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옥헌' 원림으로 가는 길은 입구부터 배롱나무 분홍꽃으로 화사했습니다.
마을을 지나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난봄, 2박 3일 일정으로 찾아온 담양에서 명옥헌 원림은 배롱나무 천지였습니다.
그래서 꽃이 피는 여름에 이 아름다운 자미(紫薇)의 정원에 다시 오고 싶었지요.
태백 여행 끝에 대구 외곽까지 내려와 광주 쪽으로 가다가 담양의 창평으로 꺾어지면서 차에서 보낸 긴 시간,
남쪽의 더위에 시달리며 배롱꽃을 보러 온 길입니다.
연못을 중심으로 배롱나무가 이 정원을 뒤덮고 있었네요.
배롱꽃과 정자, 시냇물과 연못이 조화를 이루면서 이곳은 담양의 정자 원림 중에서
여름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가 산천경개를 벗하며 살던 곳에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거하면서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면서 주변에 배롱나무와 소나무를 심었다지요.
명옥헌(鳴玉軒)은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 소리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로
정자의 한가운데에 방이 있고 그 주위에 ㅁ자 마루를 놓은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누정입니다.
별서의 주인이 머물면서 공부를 하거나 자손들을 교육하는 장소였지요.
정철의 아들 정홍명이 지은 '명옥헌기(鳴玉軒記)'에는
오희도의 후손인 오대경이 이곳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꽃잎 하나하나는 평범하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이 분홍빛 송이들은
정원의 꽃이 드문 이 여름에 피어나 특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네요.
장시간 운전의 피로가 날아가는, 가슴 벅찬 풍경이었습니다.
여름 내내 피고 지면서 붉은빛을 띠는 수피 때문에 목백일홍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배롱나무는
그 품격이 남달라 예로부터 남부지방의 양반가에서 많이 심었습니다.
거기에 이 명옥헌은 담장을 두르지 않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정자였지요.
명옥헌 옆, 감나무 농원을 지나니
작은 연못 안의 분홍빛 연꽃이 배롱꽃과 조화를 이루며 피어 있어 그 또한 기분 좋은 날이었네요.
명옥헌에서 나와 슬로시티가 있는 창평면으로 왔습니다.
면사무소의 현판은 이 마을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고색창연한 '창평현청',
창평 안의 이 '삼지내 마을'은 담양의 슬로시티입니다.
1510년경에 형성된 동네는
마을 동쪽에 있는 월봉산과 남쪽의 국수봉에서 흘러내린 세 갈래의 물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어서
'삼지천(삼지내) 마을'이라 부른답니다.
고씨 집성촌으로 '고재선 가옥', '고재환 가옥', '고정주 고택'을 비롯하여 남도의 전통가옥 여러 채가 남아 있었지요.
국가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300년이 넘는 3.6km의 옛 담장은
한과와 쌀엿, 장류 등의 전통식품과 함께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러한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2007년 청산도, 신안 증도와 함께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됩니다.
이 마을은 들판 가운데에 있어 농산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예부터 부농이 많았다네요.
고재환 가옥과
고재선 가옥은 1925년에 지은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부농의 전통 가옥으로
안채 앞을 화단과 담장으로 막으면서 사랑채를 배치한 구조에
잘 다듬은 목재는 뼈대가 굵고 짜임이 건실하여 남도지방의 양반가옥으로 손색이 없으며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전통 목조건축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네요.
그러나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퇴락한 채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구불구불 자연스럽게 굽은 마을 안 길은 고즈넉한 분위기로 고가들과 조화를 이룹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의 어느 마을로 들어선 듯 고풍스럽고 차분한 동네였습니다.
담장의 구조는 돌과 흙을 사용한 토석담으로 둥근돌을 사용하였고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 쌓기 형식의 담장이 섞여 있습니다.
담 아래에는 큰 돌을, 위로 가면서 작은 돌을 사용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었지요.
특이하게도 집집마다 대문에 이런 특징적인 별명을 붙여 놓아서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
우리의 전통 꽃인 봉선화와 능소화, 맥문동과 호박꽃을 볼 수 있는 향수 어린 동네였네요.
삼지내 마을에서는 면사무소에 등록한 민박집이 많기 때문에 안전하고 분위기 좋은 한옥에서 숙박할 수 있고
창평 시장 안, '국밥거리'에서는 전통음식을 먹어볼 수 있습니다.
6~7개의 국밥 식당이 들어서 있는 이 거리에서 줄이 제일 길었던 식당의 순대와 돼지고기가 섞인 모둠 국밥입니다.
돼지고기 누린내가 짙게 밴 이 식당에는 끊임없이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예약할 경우에는 아침식사도 가능하답니다(08:00~20:00). 전화 061-382-8039.
소문을 듣고 찾아간
36가지 저염 장아찌에 발아 흑미밥, 천연된장국에 댓잎건강보리차와 꽃차를 제공하는 뷔페식 '약초밥상'의 음식은
글자 그대로 '건강밥상'이었지요.
안주인이 직접 캔 약초를 발효, 숙성시켰다는 다양한 장아찌들은 흥미로웠지만
야생의 거친 약초들은 입안에서 따로 놀았고 저염된장국은 간이 너무 싱거워서
비록 시장의 국밥과 마찬가지로 청평을 대표하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내 입맛에는 실망스러웠네요.
두 음식 모두,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강할 듯합니다.
농가한식뷔페, 전화 061 383 6312.
중심가인 파출소 앞에 정거장이 있었던 담양의 시티투어 버스, '가사문학 코스'가
담양 시내에서 여기까지 연결되면서 쉽게 오갈 수 있고
담양 오방길의 4코스, '싸목싸목길'은
면사무소에서 시작하여 삼지내 마을과 그 주변을 둘러보는 산책길로
마을 돌담길을 지나 '남극루'와 '용운 저수지', '상월정', '포의사'까지 7.2km, 3시간 40분 거리를 돌아오는 트레일입니다.
우리 민박집에서는 넓은 정원 너머 멀리 '국수봉'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