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안산을 '단원의 도시'로 명명한 이후
안산시에서는 꾸준히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수집하며 안산과 단원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답니다.
2002년 행정구역을 정리할 때는 시 전체를 단원구, 상록구의 두 개 구로 분리,
단원(1745~1806)이 안산에서 표암 강세황에게 20세까지 10여 년간 그림을 배웠던 인연을 근거로
조선시대 최고의 풍속화가인 그의 호를 딴 지명,
안산의 서부 지역을 단원구(檀園區)로 명명하고 그의 그림을 전시하는 기념미술관을 세웠습니다.
그가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던 강세황의 처가는 지금 안산시 상록구 성포리,
노적봉 공원 일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동부의 상록구는 심훈의 계몽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의 모델이었던,
예전 수원시 반월면 샘골(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서 농촌계몽활동에 헌신하다가
젊은 나이에 죽은 최용신(1909~1935)을 기리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었지요.
이런 사연이 담긴 김홍도 미술관 앞에는
그가 즐겨 그렸던 '포효하는 호랑이'가 보입니다.
전체 3개로 이루어진 미술관에서 단원의 그림을 전시하는 곳은 3관.
매일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하고 월요일은 휴일,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김홍도가 학과 어울려 유유자적하는 화선의 모습으로 맞아주는 미술관 안에는
그에 관한 간단한 소개글이 나옵니다.
강세황과 이익으로 대변되는 예향, 안산에서 촉망받는 화가로 성장한 단원은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임금의 신임을 받으면서 어진을 그리는 등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로 명성을 날립니다.
풍속화, 산수화, 기록화, 신선도 등 모든 분야에 걸작을 남기고
비파와 퉁소 같은 악기를 잘 다루었으며 한시에도 일가견이 있던 다재다능에
욕심 없는 초탈한 생활을 보며 사람들은 그를 화선이라 추앙했다네요.
김홍도의 스승이며 동반자였던 표암 강세황(1713~1791)의 초상화를 필두로
단원의 그림이 시작됩니다.
술병과 붓, 벼루들이 놓인 옆에서 비파를 연주하는, 한가로움을 즐기는 화가의 자화상에
연대별로 정리된 그의 일생에서는
도화서의 인정을 받으며 궁궐의 의궤 그림 제작에 큰 역할을 하던 20대의 작품,
'소나무 아래 호랑이' 같이 힘찬 필선의 그림이 나옵니다.
중국 송나라 때 왕선이 평소 교유하던 소식, 미불, 황정견을 비롯하여 당시 명성이 높던 문인, 유학자,
승려 등을 불러 아회를 갖는 그림, '서원아집도'는 이후 시인묵객들이 모방하는 그림의 소재가 되어
중국과 조선에서는 같은 이름의 그림이 많았다네요.
30대의 단원 역시 그 나름의 해석을 가미하여 새로운 구성과 구도로 부채에 '서원아집도'를 남겼고
스승 강세황은 제자의 이 그림에 칭찬하는 발문,
'내가 본 서원아집도가 수십 점이지만 단원의 그림은 이공린의 원본과도 우열을 다툴 정도의 신필이니
이는 하늘이 주신 재능이다'라 적어 놓았지요.
1778년에 그린, 같은 제목의 6폭 병풍도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입니다.
김홍도가 산천을 유람하면서 그린, '행려풍속도' 8폭 중 여기 등장한 3폭은
1778년, 강희언의 집, 담졸헌에서 그린 것으로 각 폭의 상단에는 강세황의 그림평이 쓰여 있습니다.
강변을 그린 '노상풍정', '벼타작', '거리의 판결' 등 다양한 풍속도입니다.
그러면서 이때의 '단원풍속도첩'에는 배경이 생략되고 핵심 장면을 묘사, 주제를 드러나는 그림도 등장합니다.
당시 백성들의 평범한 일상과 생업을 소재로 한 풍속화에서 그런 변화가 뚜렷합니다.
한국적인 해학을 담은 내용에 서민적이며 친근한 느낌을 주는 이런 그림들로
그는 신윤복과 함께 정선을 잇는 조선의 2대 풍속화가로 불렸습니다.
왼쪽 위에서부터 '서당', '씨름', '무동', '논갈이'와
아래 '그림 감상', '기와이기', '점심', '행상'입니다.
특히 구경꾼들의 갖가지 표정과 서로 다른 자세, 긴장하며 주시하는 장면의 생동감, 강한 선으로
30대 단원의 특징을 나타내는 '씨름'과 무동의 휘날리는 옷자락, 피리부는 남자의 볼록해진 뺨,
한쪽 무릎을 세운 북 치는 남자의 표정이 사실적인 '무동'은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그림이었네요.
두 번의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사대부적 의식과 문인 취향을 담은 다양한 '아집도'를 그리던
40대의 작품 중에는 '송석원시사야연도'가 있습니다.
44세가 되던 해, 그는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유람하면서 100여 폭의 초본을 그렸고.
한양에 돌아와 이 초본을 바탕으로 10여 미터가 넘는 비단두루마리 채색화를 그렸으나
아깝게도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초본과 모사본이 남아 있어
정선이 시작한 진경산수화풍을 더욱 사실적, 서정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습니다.
'해동명산도첩' 중에서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의 그림 제목은
'통천옹전', '해산정', '총석정', '삼불암', '만물초'.
50대 초반에는 국가와 관청의 중요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하는 의궤의 총책임자가 되어
도화서의 화원들과 함께 제작한 그림 중,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병풍, '수원능행도병풍'의 일부인 '환어행렬도'가 화려합니다.
조선 후기의 궁중문화까지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병진년화첩' 중에서 '춘작보화도'처럼
후기 산수화 중에는 산수 속에 풍속이며 화조가 같이 등장하는 그림도 많습니다.
병진년 화첩의 또 다른 그림, 단양 8경 중의 '옥순봉도', '사인암도', '도담 3봉' 등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원숙한 시기에 그린 가장 개성적인 그림으로 평가를 받았지요.
올해 6월 27일부터 8월 20일까지 안산시에서 수집한 단원의 진품 그림, 일곱 점의 전시가 끝났답니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관 시설이 좋은 이익의 성호미술관에서 맡겼다가 잠시 반출했다지요.
그러니 현재 단원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모두 국립중앙박물관, 리움미술관, 안산시 등에서 소장한
진본의 영인본이라서 서운했네요.
그렇지만 이 미술관 소장의 진품 중 '사슴과 동자',
'팔가조도'는 영인본일지라도 그나마 상태가 좋아서 다행이었지요.
미술관 둘레길은
울창한 숲속의
걷기 좋은 산책코스입니다.
이어 서해바닷가의 '바다향기 수목원'으로 이동,
오밀조밀, 예쁜 수목원에 왔습니다.
다양한 모습의 재미있는 호박 전시를 구경하고
벽천의 시원스러운 물줄기 감상하면서
상상전망대로 가는 길에는
너울거리는 파도를 형상화했다는 장식 아래의 작은 연못, '바다너울원'도 있습니다.
꽃이 귀한 계절이라서 능소화와
란타나,
빨간 낙상홍 열매들이 반가웠습니다.
귀여운 돌고개와
마타리꽃 너머 한가로운 풍경을 보이는
여기는 안산 대부도의 해솔길 7-1코스의 길목이며 6-1 순환코스.
'모든 전망이 상상되는 곳'이라는 '상상전망대'에 오르는 길은
'국내에서 가장 긴 예술 언덕길'이라는 설명 그대로 돌모자이크 장식이 예쁩니다.
물고기와 그 비늘, 스머프 마을에 온 듯 작고 귀여운 버섯 조각도 깜찍했네요.
1004개의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전망대에 오르면
아랫마을과
오른쪽의 제부도, 그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케이블카에
멀리 인천부두가 보입니다.
거기에서 팔효정 쪽으로 10분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수목원 뒤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주차장 가는 길이 있습니다.
대부도의 유명 맛집에서 토종닭백숙으로 점심을 먹고
그 집에서 직접 재배했다는 대부도 특산인 포도를 산 다음 선재대교와 영흥대교를 지나는
드라이브 길에 나섰습니다.
주변은 온통 포도밭입니다.
올해에는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포도축제가 열린다네요.
선재대교와 영흥대교,
썰물로 비어있는 영흥항과
하늘고래전망대를 지납니다.
아직도 꽃송이를 달고 있는 배롱나무 가로수가 특별했고
십리포해수욕장에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길었습니다.
얼마나 극한의 거친 해풍에 시달렸는지 제대로 서 있는 나무가 없었지요.
여기서는 무의도와
인천공항이 지척!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입니다.
그러나 철 지난 바닷가는 한가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