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란, 요르단, 이스라엘

페르시아 문명의 시원을 찾아서 - 파사르가데, 낙쉐 로스탐, 페르세폴리스

좋은 아침 2014. 12. 28. 23:00

'나는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이 왕국을 세웠고 세계를 점령했다.

그러나 후일 이 땅이 다른 사람에게 점령될 것임을 나는 안다.

그대 또한 얼마 안 가 다른 사람에게 이 땅을 점령당할 것이다.

그러니 내 무덤과 비문을 훼손하지 말라'

 

기원전 330년, 동방원정의 알렉산더 대군에게 패한 페르시아.

그 알렉산더가 페르세폴리스를 철저히 짓밟고 이 파사르가데까지 왔을 때

이 비문을 읽은 그는 자신의 망토를 벗어 왕의 무덤을 덮어 주었답니다.

그 일화가 전해지는 곳, 키루스 왕의 무덤입니다.

두 영웅의 인간됨을 알려주는 장면이었지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일부로

동으로는 인더스 강 유역, 서로는 사하라 사막, 북으로 러시아에 남으로는 에티오피아까지 그 세력을 넓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대제국, 페르시아를 세운 당대 최고의 권력자 무덤은 생각보다 조촐했네요.

 

다민족 국가를 통일,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한 그는 모든 민족을 포용하는 정책으로

존경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그런 그를 '가장 이상적인 군주'라고 칭송했다지요.

구약성서에도 유대인의 신앙을 존중한 '고레스 대왕'으로 등장합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유대민족을 해방시켜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그곳에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명령서, 키루스 칙령이 그것.

그런 환경 속에서 동서양의 문화가 적절히 조화된 페르시아의 문명이 꽃을 피웠고

다리우스 1세와 그 후세로 번영이 이어졌습니다.

 

 

 

 

페르세폴리스의 북동쪽에 있는 이 파사르가데는 '페르시아의 고향'이라는 뜻을 가진 들판.

키루스가 메디아를 통일한 이후 첫 수도였던 파사르가데는 이후 정치, 문화,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지요.

그러나 250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폐허가 된 궁전터에는

기둥 몇 개 쓸쓸하게 서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그 주춧돌들이 뒹굴었고

 

 

 

 

멀리 산 위의 성채는 흔적만 남아 있었네요.

 

 

옛 왕국의 흔적은 모두 모래 속에 묻혔습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묘가 있는 파사르가데 근처의 '낙쉐 로스'탐입니다. 

십자가 모양의 암석 속에는

왼쪽부터 '다리우스 2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의 석관이 있습니다.

 

 

 

 

 

무덤의 상단에는 공통적으로 왕이 조로아스터 교 최고의 신인 아흐라마즈다, 또는 아니히타 여신에게

왕권을 부여받는 장면과 

 

 

왕의 승전 장면 등 업적을 묘사한 부조가 보입니다.

 

 

 

 

페르시아의 중심, 페르세폴리스에 왔습니다.

페르시아 중흥기를 지배했던 다리우스 1세는 파르스 지방의 '수사'에 도읍을 정하며

이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했고 이곳은 그의 손자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시대까지 계속 증축됩니다.

그러나 대제국의 영광은 새로운 정복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군에게 철저히 파괴되어

수세기 동안 모래와 흙먼지 속에 묻혀있다가 

1930년의 대대적인 발굴 작업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지요.

 

 

유적지 입구, 

 

 

웅장한 계단을 오르면 

 

 

페르세폴리스의 상징인 크세르크세스, '만국의 문'이 나타납니다.

문의 정면에 새겨진 조각, 한 쌍의 '라마수'는

사람의 얼굴에 독수리의 날개, 황소의 다리를 가진 수호신입니다.

 

 

그 폐허의 조감도.

 

 

 

만국의 문을 지나면 

 

 

그 길 왼쪽에 독수리의 머리와 사자의 다리를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수호신 '호마'가 서 있습니다.

호마(그리핀)는 '행복'을 의미하는 전설적인 새로 이란항공의 비행기 날개에도 그려져 있는,

항공사의 심벌마크입니다.

 

 

'百柱 궁전'과 '아파다나 궁전', '다리우스 1세 궁전'과 '크세르크세스 궁전'에 '중앙 궁전'까지, 

'라흐마트 산'을 배경으로 서 있던 건물들은 그 크기는 짐작할 수도 없었네요.

아직도 발굴과 복원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리우스 왕은 매년 봄마다 이곳에서 '노루즈'- 이란력의 새해-를 보내면서 속국의 신하들을 초청,

축제를 열었다고 합니다.

벽에는 왕과 호위병들의 모습, 28개 속주국 사신들의 조공행렬, 왕을 알현하는 장면이 담긴

부조들이 남아 있습니다.

속국의 사신이 왕에게 그 지역의 특산물을 바치는 장면에서는 

복장과 머리 모양, 수염과 머리에 쓴 관까지 모두 그 특색에 따라 달리 표현한 섬세함이 돋보였고.

 

 

 

 

 

전염병이나 구취를 경계하여 왕 앞에서는 신하와 사신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알

현했음을 알리는 재미있는 부조에

 

 

임금의 위용을 알리는 '황소(적)를 공격하는 사자(왕)'과

 

 

신하들이 옥좌를 받치는 모습 위로 아흐라 마즈다의 조각도 보입니다. 

 

 

흔히들 중동의 3대 유적은 페트라, 팔미라, 페르세폴리스라 하지만

로마 유적이 아닌, 이 페르세폴리스야말로 진정한 중동의 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입구의 거대한 계단, 화려하고 섬세한 그 많은 부조와 궁전 터에 남은 웅장한 기둥들은

그 페르시아 제국의 영화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통일 제국으로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던 페르시아는 거듭된 전쟁에 패하면서 결국 멸망했지만

30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 속, 건축과 미술 등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문명을 만들어 냈습니다.

복원 작업이 끝나는 날, 이곳은 이란에서 가장 감동적인 유적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