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기 전, 바람도 쐴 겸 오랜 지인과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친구의 자취를 찾아
남원과 함양, 하동을 거쳐 남해로 떠났던 여행입니다.
그러나 코로라 19로 긴 시간 적조했던 사람들은 거처를 옮기거나 잡초 우거진 묘소만으로 남아서
산천은 의구했지만 인간의 일은 부질없었지요.
그러니 그들 이야기는 전할 것도 없네요.
남원에서는 먼저
시내 초입,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노봉안길에 있는 최명희(崔明姬, 1947∼1998)의 문학관에 왔습니다.
작가가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17년 동안 혼신을 다하여 써나갔던 대하소설, '혼불' 이름은 따서
소설의 배경이 된 지역에 세워놓은
'혼불문학관'입니다.
『혼불』은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이자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통문화의 원형을 잘 표현'한 소설.
전통문화와 민속을 치밀하고 폭넓게 담아냈다는 서평과 함께
교보문고에서 선정한 ‘90년대 최고의 도서’가 된 일도 있습니다.
문학관 입구에는
일제 강점기, 사매면 매안 이씨 종부 3대인 청암부인과 율촌댁, 효원과
거멍굴에 사는 하층민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풍속의 복원과 정교한 서술, 우리말의 문학적 활용과
정확한 표현, 시대상의 고발 등을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생생하게 형상화했다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주차장에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기와지붕의 '혼불문학관'.
전시관 앞에는
바위에 새긴 '혼불'의 한 구절, '천추락만세향'이,
전시관 안,
집필실을 재현한 작가의 방에는
동아일보와 신동아 연재 이후 제1~5부(전10권)로 출간한 ‘혼불’ 전집과
그가 사용했던 만년필, 작가의 취재 수첩이며 자료집 등 유품이 보입니다.
'불길이 소진하여 사윌 때까지 추일하게 글을 쓰겠다'던 작가의 모습과
그의 삶을 압축해 보여주는 앨범도 있습니다.
일부, 소설 구성의 미흡을 문제 삼거나 지나치게 곁가지로 나간다, 지루하다, 어렵다는 평도 있었지만
글 쓰기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끈질기면서도 강인하게 그 의지를 이어갔던 작가는
인고의 긴 소진 끝에 향년 51세로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갑니다’는 말을 남기며 불꽃같은 삶을 마감,
아쉽게도 작품은 미완으로 남았습니다.
전시관 안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의 관계도,
시간적 배경을 알기 쉽게 정리해 놓은 연대별 도표와
작가를 소개하는 영상실이 있고
소설에서 섬세하게 묘사했던 몇 장면, 효원의 혼례식, 청암부인 장례식과 연날리기,
달맞이 등의 소형입체모형(디오라마)도 있습니다.
문학관 옆으로 청호저수지가 보입니다.
소설 속에서 청암 부인은
'노봉마을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맥을 가두기 위하여 실농한 셈 치고
2년 여에 걸쳐' 이 저수지를 만듭니다.
백대 천손의 '천추락만세향'을 누릴만한 땅이라 생각했지요.
정자 옆에는
교육관인 '꽃심관'이 있고
그 뒤쪽으로는 유명 인사들이 방문하면서 기왓장에 남긴 글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짧았던 삶을 안타까워하면서
남원 시내,
우리 고전, ‘춘향전’의 배경으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인 '광한루원'에 왔습니다.
개방 시간 08:00~20:00.
남쪽 정문, 청허루로 들어가니
이곳의 춘하추동,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경과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과 이도령의 얼굴 형상이 보입니다.
광한루는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의 하나라지요.
오작교와
춘향전에 등장하는 방자의 형상,
변사또가 형틀에 묶여 혼쭐나는 장면을 연출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조형에
춘향관, 월매집, 선취각 등의 건물도 있습니다.
월매의 방에서는 길 떠나기 전, 이도령이 각서(!)를 쓰고 있고
춘향의 처소, 부용당 앞 연못에는 청춘남녀의 '사랑의 동전 던지기' 놀이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화장실 안내에도 도포를 입은 남자와 쪽진 한복의 여자 그림이 등장합니다.
소설을 기반으로하여 문화와 예술 속에 재탄생한 여러 버전의 춘향 이야기를 그림과 영상으로 보여주는 춘향관,
투호와 그네 타기 등의 전통놀이 체험장,
안숙선 명창의 기념관, '여정'과 살풀이춤의 대가 조갑녀를 기리는 '명무관'도 설립,
남원이 대단한 예향임을 자랑하고 있었지요.
이 광한루원 앞, 미꾸라지 모형이 서 있는 '요천로'는 추어탕 거리.
남원의 대표음식인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익혀서 통째로 갈아 넣고 채소와 된장을 넣어 끓여낸 음식으로
국물이 걸쭉하고 시래기의 양도 아주 많아서 여행길에 영양을 보충한 느낌이 들었네요.
맛집 검색으로 들어간 이 작은 식당에는 이른 시간에도 찾아온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광한루 정문 앞, '요천'에 놓인 장식 화려한 '승월교'를 지나 인공의 '승월 폭포'를 보면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춘향 테마파크' 안에 '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이 있습니다.
전라북도 남원시 함파우길 65-14.
남원 출신의 화가 김병종이 작품을 대량 기증하면서 만들어졌답니다.
주변의 어수선한 공사장을 지나 주차장에서
언덕으로 올라가
층층의 얕은 사각형 수면을 연출해 놓은 가운데 길로 미술관에 들어갑니다.
잔잔한 그 수면에
비치는 미술관의 그림자가
이 또한 작품이 되었네요.
아, 그러나 지금은 전시 교체로 인한 임시 휴관일(05/31~06/07)이라는 안내!
화가의 '화첩 기행' 중 라틴 아메리카 편에 담긴
아바나,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
'이과수 폭포' 들에서 보이는
작가의 깔끔한 문장과 따뜻한 감성, 맑은 원색 위주의 강렬한 그림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러한 원작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려니 큰 기대를 하고 찾아왔는데 급실망이었네요.
자료집, '생명의 노래' 판화 시리즈를 보면서 속상함을 달래야 했습니다.
방문 계획이 있는 분들은 개관 여부를 전화로 꼭 확인하세요.
미술관 건물 옆에는 정감 가득한, 깜찍한 카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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