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함양

좋은 아침 2021. 6. 15. 09:51

지리산 일주도로를 이용, 남원에서 함양으로 가는 길입니다. 

천은사 옆을 지나

 

 

구불구불 길 달려 시암재에 도착하니 

 

 

반야봉을 비롯한  지리산의 연봉이 보입니다.

휴게소 앞, 생각지도 않았던 화사한 데이지들도 반가웠지요. 

 

 

시암재에서는 아래로 구례 시내가,

 

 

위로는 성삼재가 보입니다.

다시 달려 

 

 

성삼재(1090m)인 노고단 주차장 도착.

다음날 새벽으로 예약한 '노고단 정상 일출'에 대비하여 트레킹 시작점을 확인하고

 

 

 

좀 전에 지나온 시암재 일별.

 

 

달궁과 뱀사골을 거쳐 함양의 마천면에 있는 오늘의 숙소, 2박의 '국립 지리산 휴양림'으로 들어왔습니다.

온통 녹색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속의 별장,  '숲 속의 집'입니다. 

 

 

노거수의 원시림 속,  거칠게 흘러가는 물소리 들으며

 

 

산책하는 시간도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나타난, 이 근처 벽소령 일대가 반달가슴곰의 주 생활지역이라는 안내판!

            가슴이 콩당콩당, 무서워서 재빨리 되돌아와야 했지요.

            휴양림 안내서에는

            숲에서 곰을 만났을 경우,  멀리 있다면 조용히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가까운 거리라면 침착하게 시선을 마주치면서 천천히 뒷걸음으로 빠져나오라는 주의사항이 있었거든요.

 

 

      휴양림에서 벽소령으로 가는 길은 출입금지!

      여기서 지리산 연봉으로 곧장 올라가는 길을 막아 놓았으니

      마을로 내려가거나 백무동 계곡, 한신계곡이나 칠선계곡으로 이동, 다시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네요.

      거기에 코로나 19로 지리산 내의 모든 대피소가 폐쇄되면서 현재 장거리 산행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젊은 날에 올랐던 천왕봉은 엄두도 못 내고 세석평전까지는 어떨까 생각했지만

      초여름의 더위와 이제는 떨어진 체력으로 산길 왕복 6~7시간이 자신 없어 포기.

      노고단 일출만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 함양 시내로 나왔습니다. 

 

 

함양에서는 '지리산 둘레길' 외에도 '선비 탐방로'가 있어

전체 10km의 화림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숲과 정자를 보며 선비들의 자취를 찾아 걸을 수 있습니다. 

9개의 정자와 기암괴석을 돌아 흐르는 물에 소나무 숲이 어울리는 멋진 경치라네요. 

그 옛날 시인 묵객들이 모여 한 잔 술에 시 한 수 읊었을 길을  되짚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먼저 함양 8경의 제1경으로 나와있는 상림으로 먼저 갔습니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고운 최치원이 함양 태수를 지내면서 '위천'의 홍수에 대비,

물길을 돌리면서 둑을 쌓고 나무를 심어 조성했던 '대관림'은 

현재 하림이 유실되어 1.6km의 상림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인 이 '천년 역사의 숲'은 활엽수가 울창해서

봄의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 단풍, 겨울 설경까지 사계절 모두 산책하기 좋을 도심의 공원이었지요

 

 

2018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할 만큼 

 

 

숲은 깊고 울창했으며 

 

 

 

 

 

 

건강과 힐링의 장소였고 

 

 

 

'빛으로 새롭게 한다'는 뜻의 '함화루'와 같은 문화재에

 

 

연암 박지원이 1792년 함양의 안의 현감으로 있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물레방아를 만들어 백성의 삶을 보살폈음을 알리는 그  모형, 

 

 

역사인물공원의 함양을 빛낸 인물들,

조선의 문신, 성리학의 대가로 조선 5현의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

조선 초기 성리학자로 영남 사림파의 종조, 함양군수로서 함양 선비문화를 꽃피웠던 점필재 김종직,  

신라 최고의 문장가로 한문학의 시조, 동국 18현 중의 하나인 고운 최치원,

18세기 말 문장가이며 북학 실학의 중심인물, 안의현감(1792~1796)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개혁사상가, 연암 박지원 등 11인의 흉상을 전시하고 있어

우리의 문화와 역사 교육에도 한몫을 하고 있었지요.

 



 

 

       '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를 배출했다는 함양의 선비마을,

       개평마을(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22662-1)

 

 

두 개울이 하나로 모이는 곳에 형성된 마을로

 

 

일두 고택과 오담 고택, 풍천 노 씨 대종가와 노 참판댁 고가, 하동 정 씨 고가 등 

100년 넘은 역사의 한옥 60여 채가 있습니다. 

 

 

돌담을 따라, 냇가를 따라 마을 골목골목을 돌며 옛 선조들의 고택을 구경할 수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었네요. 

 

 

 

 

 

 

그중에서도 현재 개방된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은 

1570년 후손에 의해 사대부가로서의 면모를 갖추면서  경남 지방의 대표적인 전통 가옥이 되었답니다. 

대지 3,000평, 12동의 건물로 18세기에 개축된 사랑채 외 대부분은 16~17세기에 지은 건물. 

조선 중후기, 주택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으며 1984년 국가지정문화재가 되었다네요. 

 

일두 홍보관 옆, 쪽문으로 들어가면

 

 

안채.

 

 

그 앞으로 '토지' 등 여러 드라마의 촬영지였다는 사랑채가 나옵니다. 

지형을 그대로 살려지었기 때문에 밖에서는 2층처럼 보이는 건물입니다.

 

 

그 사랑채 앞에는 선비들의 풍류 공간, 돌과 나무, 화초를 심어 만든 작은 인공의 산, '석가산'이 있습니다.  

 

 

뒤로 태극문 안쪽은 사당.

 

 

아랫채로 내려가는 문의 턱은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반질반질 닳았습니다. 

검소하면서도 꼿꼿했던 선비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고택이었지요.

 

 

정문, 소슬대문 앞으로는 이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온다는 술, '솔송주 전수 문화관'이 있습니다. 

 

 

    일두 정여창은 조선 초기, 성종 21년 문과에 급제한 문신으로 세자였던 연산군을 가르친 학식 높은 인물.

    이 마을에서 태어난 성리학의 대가로 경사에 통달한 실천철학자였습니다.

    무오사화에 연루되면서 유배지에서 죽고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하지만

    중종 때에 우의정으로 추증, 광해군 때에는 조선 5현(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조광조, 이황)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배향되면서 그 명예가 회복되었지요. 

 

             그 일두선생 산책로를 따라 

 

 

마을동산에 오르면 수 백 년 노송들 사이로

 

 

아름다운 개평마을이 내려다보입니다. 

 

 

 

 

언덕 한쪽, 일두 선생의 후손이 운영하는 '정일품 명가'에서는 

전통한옥체험(숙박)과 전통음식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234-5. 1577-8958

http://www.jung1poom.kr 

 

 

'국내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동 박경리 문학관과 구례의 노고단 일출  (0) 2021.06.18
함양 서암정사와 하동 쌍계사  (0) 2021.06.17
남원  (0) 2021.06.14
태안, 1. 천리포 수목원  (0) 2021.05.22
서산, 1. 황금산  (0) 202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