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스위스, 프랑스

바르비종의 밀레

좋은 아침 2012. 7. 23. 16:00

파리에서 활동하던 밀레(1814~1875)는 

 

 

 

그 당시 위세를 떨치던 전염병 페스트를 피하여 가족을 데리고 시골마을, 바르비종으로 떠났습니다.

거기서 25년 동안 터를 잡고 농촌과 농민을 소재로 그림을 그립니다. 
농가풍의 두 칸짜리 작은 집에 일곱 명의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라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그는 아이들의 급식비를 걱정해야 한 정도로 늘 가난하게 살았답니다.

그의 사후, 이 초라한 집은 기념관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밀레'라 부르는 미국식 이름을 프랑스에서는 '미예'라 발음합니다. 

 

 

 

 

 

돌 포장길이 반들거리는 오래된 동네, 바르비종의

 

 

초록색 나무를 덧댄 창이 있는 작은 집에서 밀레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그림을 그렸지요.

 

 

 

좁은 실내에 전시된 밀레의 그림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언니의 자료 화면을 올립니다.

 

 

 

 

 

신화와 종교의 전통적인 주제에 싫증이 난 화가들은 중세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인

근대의 아름다움, 생활의 변화 등을 표현했지만 초기에는 세간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같은 화가들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창조적 기법을 시도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러면서 밀레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은 초기의 고흐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지요.

이 미술관에는 밀레의 그림을  각색하거나 응용한 고흐의 작품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게 전시해 놓았습니다.

왼쪽의 그림은 밀레가 그린 '농부의 휴식,  오른쪽 그림은 고흐가 그린 동명의 그림입니다.

같은 소재가 화가의 개성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로 표현된 것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여기는 길거리 레스토랑 간판에도 밀레의 '만종'이 보이는 밀레의 동네.

 

 

 

마을에서는 '이삭 줍는 사람들'을 시작으로

메인 스트리트의 양쪽 건물 벽에즞 밀레의 그림을 모자이크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삭 줍는 여인들'에

 

 

 

 

 

 

 

 

 

빈센트 반 고흐가 '오베르 쉬즈와르'에서  '오베르 교회'를 그리는데 큰 영향을 주었던 

 

 

 

'그렌빌의 성당'도 보입니다.

 

 

 

 

 

 

 

바르비종은

바르비종은 퐁텐블로에서 아름다운 숲길의 10km 거리로  

그 길을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르비종파, 자연을 표현하고 농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그린,

그 당시로서는 새로운 의식을 가진 화가들, 밀레, 테로도르 루소, 디아스 들이 사랑했던 소박한 마을이었지요.

밀레가 경제적으로 한참 힘든 시기의  이 그림,  '키질하는 농부'는

그가 본격적으로 농민의 화가로 알려지게 된 작품입니다. 

 

 

 

일요일이어서 막차 버스 출발 시간이 앞당겨진 것을 모르고 있다가 망연자실,

다급하게 파리로 나가는 교통편을 수소문하던 늦은 오후에 우리를 집으로 불러 들여 차를 대접하고

택시까지 호출해주었던 친절한 가족을 만난 일도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밀레의 가난하고 힘겨웠을 삶에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 우울한 기분이 상쇄되었습니다. 

 

어릴 때, '이발소 그림'으로 익숙했던 '만종'을 생각하며

 

 

 

바르비종의 저물녘.

밀레가 자주 스케치 나갔던 그의 농촌의 들판을 지나 우리는 파리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