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벽당'은
조선 명종 때(1540년), 사촌 김윤제(1501~1572)가 관직을 떠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을 벗 삼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지은 남도 지방의 전형적인, 온돌방이 있는 누각입니다.
그가 가르친 대표적인 제자는 김성원과 정철.
환벽당에는 당대의 문인이었던 송순, 임억령, 김인후, 기대승, 고경명, 백광훈 들이 드나들었답니다.
지금은 정철의 4대손 정수환이 김윤제의 후손에게 사들여 '연일 정 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지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 형제는 김윤제의 종손으로
근처에 김덕령에 관련된 '취가정'이 있습니다.
'사방을 푸르름으로 둘렀다'는 뜻을 가진 환벽당은
정철이 27세에 과거에 급제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머물면서 공부했던 곳으로
우암 송시열의 현판 글씨에
조자이의 글도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푸르름에 둘러싸인 곳'입니다.
언덕에서 협문으로 내려가면
두 그루의 소나무, 쌍송 사이에 김성원과 정철이 낚시를 했다는 바위, '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용소가 있었다는 중암천도 많이 변했네요
조대에는 정철의 성산별곡 일부가 보입니다.
'한 쌍의 늙은 소나무는 낚시터에 세워두고
그 아래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던져두니
강가의 붉은 여뀌꽃과 하얀 마름꽃을 어느 사이에 지났는가
환벽당 용의 연못(용추 계곡)이 배 앞에 닿았구나'.
환벽당에서 나와 '명목헌'으로 가는 길에 예쁜 동네를 지났지요.
명옥헌은 '오이정(1619~1655)'이 요절한 그의 아버지, '명곡(鳴谷) 오희도'가 살던 곳에 지은 별서정원,
뛰어난 조경으로 이름이 알려집니다.
우암 송시열은 '계곡의 물소리가 옥구슬에 부딪혀 새 울음소리처럼 들린다'며 '명옥헌'이라 이름을 짓고
현판 글씨까지 썼답니다.
정철의 아들로 홍문관대제학이었던 '정홍명'의 글에
뜰에는 아버지를 그리는 아들의 마음 담은 비석이 서 있습니다.
정자와 연못을 두른 무성한 배롱나무가 인상적이었지요.
7~8월, 짙은 녹음 속에 온 산을 뒤덮고 있을 배롱나무 꽃의 장관을 상상하면서
그 시절에 다시 오고 싶었습니다.
정철이 잠시 벼슬에서 물러나 창평으로 돌아왔을 때 머문 '송강정'입니다.
다시 조정으로 돌아가기까지 4년간 여기서 지내며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썼다지요.
처음 이름은
초가의 '죽록정'이었지만
후손들이 정비하면서 '송강정'이라는 현판을 달았고.
정자 옆에 있는 '송강 정선생 시비'의
뒷면에는 '사미인곡'을 새겼습니다.
정철의 글도 보입니다.
1533년 송순이 담양의 제월봉 아래에 지은 정자, '면앙정'은
이황을 비롯한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고경명과 기대승 등의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그는 최초의 가사인 ‘상춘곡’ 외에 ‘면앙정가’와 시조인 '오륜가'들을 남깁니다.
그가 면앙정에서 지은 한글 시조,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을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
에는 조선 시대의 모든 정자와 정원에 적용되는 차경(借景)의 원리가 담겨 있는데
이는 동산과 숲의 자연 상태를 최대한 살려 두고 적절한 위치에 집과 누정을 배치하는 자연친화적인 조경이었지요.
측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는 방을 배치하면서 정면이 탁 트인 풍광이 좋습니다.
정자에는 송순의 ‘면앙정 삼언가(俛仰停 三言歌)’가 판각되어 있습니다.
한글로 풀이하면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그 가운데 정자를 지으니 흥취가 호연하다.
바람과 달 불러들이고 산천도 끌어들여
청려장 지팡이 짚고 백 년을 보내리라'로
끝나는 이 글에는 '면앙'의 뜻과 송순의 인생철학이 담겼습니다.
그는 이 시의 앞부분,
‘俛有地 仰有天 停其中(면유지 양유천 정기중,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그 가운데 정자를 짓는다)’
중에서 앞의 세 글자, 俛, 仰, 停을 누각의 이름과 자신의 호로 사용합니다.
보기 드문 '소쇄처사 양산보'의 시도 보입니다.
강호가도의 누정 탐방을 끝내고 담양 시내의 '죽녹원'에 들어왔습니다.
죽녹원은 2003년 5월에 조성된 31만㎡의 울창한 대숲과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의 정자문화 등을 볼 수 있는 시가문화촌으로 구성,
전망대와 쉼터, 정자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습니다.
잠시 울창한 대숲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대숲에서 대 이슬을 먹고 자란 '죽로차'는 어떤 향을 가지고 있을까요?
대금의 명인, 원장현의 동상에
담양 출신인 서편제의 대표적인 명창 박동실(1896~1969)이 판소리를 공부하던 우송당은
지금도 판소리전수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네요.
'시가문화촌'에는
강호가도에서 만났던 '명옥헌',
'송강정'과
'환벽당',
'광풍루'와
'식영정' 같은 누정이 재현되어 있어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송순의 '면앙정가'와
고경명의 '어주도',
전신민의 '독수정 원운',
서하처사, 김성원의 시조,
유희춘의 시조 등 많은 시가도 보입니다.
이 죽녹원 안의 우리 숙소는 '죽향당'.
방문을 열면 바로 앞에 그윽한 대숲이 보이는 멋진 숙소였습니다.
죽녹원 한옥 이용은 죽녹원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습니다.
매일 오전 9시에 홈피가 열리면 예약은 현재 시점, 1개월 이후의 제 날짜에 숙박이 가능합니다.
5월 4일에 이용할 계획이라면 4월 4일 9시 이후에 들어가야 예약 가능.
문의전화 : 010-7633-2690, 09시~18시.
죽녹원 외에 '한국대나무박물관'과 '삼다리 대나무숲'도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