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여행을 떠났습니다.
무주 덕유산의 구천동 계곡을 걷고 곤돌라로 향적봉에 올랐다가 적상산을 구경한 다음
고창 선운사의 꽃무릇과 학원농장의 메밀꽃밭에서 놀고 장성의 편백나무 숲 속에서 쉬는 일정이었지요.
먼저 사계절 어느 때 찾아와도 좋은 여행지,
우리나라 12대 명산 중의 하나인 무주의 덕유산입니다.
전북 무주, 장수와 경남 거창, 함양에 걸쳐 있는, 소백산맥의 중심부에 우뚝 솟은 산으로 최고봉은 향적봉(1614m).
향적봉과 남덕유산(1507m)의 두 봉을 연결하는 능선을 따라
적상산, 두문산, 칠봉, 삿갓봉, 무룡산들이 이어지면서 덕유산군이 됩니다.
향적봉에서 나제통문까지 36km 계곡은
기암괴석과 태고의 원시림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이 '무주 구천동 33경'의 명소를 만들었습니다.
제1경 '나제통문'에서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른 아침, 조선시대 병사 복장의 현지 해설사는 부지런히 비질을 하고 있었지요.
저 문을 지나면
무주군 설천면의 장덕리.
이쪽은 무주군 설천면의 소천리입니다.
나제통문은 장덕리와 소천리 사이의 암벽을 깎아서 만든 人工 洞門으로 높이 3m, 길이 10m.
삼국 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이 되어 양 지역 간 언어와 풍습의 차이가 지금도 여전하다는 이야기가 굳어졌지만
실제로 두 나라 간의 국경은 여기서 동남쪽으로 15km 지점인, 지금의 김천 덕산재였다네요.
일제 강점기인 1925년, 그들이 무주의 금광 개발을 위해
김천과 거창으로 이어지는 신작로를 내면서 뚫은 것이랍니다.
소천리 쪽의 작은 공원 안에는 의병장 강무경의 동상이 보입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왔던 땅에 50년이 훌쩍 넘어 다시 찾아왔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세월 따라 현판 글씨도 바뀌었네요.
나제통문에서 국도 37번,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서 거창군 개명리에 이르는 25.4km는
국토부가 지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의 하나.
이 길은 설천면의 구천동천을 따라 구천동 계곡의
2경 은구암, 3경 청금대, 4경 와룡담, 5경 학소대, 6경 일사대, 7경 함벽소, 8경 가의암, 9경 추월담,
10경 만조탄, 11경 파회, 12경 수심대, 13경 세심대, 14경 수경대를 지나고
덕유산 리조트와 덕유산 국립공원, 덕유산 자연휴양림 앞을 지나는 멋진 드라이브 길입니다.
그 길을 달려 구천동 입구에서 점심을 먹고 덕유산 국립공원 주차장에서 백련사까지 걸었습니다.
왕복 12.8km, 4시간 30분 거리입니다.
주차장에서 덕유산 탐방안내소 앞까지 오면
계곡을 사이에 두고 길은
넓고 평탄한 탐방로와
오솔길에
나무데크가 섞여 있는
구천동 어사길(자연관찰로)로 나뉩니다.
임금의 명을 받은, 말 다섯 필의 막강한 힘을 감춘 암행어사가 남녘의 민정을 보살피려 떠날 때 거쳤다는 길입니다.
달빛 아래 선녀들이 춤추며 내려오듯
폭포수가 기암을 타고 쏟아져 내려 푸른 소를 이룬다는 15경 월하탄을 지나
한국전쟁 당시 이 계곡으로 몰려든 북한 패잔병들을 격파했다는 기록 새긴 구천동 수호비를 지나면
물 위에 도장을 찍은 것처럼 달이 선명하게 비친다는 16경
인월담.
거기서부터는 탐방길에서 어사길로 들어섰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맑은 햇살이 들어오는 숲 속에는
구절초와 물봉선 같은 야생화들이 활짝 피었고.
17경 사자담 근처에는
바위 사이를 지나면서 소원을 빌면 그 염원이 이루어진다는 '소원 성취의 문'과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곡식이며 돈을 받아내던 고약한 도깨비를 지혜로 물리친 동네 사람들의 전설 담긴
'지혜의 문'이 있습니다.
냇물에 시원하게 발을 담가 보고 싶었지만
무주군민들의 취수원이 된다는 이 구천동천 계곡은 출입금지.
다시 사자담을 지나 암반 위에 흐르는 맑은 물이 주변의 수림과 어울려 선경을 이룬다는 18경 청류동을 지나면
이름도 예쁜 19경 비파담.
암반 위로 여러 개 폭포가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비파를 닮은 듯하다 했네요.
20경 다연대, 21경 구월담을 거쳐서 계곡에 놓인 몇 개의 다리를 보며
22경 금포탄에 왔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흐르는 시냇물 소리의 조화가 가야금 소리를 능가할 정도라는 작은 소에
금방이라도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낼 듯하다는 큰 바위인 23경 호탄암과
이어지는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의 비경, 24경 청류계.
이렇듯 향적봉에서 구천동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은
고이면 소(沼)와 담(潭)이 되고 여울은 탄(灘)이 되었으며 암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폭(瀑)과 대(臺)가 되어
풍류객들의 호기와 과장이 담긴, 다소 억지스러운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었지요.
25경 안심대 다음의 26경 신양담은
숲이 터널을 이룬 이 구천동 계곡에서 유일하게 햇빛을 볼 수 있는 곳이라서 붙은 볕 양(陽),
물이 맑아 거울처럼 비친다는 27계 명경담에
28경 2단의 구천 폭포,
29경 백련담, 30경 연화폭, 31경 이속대를 지나 도착한 백련사지입니다.
백련사가 있던 자리이지만 한국 전쟁 때 소실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터를 옮겨 다시 지었는데
덕유산 중턱에 자리 잡은 32경 백련사는 원래 신라시대의 고찰로
신라 신문왕 때 백련 선사가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곳인데
스님이 수행하던 자리 바로 앞, 흰 연꽃이 피어난 곳에 절을 지으면서 백련사라 불렀다네요.
일주문까지 왔지만 초반, 인월담에서 칠봉 가는 길로 잘못 들어섰다가 되돌아 내려오면서
아래쪽에서 산책하며 기다릴 언니네와의 약속 시간에 쫓겨 사찰 구경은 포기, 일주문에서 딱 돌아서야 했습니다.
탐방로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구천동천 건너편, 우리가 걸었던 어사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울창합니다.
다시 37번 도로를 따라 오늘의 숙소, 국립 덕유산 자연휴양림에 왔습니다.
이곳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곳은 1931년에 심었다는 150여 그루의 독일가문비 숲.
나무데크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
한 바퀴 돌면서
그 시대에도 이렇듯 조림을 해 놓은 분에게 감사하는 중입니다.
가문비나무는 50m까지 자라는 상록 침엽 교목으로
약간 구부러져 뾰족하게 밀생하는 잎은 길이 1~2cm, 겉은 진한 녹색으로 광택이 있고 뒷면은 약간 흰 빛을 띱니다.
가지가 가늘고 길게 늘어지는 특징이 있어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쓰이지요.
여름이 덥고 겨울이 건조한 우리나라의 저지대에서는 볼 수 없다지만
덕유산의 이 고산지대는 생장에 알맞은 조건이 되면서 잘 자랐습니다.
침엽수 구분을 확실하게 설명해주는 안내판을 보며
깊은 숲 속을 걷는, 몸과 마음이 쾌적한 시간입니다.
산림텃밭에는 참취꽃이 한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