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터키,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그리스

트로이 유적과 이스탄불

좋은 아침 2011. 7. 18. 13:30

이제 우리 여행의 막바지인 터키 일정, 로도스에서 터키의 마르마라로 들어가

트로이 유적을 보고 이스탄불에서 귀국하는 여정입니다.

그리스에서 터키로 나오면서 터키인들의 친절과 그리스보다 훨씬 싼 물가에 마음이 느긋해졌습니다.

 

 

터키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답게 깨끗하고 예쁜 시내의

 

 

 

 

우리 호텔입니다.

 

 

요트가 늘어선 항구에는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의 동상도 있습니다.

 

 

그 유명한 터키의 아이스크림 한 개만으로도 즐거운 날들!

 

 

밤 버스를 타고

 

 

마르마라에서 트로이(터키어로는 투루바)로 가는 거점 도시, 차낙칼레에 왔습니다. 

여기에서 트로이 유적까지는  37km의 거리입니다.

트로이 문명의 중심지, 트로이에는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목마를 재현한 거대한 조형물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에서 승부가 나지 않자 그리스인들은 나무로 만든 커다란 말을 선물로 남기고 철수합니다.

작전상 후퇴였지요.

그 상황을 모르고 트로이 인들은 승전의 기쁨에 들떠 노획물로 여긴 목마를 성으로 끌어들이면서

잔치를 벌였고 모두 깊이 잠든 밤에 목마에 숨어 있던 병사들이 나와 성문을 열어주자

숨어 있던 그리스 군대가 들어오면서 성은 함락되고 전쟁은 끝났습니다.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는 것을 반대했던 라오쿤과 카산드라는 그리스의 아테나 여신에게

가혹한 징벌을 받게 됩니다.

바티칸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 로도스의 궁전에는 그 라오쿤이 아들들과 함께

뱀에게 고통을 당하는 조각상, '라오쿤 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적지에는 조그마한 로마 원형 극장도 보입니다.

 

 

트로이 땅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기원전,

초기 청동기 문명의 시대부터 트로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지요.

기원전 2500~2000년경에는 에게 해 연안의 교역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지만

이후 번영과 쇠퇴의 역사를 반복하였고 10년 간의 트로이 전쟁을 겪으면서 결국  패전으로 멸망합니다.

그 후 이오니아, 마케도니아, 로마가 지배하면서 그 유적까지 이 땅에는 모두 9개 층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에 나오는 이야기, '트로이의 목마'가  실제로 있다고 믿었던 독일인, 슐리만은

1871~1873년에 히사르륵 언덕을 발굴하면서 이 유적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시루떡처럼 포개져 있는 9개 층의 유적은 언제 그 발굴 작업이 끝날 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네요.

소설가 이윤기는 살아생전에 이곳을 돌아보고 난 후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에서 장엄하게 묘사하고 있는 트로이아 평원과 이데산은 더 이상 옛 모습이 없고

스카만드로스 강도 이제는 흐르지 않는다. 

성벽 하나, 신전의 기둥 하나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애써 가보아야 볼 것도 없다'며

'트로이는 계륵과 같다'고 표현했었지요.

그렇게 이 유적지는 지금 돌무더기가 뒹구는 황량한 들판입니다.

 

 

 

 

 

 

차낙칼레를 떠나면서 항구 앞에서 한 장 찍고 

 

 

이제 우리는 배를 타고 마르마라 해를 건너 이스탄불로 갑니다.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입니다

구시가에 숙소를 정하고 갈라타 다리 쪽으로 나오니 

보스포러스 해협 건너편, 신시가지와 갈라타 타워가 보였습니다.

 

 

근처 술레마니에  모스크에는

 

 

 

늘 그렇듯 예배에 앞서 수돗가에서 세정 의식으로 손과 얼굴, 발을 씻는 무슬림들이 있습니다.

 

 

이스탄불 대학 앞에는 여전히 젊은이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갈라타 항구의 고등어 샌드위치는 그 맛이 달라졌습니다.

 

 

이스탄불의 명물, 그랜드 바자르의 풍경도 몇 장 찍고

 

 

 

 수피댄스를 보러 갔습니다.

 

 

극장의 매점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수피 댄서 인형을 팔고 있었지요.

 

 

'세마'라고도 하는 이 수피댄스는 이슬람의 한 종파, 수피즘에서 행하는 성스러운 종교의식으로

하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들은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회전을 통하여

신과 교감하는 경지에 들어간답니다.

엄숙하면서도 몽환적이었던 공연 분위기 때문에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아무도 선뜻 박수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 극장에서는 공연 중에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대신

공연이 끝난 다음 수피댄스 장면이 담긴 엽서를 한 장 주었네요.

 

 

구시가의  '아야 소피아'와 

 

 

그에 맞서  '더 크게, 더 높게 세우라'는 술탄의 명으로 건설된 블루모스크 앞에는

오늘도 많은 여행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