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치엔동난 미아오족동족(黔東南 검동남묘족동족) 자치구에서는
랑더(郞德)와 시지앙(西江)의 묘족, 처지앙(車江)의 동족, 총지앙(從江)의 바사족 순으로 돌아다녔습니다.
먼저 랑더의 묘족입니다.
구이양 체육관 객차점에서 카이리(凱里, 개리) 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객차참으로 택시 타고 이동,
오후 3시 45분에 출발하는 레이산(雷山) 행 버스를 타고 중간,
랑더 미아오주산짜이(郞德, 랑더 묘족 산채) 앞에서 하차.
카이리 객차참에서 25km의 거리를 1시간 30분이나 걸려 도착한 오지마을입니다.
정거장인 랑더 묘족산채의 하채에서 다시 상채로 가려면
1.2km의 산길을 걷거나 대기하고 있는 3위안 요금의 오토바이 택시를 타야 합니다.
랑더 상채는 관광객에게 개방한 최초의 묘족 마을로
산비탈에는 검은 기와지붕에 나무로 지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산뜻해 보이는 집이 우리 GH.
빈 방이 없다던 주인은 우리에게 안채를 내주었지요.
영어가 능숙한 큰 딸은 묘족 축제가 담긴 CD도 보여 주고
그들의 전통의상을 입혀 주는 서비스로 우리를 즐겁게 했습니다.
닭고기 볶음에 부추, 감자전 들이 나온 식사도 입맛에 맞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들 묘족의 공연이 열리는 야외공연장에 왔지만 오늘은 공연이 없는 날이라기에
작은 돌이 깔린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이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고
초록의 들판을 걸어 하채까지 산책하며 보냈습니다.
이 지역은 해발 1600m의 산속 마을이지만 아열대 기후대여서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답니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 5,6월 하며 일 년의 반 정도가 우기라네요.
동네 아이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구경하기에 같이 사진 한 장 남겼습니다.
다음 목적지 시지앙(西江)까지는 대중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숙소에 부탁, 그들의 자가용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산비탈에 들어선 시지앙 마을은 랑더보다 훨씬 규모가 큽니다.
입구의 전망대에서 머리에 꽃을 장식한 묘족 아이들과
마을 전경을 보면서 입장권 매표소 앞에 내려오니
서강천호묘채(시지앙치엔후미아오짜이), 이 마을을 설명해 놓은 안내판이 보입니다.
이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묘족 마을로 1000여 가구가 살고 있어 이름도 천호묘채라고도 부른답니다.
중심도로를 걷다가 '素香旅店' 간판을 단 민박에 들어왔습니다.
예쁜 이름이어서 들어왔더니 실상은 좋은 향기가 아니라 집에서 술을 담그는 누룩 냄새였네요.
그러나 사람들이 친절해서 그냥 머물기로 하였지요.
목조의 3층에 짐을 풀고 1층으로 내려가
동네 아주머니들의 술판에 끼어들어 환영주를 마셨습니다.
전작이 많았던 듯 취한 쌍둥이 자매가 신세타령을 하는 듯하기에 신나게 맞장구를 쳐 주었더니
설움이 북받친 그들은 끝내 서럽게서럽게 울었지요.
그래도 술자리는 웃으면서 마감.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여자들의 감정은 서로 통했던, 빙긋 웃음이 나오는 시장의 추억입니다.
우리 방에서는 객잔과 가게, 식당이 늘어선 번화가의 모습이 보입니다.
모두 기와지붕의 목조 건물입니다.
날씨가 개면서 민족공원에서 춤과 노래, 촌극이 곁들인 묘족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5시 30분, 두 번의 공연이 있습니다.
'말할 수만 있으면 다 노래하고 걸을 수만 있으면 모두 춤추고, 물을 마실 수만 있으면 누구나 술을 마신다'던
흥 많은 구이저우 성 소수민족의 모습을 직접 본 날입니다.
화질이 안 좋아서 작은 사진으로 올립니다.
의상이 화려하고 다양하며
'미아오 은(순도 30% )'으로 만든 장신구는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다음날은 마을의 정상인 댄싱 스퀘어까지 올라갔다가 골목길을 구경하면서 내려와
다시 이동, 세 번째 목적지인 롱지앙(榕江)의 처지앙(車江)에 있는 동족마을,
산바오짜이(三寶寨,삼보채)에 왔습니다.
시장에서 버스로 레이산까지 이동, 거기서 롱지앙 행 버스표를 사려했지만
매표원은 폭우로 도로가 침수되어 갈 수 없다며 표를 팔지 않았지요.
雷山 - 桃江 - 永東 - 塔石 - 榕江의 구간에서 도강과 영동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답니다.
필담 끝에 매표원이 구간구간 적어준 종이를 들고 우선 도강 행 버스에 탑승.
도강에서는 다리 일부가 무너지고 토사가 쌓여 차가 다닐 수 없는 진흙탕길을 걸어
영동 쪽에서 기다리던 그쪽 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탑곡에서 환승하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롱지앙 도착하면서 이동으로 하루를 보냈네요.
그래서 더 추억이 남았습니다.
시장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삼륜차를 타고 온 처지앙의 산바오짜이(三寶寨)입니다. 시내에서 5km.
삼보채는 '세 개의 보물 같은 동족 마을이 나란히 붙어 있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마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21층, 높이 40m의 아름답고 웅장한 삼보 고루가 서 있습니다.
고루는 동족의 사랑방으로 회의를 하거나 축제를 여는 장소로
건물 꼭대기에는 주민에게 소집을 알리는 북이 매달려 있습니다.
동족은 그들이 사는 마을마다 목조의 고루를 세웠고 그러면서 고루는 그들의 상징을 되었답니다.
입구에서 양쪽에 있는 회랑을 지나 들어갑니다.
마을 강변, 용틀임하듯 뒤엉킨 반얀나무 고목에 빨래하는 여자들, 물장난을 하는 아이들로 평화로운 시골입니다.
집 안에서 나무틀에 실을 걸어 천을 짜는 여자도 있습니다.
삼보체의 고루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다음날은 버스를 타고 총지앙(從江)으로 이동, 거기 객차점에 캐리어를 맡기고 총지앙대교를 건너
빵차를 타고 언덕길로 20분, 8km 거리의 바사족 마을인 바사춘에 왔습니다.
입구에 마을 약도인 바사묘채유람도가 있고
바사족 여자들이 여행자들을 맞이합니다.
굳이 그들이 필요하지 않을 듯 작은 마을이어서 우리끼리 돌아다니다가
광택이 나는 검은 옷에 맨발의 장총을 멘 남자를 만났지요.
그 남자는 우리를 따라다니며 중국어로 몇 마디 설명하는 듯하더니 가이드비라며 30위안 요구,
총에 주눅 들어 항의도 못하고 돈을 지불한 일이 있었지요.
마을을 구경할 때는 반드시 가이드를 동행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해놓은 듯했습니다.
수확한 옥수수며 벼를 나무 줄에 매달아 말리는 한가로운 풍경도 있었지만
다른 묘족 마을보다 활기 없는 가난한 동네.
그들의 검은색 옷처럼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졌지요.
이 마을에는 현재 2000 명 정도의 바사족이 살고 있답니다.
강변에서는 바사족 여자들이 염색한 천을 널어 말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사족들은 저 천으로 그들의 전통옷을 만들어 입습니다.
작은 마을을 돈 다음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다시 총지앙으로 나왔습니다.
시지앙, 처지앙, 총지앙은 모두 강변 마을이라서 오가는 주변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총지앙은 외국인이 이용할 수 있는 호텔을 몇 개로 지정해 놓은 도시로
전통복장의 바사족은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등 그들은 차별하는 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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