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넘어가기 전인 오늘은 모처럼 일정을 정하지 않은 'free time'의 날입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혼자 발티트 성에 올랐습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훈자 계곡 높은 지대에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 궁을 모델로 지은 요새 겸 왕궁입니다.
훈자 왕국의 마지막 왕은 죽고 그의 늙은 왕비는 현재 다른 곳에서 기거한다 했지요.
입장료는 가이드 피에 헌금, 박물관과 성 내부 관람이 포함된 300루피로 약 6000원.
계절에 따라 개폐관 시간이 다르고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는 점심시간으로 휴관합니다.
성 뒤쪽은 절벽, 울타르 봉이 가로막은 천연의 요새처럼 보입니다.
가이드는 작지만 오밀조밀한 성의 내부 안내에 이어
러시아와 영국의 침략, 파키스탄에 합류되는 이 왕국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뀌는 약소국의 비극이 여기 또 있었네요
거실에서 보이는 설산의 선셋이 아주 멋지답니다.
뒤쪽의 울타르 빙하로
올라가다가
어제의 산행 피로가 남아 있기에 중간쯤에서 내려왔지요.
언제든 어디서든 아쉬움은 늘 남습니다.
설산 녹은 물은 작은 시내가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서 흘러갑니다.
집 앞으로 흘러가는 이 물은 현지인들에게 음용수이며 생활용수입니다.
동네를 구경하면서 길가의 작은 기념품 가게를 지나고
닭 그림이 있는 치킨 카라이 식당도 지났습니다.
엊그제 여기서 저녁을 먹을 때는 조리 시간이 30분 이상 걸린다기에
근처 인터넷 가게에서 메일을 체크하면서 기다렸었지요.
주문과 동시에 뜰에 돌아다니는 닭을 잡아서 요리하는, 우리나라의 닭볶음탕 같은 음식은
매콤하고 걸쭉한 국물이 있어 밥을 비벼 먹을 수도 있습니다.
방목한 닭은 날씬해서 고기 양은 적었지만 맛은 좋았지요.
아참! 향을 싫어하는 사람은 미리 말을 해놔야 합니다.
계곡에 조성된 마을이라서 골목마다 이런 돌담과 돌계단이 많습니다.
한 레스토랑 앞에 보이는 한글이 반가웠네요.
훈자는 세계적인 장수촌!
날마다 동네 정자나무 아래에 나와 계시던 할아버지,
집 앞에 앉아 있던 이 할머니, 모두 아흔을 거뜬히 넘긴 분들이었지요.
그러나 아직도 가부장제도, 대가족제도에 남존여비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어
여자에게는 닫힌 사회인 듯했습니다.
살구 말리는 채반을 앞에 둔 소녀들의 미소가 예뻐서 한 장,
하굣길의 전통 복장 여학생에
넥타이 교복의 남학생도 한 장 찍었습니다.
이 나라는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교육과정에 영어 과목이 있고 그래서인지 젊은이들도 영어를 잘합니다.
골목길의 꼬마들이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공깃돌 놀이를 하고 있어서 신기했지요.
훈자 지역을 돌았던 나날들은 꿈처럼 흘러갔네요.
'Old Hunza Inn'에서 살구 안주로 'Hunza Cool'을 마시며 훈자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14일의 파키스탄 여행을 마치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가는 길.
KKH에는
여전히 화려한 장식의 트럭들이 달리는데 간간이 저 아래 계곡으로 굴러 떨어진 차가 보입니다.
파키스탄의 마지막 마을, 소스트(Sost)에서 파키스탄 출국 절차를 밟고
셔틀버스에 승차, 여러 번의 검문검색을 받으면서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에게 공포의 길이었을 '피의 골짜기',
쿤자랍 패스(Khunjerab Pass, 4743m) 입구까지 왔습니다.
통과비 격인 국립공원 입장료 4달러를 내고는
160km 거리를 달려서
오성기 날리는 중국 국경 도착하니
사진 오른쪽으로 1986년에 이 도로, KKH가 완공되었음을 알리는 비석이 보입니다.
이 길의 개방 기간은 4/15~10/31, 한겨울에는 폐쇄됩니다.
양국 병사들의 모습도 확연히 달라서 키가 크고 이목구비 또렷한 파키스탄인과 작은 키의 한족이 비교되었지요.
이제 우리는 중국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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