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에서 남해도로 들어왔습니다.
그 옆의 창선도와 창선 대교로 이어지면서 앵강만을 사이에 둔, 나비 모양의 섬입니다.
앵강만은 ‘꾀꼬리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강처럼 잔잔한 바다’라는 뜻을 가진 ,
이 섬 깊숙이 들어온 만.
바다도, 해안 마을도 잔잔하고 평화롭습니다.
먼저 동남단의 미조항으로 내려갑니다.
지금 4~6월은 멸치잡이 시기로 새벽, 조업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와
은빛 비늘 뒤집어쓰며 호흡을 맞춰서 그물의 멸치를 털어내는 어부들의 활기찬 풍경이 장관이라는데
한낮인 지금은 그저 조용하기만 했네요.
해마다 5월이면 이 미조항에서 '멸치축제'가 열린답니다.
이 지역의 별미, 싱싱한 멸치회로 점심을 먹고
편백과 삼나무가 울창한 숲 속의 '남해 편백 자연휴양림'에 체크 인.
싱그러운 숲 속을 걸어 다녔습니다.
다음날 아침, 제일 먼저 찾아온 다랭이 마을.
남면, '해안 관광 도로'의 최남단에 있는 '가천 다랭이 마을'에는
이들의 선조들이 벼농사를 짓기 위하여 설흘산과 응봉산의 산비탈 급경사지에 만들어놓은 계단식 논이 있습니다.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해가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기 전,
허리를 펴고 자신의 논을 세어보니 한배미가 모자랐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내일 찾자며 집에 가려고 벗어두었던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한 배미가 있었다네요.
산비탈의 자투리 땅도 논으로 만들어야 했던 이곳 주민들의 고달팠던 삶을 말해주는 해학입니다.
중부지방에서는 이미 모내기가 끝난 시기였지만 이곳은 이제 시작하려고 물을 채워놓은 논에
갓 심어놓은 듯 작은 벼 포기의 논들도 보입니다.
그러나 농기계도 쓸 수 없는 산비탈의 좁은 터.
힘든 논농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지금은 대부분 휴경지가 되었다네요.
그러나 풍경만은 뒷산과 앞의 탁 트인 바다에
초록의 계단식 논이 어울리면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그림이 되었지요
마을 중심에는 이 마을의 생명수였다는 '아랫모샘'이 보입니다.
이 섬에는 현재
'이순신 호국길', '만운산 노을길', '다랭이 지겟길', '앵강다숲길', '섬노래길', '화전별곡길', '말발굽길', '고사리 밭길'의
8개 코스, 총 104.2km의 남해 바래길이 있습니다.
거기에 계획 중인 '구운몽길'과 '동대만 진지리길'이 완성되면 이 섬 전체를 걸어서 돌 수 있게 됩니다.
'바래길'은 '갯벌로 조개를 캐러가는 길'이라는 뜻.
섬 아낙의 고단한 삶이 묻어있는 이름입니다.
그중에서 이 지역, '다랭이 지겟길'은
평산항에서 시작하여 유구 진달래 군락지, 사촌 해수욕장, 항촌 몽돌해안, 빛담촌, 가천 다랭이 마을로 이어지는
총 13.6km, 5시간의 길.
다랭이 논길이 너무 좁아서 지게로 곡식을 날랐다는
궁핍했던 선조들의 삶, '다랭이 지게길'은
지금 관광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산책로가 되었습니다.
남해 바다와
앵강만을 바라보며 걷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그러나 마을에 외지인들의 카페와 펜션이 들어서면서
그 옛날의 분위기가 많이 사라진 듯하여 못내 아쉬웠습니다.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섬, 만 안에 있는 노도에 다녀오기 위하여 벽련 마을의
벽련항에 왔습니다.
벽련항에서 노도항까지는 배로 10분 거리.
정기적으로 하루 6회 운항하지만 날씨에 따라 변수가 있으니
선사의 사무장에게 연락, 출항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연락처 010 4045 2720.
성인 왕복 요금 6000원. 매달 2, 4주 수요일은 휴항.
출항 시간표는 벽련→노도 08:30, 10:30, 12:30, 14:30, 16:30, 18:30.
노도→벽련 08:00, 10:00, 12:00, 14:00, 16:00, 18:00.
노도 선착장에는
이곳에 유배되었던 서포 김만중(1637~1692)과 그의 '구운몽' 한 구절을 새긴 멋진 조형물이 서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노자묵고(놀고먹고) 할배’라 불렀다는 김만중.
절망의 나날, 집안에 칩거했던 이 '노자묵고 할배'는 죽어서야 겨우 이 섬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초입의 '노도 문학관'은 준비 중.
김만중의 소설 이름을 딴 '구운몽 펜션'이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
450m 거리,
저 갈랫길에서 오른쪽의
계단을 올라가면
세상에서 잊힌 채 이 땅에서 외롭게 죽은 김만중의 주검이 잠시 머물렀던 허묘 자리가 나옵니다.
56세로 3년 유배의 삶을 마감했던 그를 기념하는 '김만중 문학관'에는
'세상의 모든 일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김만중이 구운몽에서 이야기하던 인생의 허망함, 덧없음이 주제로 나와 있습니다.
김만중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1689년 숙종의 폐비 사건에 반대하다가 남해의 이 섬에 유배됩니다.
유배지의 김만중은 '구월 이십오 일 적중작'과
'재남해문양 질배절도',
'남황' 등의 한시와 한글 소설을 쓰면서
유배 생활의
시름을 달랬습니다.
천릿길 바다 가운데 작은 섬, 슬퍼하실 어머니가 걱정되어 위로의 한글 소설, 구운몽을 썼던 효자였지요.
성진이라는 불제자가 하룻밤의 꿈속에서
국가에 큰 공을 세워 높은 벼슬을 얻고 여덟 부인을 두는 등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깨어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한바탕의 꿈, 일장춘몽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불법에 귀의한다는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그렇게 부질없는 것이니 어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였을까요?
그의 또 다른 한글 소설, '사씨남정기'는
중국 명나라의 양반 사대부인 유 한림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처첩 간의 갈등을 그린 가정 소설로
후처의 모략으로 고생하던 본처가 고생 끝에 남편의 사랑을 되찾는다는 권선징악적 주제를 담았지요
인현 왕후를 폐하고 장희빈을 정비로 세운 숙종의 잘못을 일깨우기 위하여 썼던 이 소설로 인하여
김만중은 숙종의 미움을 사고 머나먼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기념관 화장실 문, 남녀유별에 등장한 구운몽의 팔선녀와 성진의 그림도 재미있습니다.
서포가 직접 팠다는 샘과
복원된 그의 거처.
저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도 그에게는 고통이었겠지요?
겨울을 이기고 피어난 꽃, 인동초 꽃을 보면서 이 절해고도에서 병사한 그의 삶을 애도합니다.
남해읍에 있는 '유배문학관'은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유배문학관으로 유배와 유배문학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를 담은 공간으로
그 앞에는 유배 가는 '죄인'을 호송하는 병사와 소달구지 조형에
서포 김만중의 좌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일 비중이 큰 인물은 역시 김만중.
1923년 영풍서관에서 간행된 '사씨남정기'와
1959년 정음사에서 출판한 '구운몽, 사씨남정기'가 반갑습니다.
김만중의 수필집, '서포만필'에는 '한글로 쓰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관동별곡'을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이라 했던
그의 '한글 문학 예찬'이 보입니다.
'자기 말을 버려두고 다른 나라의 말을 배워서 표현하는 것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것과 같다'던 그는
우리말과 글의 중요성을 강조, 두 편의 한글 소설을 남겼습니다.
문학관 안에서 대표적인 유배 문학가들 면면을 보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1876년 1월 일본과의 통상조약 체결 반대 상소로 흑산도에 유배되어 3년 만에 풀려났으나
그 후 1906년 의병을 일으켜 일본에 항거하다가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되면서 옥사한
면암 최익현의 '흑산도의 가을 회포'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신유사옥 때 강진에 유배, 18년을 보내며 '목민심서'를 저술했던 다산 정약용의 '장맛비',
1618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관직 삭탈,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은 백사 이항복의 시조, '철령 높은 봉에',
1547년,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 19년의 유배생활을 했던 양명학의 대가, 소재 노수신의 '나의 죽음에 부쳐',
중종 때 도학정치를 주창,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하였고
1529년, 기묘사화 때 사사의 명을 받았으나 영의정 정굉필의 간곡한 비호로
능주에 유배되었던 정암 조광조의 '절명시' 등,
한때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고 학자로서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유배와 사면, 사사를 보면서
절대권력의 왕조 시대가 무서워졌습니다.
문학관 뜰에는 그들을 절망의 유배지로 압송했을 황포돛배와
그들이 살았음직한 작은 집,
거기에 배소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시울타리로 둘러쌌던 '위리안치'가 보입니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자산어보'는
천주교 신자로 신유사옥 때 흑산도로 유배 갔다가 '자산어보'를 쓰면서 16년의 유배 생활 끝에
해배의 꿈이 허사가 된 채 거기서 죽었던 '정약전'이 주인공이었지요.
흑백의 화면으로 유형자의 나날을 담담하게 그려내어 더 여운이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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