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노랫소리에 잠 깬 아침,
맑은 햇살이 퍼지는 시간에
호텔 뒷문으로 나가
전주천변을 산책하는 중입니다.
이 길은 '한옥마을둘레길(숨길)' 코스의 일부,
슬로시티인 한옥마을로 이어집니다.
조선 후기, 신유박해의 대표 성지 중 하나인 치명자산 성지의 '평화의 전당' 앞에서 냇물을 건너
서러운 전설의 각시바위와
건너편의 우리 숙소를 바라보며
시골마을의 작은 교회 옆을 지났습니다.
아침의 신선한 공기 속에서 찔레꽃 향기는 산뜻했고
붉은병꽃과
아기똥풀도 벚나무 가로수 옆에 예쁘게 피었습니다.
전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음식,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한벽굴 위 벼랑에 세워진 한벽당에 왔습니다.
조선 태종 때 관직에서 물러난 최담이 낙향 후 지은 누각으로
전주 8경의 하나랍니다.
안에는 이곳을 찾았던 시인묵객의 시가 많이 걸려 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산림대를 끼고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갈 때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
.
.
.
.
신적성 (1907~1974)의 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의 일부입니다.
그 외 '임께서 부르시면',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등,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시를 주로 썼던 시인의 고택, '비사벌초사'에 들렀습니다.
'비사벌'은 전주의 옛 이름입니다.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시인은 전주에서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이 집에서 살았답니다.
입구의 작은 게시판에 이제는 모두 타계한 세 사람의 시인,
왼쪽부터 김용호, 김남조, 신석정이 같이 찍은 사진도 있었네요.
그들의 옛 얼굴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사진 왼쪽의 격차창호문이 있는
서재에서 시인은
뜰을 내려다보며 시상을 다듬었겠지요?
찾아온 벗들과 둘러앉아 차를 마셨다던 돌탁자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시인 사후, 30여 년 전에 이 집을 인수했다는 현재의 집주인은 그러한 역사를 잘 관리하고 있었네요.
오늘 점심은 이웃 도시, 완주로 넘어가 용진농협의 로컬식탁, '황금연못'에서 먹었습니다.
더덕무침과 버섯탕수, 호박죽 등 채식을 좋아하는 내게는 즐거운 식사 시간!
하나하나 제대로 만들었다는 느낌의 30여 가지 음식으로 행복한 점심이 되었지요.
다시 전주로 돌아와 이번에는 전주수목원입니다.
주차장에서 눈길을 확 끌었던 어마어마한 하얀 언덕은 모두 '공조팝'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었지요.
작은 꽃송이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더 예쁜 꽃입니다.
장미의 뜨락에는
벌써 여러 가지 장미꽃들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려 시대 문인이었던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7언절구, '薔薇(장미)'를
한역한 시도 볼 수 있었지요.
그 시대에도 장미꽃이 있었고 그들도 이 향기로운 꽃을 좋아했다는 사실에 놀랐네요.
봄의 싱그러운 수목원 연못에는 붓꽃과
수련도 보입니다.
잘 조경된 드넓은 정원, 잠깐의 식후 산책에 서운해하며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철길의 이팝나무꽃을 보려고 팔복예술공장에 왔습니다.
주차 후 이팝나무숲길을 찾아가면서 공장을 관통합니다.
전주시에서 폐업한 공장을 매입, 전시장과 카페, 아트숍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이 낡은 공장터는
이제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요람, '꿈꾸는 예술터'가 되었습니다.
보도에는 알록달록한 거북이가
공중에 내걸린 화사한 천들과 어울려 밝은 분위기를 만들었고
벽에 설치한 안개분수로 관광객까지 끌어들이는 행위예술에
낡은 벽은 오색빛깔 색칠로 변신,
또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앤디 워홀전'이 열려
예술가에게 있어 편견을 깨는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고 있었네요.
꿈꾸는 예술터를 돌며 구경하다가
금학교 앞 신호기에서 철로변의 이팝나무 터널을 한 장 찍고
철길 개방 시간에 맞춰서 인파에 묻혀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얼굴입니다.
올해 북전주선 산업철도의 두 구간, 약 630m의 철길 안에서
무성한 이팝나무 꽃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시간은
4월 26일부터 5월 12일 사이의 금요일(오후 2시~6시)과 주말, 공휴일(오전 10시~오후 6시).
이 철길에는 현재 월~목요일, 8회(오전 7시, 11시)에 걸쳐
동산역에서 전주북역의 두 군데 산업체까지 1.7km의 거리에 시속 30km인 왕복 화물열차가 다니고 있답니다.
그러니 오전 11시 전후에는 오가는 열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 안타깝게도 지금은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네요.
철길 신호기를 관리하는 철도원은 4월 말 전후의 풍경이 제일 좋았다 했지요.
그래도 아직 저 꽃들은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송이들처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온통 하얀 꽃들로 둘러싸여 있었네요.
저 섬세한
아름다움!
그 옆 금학천변도 이팝나무꽃에 덮여 있는 계절이었지요.
'풍패'의 땅, '대한민국 꽃심'의 땅!
짧은 일정에 아쉬움 안고 전주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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