요.
태어난 곳을 떠나 오랫동안 타지에 살았던 시인은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네요.
수 없이 수정하면서 시를 썼던 흔적도 보입니다.
청마 유치환이 김춘수에게 건넸다는 장난스러운 상장도 재미있었고.
화가 전혁림의 팔순 잔치 때 찍었다는 사진에서는 그 시대의 멋쟁이, 나비넥타이를 맨 김춘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려수도를 조망할 수 있는 1,975m 거리의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라가는 중입니다.
운행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화 055 649 3804. 시니어 왕복 11,000원.
사진 왼쪽에는 스카이라인 루지를 타기 위하여 그쪽 정상으로 올라가는 리프트가 보입니다.
난이도에 따른 4개의 코스에서 루지카트를 타고 총 3.8km의 경삿길를 내려오는 스릴을 즐길 수 있답니다.
통영의 또 하나 놀이시설로 운행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화 1522 2468
긴 대기줄에 질려서 아예 탈 생각을 접었네요.
케이블카에서는 통영 시가지와 한려수도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미륵산 정상(461m)으로 걸어서 이동,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풍경이 참 좋았습니다.
봉수대와
우리 숙소인 스탠포드 호텔,
박경리 기념공원까지 보입니다.
신선대 전망대에는 유치환의 친구였던 시인 정지용이 통영을 다녀가면서 쓴 글,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미를 나는 문필로 표현할 능력이 없다'고 이 도시를 극찬했던 그의 글 비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