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구천동의 33 경인 향적봉에 올라가려고 아침 일찍 무주 리조트에 왔습니다.
중급자 슬로프 옆, 설천하우스에서 종점인 설천봉(1520m)까지 올라가는 곤돌라는
아침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매일 운행됩니다.
계절에 따라 시간 변동이 있고 전화는 063 320 7187. 성인 왕복요금 16000원, 실버는 30% 할인,
2.6km, 편도 15분 거리.
설천봉에 있는 기와지붕의 멋진 건물, 이름도 그럴듯한 상제루는 의외로 평범한 여행용품 가게였고
그 아래쪽으로 단층의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여기서 보는 탁 트인 경치와 만발한 야생화들이 참 좋았습니다.
저 아랫마을에서는 벌써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간다는
주목은 고사목이 되어서도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덕유산의 상징인 주목은 상록 교목으로 1000m 정도의 높은 산에서 자생하며 키가 22m 정도 자라는 나무.
그러나 대표적인 아고산대 지역인 덕유산에도 기후 변화와 몰려드는 탐방객으로 인해 생태계 훼손이 심각해지면서
서봉과 향적봉 지역 침엽수 군락의 평균 고사목 비율이 2009년의 9%에서 2015년에는 47%까지 늘었답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듯합니다.
유명 스키장이 있는 곳답게 자연보호 캠페인도 스키 보드로 만들어 놓아 눈을 끌었고.
설천봉에서 최고봉인 향적봉까지는 편도 0.6km, 20분 거리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눈 구경하러 왔던 어느 해 겨울, 미끄러워서 위험하다며 이 길을 차단했던 탓에 그냥 되돌아간 일이 있었지요.
드디어 33경 1614m의 향적봉.
그러나 정상에서는 덕유산군의 중봉과 무룡산이 보일 뿐,
구름이 내려앉은 삿갓봉과 서봉, 남덕유산이며
중봉과 무룡산 사이 뒤쪽 멀리 있다는 지리산의 천황봉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쪽으로 보인다는 계룡산도 역시 구름에 가렸고,
동쪽의 가야산도 희미합니다.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저 아래의 향적봉 산장.
정상 아래 넓은 고원에는 야생화가 가득했습니다.
그야말로 마음 설레는 '천상의 화원'이었지요.
아쉬움을 남기며 향적봉에서 내려가는 길.
뒤돌아보니 왼쪽 멀리, 두고 온 향적봉이 보입니다.
곤돌라 하행선을 타고 리조트에서 다시 이동,
글자 그대로 붉은 치마를 두른 듯 가을의 붉은 단풍으로 유명한 赤裳山에 왔습니다.
실록을 보관했던 史庫와 안국사 등의 유적에 양수발전의 산정호수가 있는 곳입니다.
입구 북창리에서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구불구불,
상부댐의 거대한 돌벽을 지나는 끄트머리에는 수리 중인 터널이 있었지요.
赤裳山 정상(1029m)은 분지 형태로 지금은 양수발전소 상부 댐인 산정호수, 적상호가 있습니다.
적상산성의 내부였던 이 넓은 대지는 1992년 상부댐을 쌓으면서 수몰되었고
거기 있던 적상산 史庫는 현재의 자리로, 안국사는 호국사 터로 이전했답니다.
고려의 최영 장군이 쌓았다는 산성의 둘레는 8143m.
赤裳山 史庫는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을 보관하던 5대 사고 중의 하나로 적상산본은
현재 평양의 한 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다네요.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199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시대 제1대 태조부터 25대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방대한 역사서입니다.
정문인 외삼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왕실의 족보를 보관한 선원각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각(실록각)이 있습니다만
지금 사각에 전시되고 있는 실록은 모두 원본이 아닌 영인본입니다.
전시된 그림에서 보는 왕조실록의 편찬과 봉안, 포쇄와 사고 수호가 재미있었습니다.
먼저 국왕의 승하 후에 임시로 실록청을 설치, '춘추관 시정기', '승정원일기'와 '가장사초'를 기본 자료로
선왕의 실록을 편찬하고 초초, 중초, 정초의 세 단계 검토를 거쳐 완성합니다.
그리고는 실록의 멸실을 막기 위하여 같은 내용으로 여러 질을 간행, 전국의 5대 사고에 나눠 봉안하였지요.
지방의 사고로 실록을 옮기는 춘추관 사고 봉안식 날에는 실록청의 모든 관리들이 나와 배웅하였답니다.
사고에 보관된 실록은 3년에 한 번, 책의 습기를 제거하고 충해를 막기 위하여 거풍과 햇빛에 말리는 작업에
사고 건물, 실록의 보관 상태 등을 점검, 보수하였고(포쇄).
깊은 산속의 사찰, 승려와 상주 군사들이 이 사고를 지켰다네요.
여기 적상산 사고 수호에는 안국사와 호국사의 승려들이 중심이 되었지요.
특히 안국사는 고려말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란으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며 적상산을 지켜온
호국불교의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史庫에는 해설사가 상주, 여행자에게 사고를 안내하고 학생 대상의 실록 탁본 체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고 앞에서는 적상산성의 내부였던, 지금은 상부댐인 적상호가 보입니다.
호수를 돌아 주차,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발전소의 고압수조를 활용한 건물입니다.
적성산 전망대에서는
향적봉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상부댐이 있는 적상호와
저 아래, 하부댐이 있는 무주호는
전망대에서 본 양수발전소 전경 사진에서 한눈에 볼 수 있었지요.
양수발전은 하부 저수지의 물을 상부 저수지로 끌어올려 저장하였다가 전력수요가 증가할 때
3분 이내에 즉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랍니다.
무주 양수 발전소는 300 MW 용량의 발전기를 두 대 보유, 9시간 동안 하부의 물을 상부로 옮긴 후
저장한 물을 이용해 지하발전소에서 최대 7시간 30분간의 전기를 생산,
연간 평균 6억 kWh의 전기를 만들어낸다 했네요.
여기 고지대에는 벌써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단풍나무가 많은 산, 가을의 붉게 물든 풍경이 아름다워서 산 이름도 '赤裳'이 되었다지요.
나무 그늘에 앉아 몇 년 전 가을, 단풍 찾아왔던 날을 되새기는 시간.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