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에서 쾌속선 밤배로 2시간 거리인 크레타 섬에 왔습니다.
뱃길이 거칠어 멀미로 고생했네요.
섬의 가장 큰 도시, 이라클리온 항구에는 어선과 요트들이 정박에 있고
저 멀리 베네치아 시대의 요새가 보입니다.
크레타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인 제우스의 탄생지이고 그리스 문명이 태동된 땅으로
기원전 700년 무렵에 헤시오도스가 지은 서사시, '신들의 계보'에는
세상의 기원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화적인 상상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맨 처음 틈새가 벌어져 무한히 넓은 공간, 카오스가 생겼고
그 뒤 가슴이 넓어 모든 영원한 것들이 앉을자리, 가이아가 생겼다지요.
카오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우라노스와 산맥, 바다가 나오지만
가이아가 우라노스와 동침, 잉태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우라노스는 가이아를 독점하려는 속셈으로 배 속의 열두 자식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거든요.
참다못한 가이아와 뱃속의 자식들은 우라노스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고
막내인 크로노스가 때를 기다려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버리면서
드디어 땅과 하늘이 분리되었답니다.
우라노스는 자식들에게 똑같은 댓가를 치를 것이라 저주를 퍼부었고
이를 두려워한 크로노스는 그의 아내 레아가 자식을 낳을 때마다 곧 삼켜버렸다네요.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도움으로 레아는 멀리 이 크레타섬으로 피신, 크로노스가 모르게 아들을 낳습니다.
그렇게 몰래 태어난 자식은 제우스.
성장한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의 권력에 맞서 그가 삼킨 아들들을 토해내게 하고
가이아의 뱃속에 갇혀있던 남은 열한 명의 아들까지 구하여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면서
아버지와 아들 간의 10년 전쟁은 제우스와 그 형제들이 크로노스를 지하감옥에 가두면서 끝났습니다.
왕좌에 오른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등
모든 신들에게 적절한 몫이 분배되면서 본격적인 그리스의 신화가 시작됩니다.
제일 먼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이라클리온의 크노소스 궁전에 찾아왔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까지 무려 기원전 1700년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시내에서 2번 버스로 20분 거리입니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은 제우스의 아들로
그의 아내 파지파에가 소의 머리에 인간의 머리를 가진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출산하자
격분하여 명장 다이달로스에게 명령, 미궁을 만들게 하고 거기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면서
9년마다 7명의 젊은이와 7명의 처녀를 제물로 바치게 합니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제물의 하나로 이곳에 왔다가 그에게 반한 크레타의 공주,
알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에서 탈출합니다.
그러나 공주는 곧 테세우스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공주에게 미궁 탈출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다이달로스라는 것을 안 왕은 화가 나서
그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다이달로스는 밀랍과 깃털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서 탈출한 계획을 세웠지요.
이카로스에게 날개를 주며 밀랍이 녹을 수 있으니 절대로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고
당부한 다이달로스는 먼저 날아오르면서 아들이 뒤따르게 합니다.
그렇지만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더 높이 더 높이 솟아오르다가 밀랍이 녹으면서
날개가 떨어져 죽고 말았다네요.
과도한 욕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카로스의 이야기들이 담긴 신화의 현장,
크노소스 궁전은 1700년의 대 지진으로 한순간에 파괴되면서 잊혔지요.
그러다가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더 에반스의 발굴로 신화 속의 그 궁전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알렸습니다.
입구에 그의 업적을 알리는 흉상이 있습니다.
많은 여행자들이 보이는 궁전 안,
화려하게 장식한 작은 홀, '여왕의 방'에는
돌고래와 춤추는 여인이 보이는 프레스코화가 있습니다.
에게 해 일대에서 해상 교역으로 부를 일구었던 미노아 문명의 세련됨을 알려주듯
그 안에는 '여왕의 욕실'과 수세식 화장실, 급수와 배수 시설이 보입니다.
크노소스 궁전의 벽화로 복원된 그림, '백합 왕자'와
화사하고 멋진 머리 장식의 '파리지엔느',
종교의식의 하나로 보는
'황소 위에서 하는 아크로바트' 들이 화려한 색채로 표현되어 있었지요.
항아리에도 독특한 장식과 문양을 새겨 있습니다.
고고학 박물관 안에 있는 도자기도 풍부한 색채와 장식, 섬세한 문양으로
다른 어느 곳의 도자기보다 세련된 모습이었네요.
미노아 문명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던 황소 두상에
신전의 봉납고 터에서 발굴된, 양손에 뱀을 든 이 궁전의 수호신, '뱀의 여신상'도 있습니다.
크레타의 오말로스에는 18km를 계속 걸어 내려가는 사마리아 계곡 트레킹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최고의 트레킹 길이라기에
다음 날을 하니아에서 로컬버스를 타고 오말로스까지 간 다음 거기서부터 걷었지요.
워낙 깊은 산이라서 트레킹 입산은 5월부터 9월까지만 허용된다네요.
산꼭대기에는 여전히 눈이 남아 있었지만
산 아래로는 5월의 싱그러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우리도 이 시기를 찾아 몰려온 다국적 일행들과 어울려
중간의 사마리아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잠깐 쉰 다음
작은 암자가 있는 절벽 사이를 지나
아름다운 사마리아 계곡을 걸었습니다.
트레킹이 끝난 후 해수욕으로 흘린 땀을 씻어낸 다음
배를 타고 Sfakion으로 이동, 하니아로 다시 돌아갑니다.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같이 걸었던 것을 모를 정도로 산은 아주 깊고 컸습니다.
다음날은 현지 투어에 합류, 예쁜 항구도시 엘룬다와
그 앞에 있는 섬, 스피날롱가의 베네치아 시대에 만들어진 웅장한 성채에 다녀왔습니다.
여러 민족의 침입에 맞섰던 크고 강인한 모습의 성입니다.
작은 해변의 느긋한 휴식도 즐거운 시간!
탁 트인 에게 해를 바라보며 유유자적 영면에 들어간 카잔차키스의 무덤에 왔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자유로운 정신을 내세웠던 사상가, 소설가였던 카잔차키스의 무덤 앞에는
조촐한 나무 십자가 하나만 달랑 세워져 있습니다.
어떠한 형식에도 얽매이기를 싫어했던 그의 영혼을 보는 듯했네요.
그의 무덤다웠지요.
크레타를 배경으로한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앤소니 퀸이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로 상영되면서
마지막 장면, 해변의 춤은 희미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이 섬의 실존 인물로 거칠 것 없이 자유롭게 살았던 주인공, 조르바의 삶은
카잔차키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네요.
크레타의 골목, 작은 가게 주인에게 그 조르바의 춤 동작을 배우며 깔깔거렸던 시간도 추억이 되었습니다.
어느 성인의 축일인 듯 관악대를 앞세운
성직자와 신자들의 시가행진이 보이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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