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의 호주 여행을 마치고 언니는 시드니에서 귀국.
우리는 Virgin Australia를 이용, 시드니에서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로 왔습니다.
전산 비자를 받았던 호주와 달리 이 나라는 무비자.
시드니 공항에서 보딩패스를 받을 때는 귀국 항공권을 확인합니다.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의 세관 통과 때, 브루니 섬에서 산 꿀을 압수당하면서 벌금을 낸 일도 있었지요.
1+1에 산, 50g과 70g 두 개의 꿀을 신고하지 않아서 생긴 일.
그렇게 작은 것쯤이야 했다가 당했습니다.
뉴질랜드는 마오리어로 '희고 긴 구름'이라는 뜻의 '아오 테아 로아(Ao Tea Roa)'.
원주민 마오리는 1000여 년 전, 태평양의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와 이 땅에 정착했답니다.
이후 이곳에 상륙한 유럽인은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벨 타스만으로
그는 고향, 젤란드의 이름을 따서 이곳을 '새로운 젤란드', '뉴질랜드'라고 불렀고
그러면서 호주와 이 나라 사이의 해협은 '태즈메이니아 해'가 되었다네요.
유럽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땅을 지키려는 원주민들과 전쟁이 벌어졌지만
승리한 영국은 실질적으로 이 땅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1960년부터 시작된 마오리 권리 회복 운동으로 이들의 위상도 달라지면서
마오리어는 영어와 함께 공식 언어로 인정받았습니다.
면적은 일본과 비슷하며 인구는 약 500만 명, 우리와는 시차 -3시간입니다.
오클랜드 한인 여행사의 남북섬 프로그램에 몇 가지를 추가로 맞춤여행을 주문,
12박 13일의 자유배낭으로 시작합니다.
남섬 최대의 교통 요지로 발전했던 크라이스트 처치는 2011년의 대지진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었습니다.
한때 이 도시의 중심이었던 대성당은 지진에 무너진 상태로 그 날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지요.
붕괴 위험 때문에 쳐놓은 펜스의 화려한 그림이 폐허의 건물과 비교 되었네요.
오늘은 금요일, 이 성당 앞 광장에 '푸드 트럭 페스티벌'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지진과 함께 멈춰 섰던 트램은 2014년부터 재개통되어 대성당 주변의 2.5km를 다시 오가고,
새로 지은 시의회 건물 앞에는 마오리 조각이 서 있었네요.
속소 근처, Hagley Park는 수령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나무들의 숲입니다.
활짝 핀 꽃들로 산책이 즐거웠습니다.
도심에는 에이번 강이 흐릅니다.
그 강에 있는 '추억의 다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장으로 떠나던 군인들이 지나갔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종전 후 희생자들을 기리며 그 위에 '추억의 문'을 세워놓았습니다.
지방 여행을 앞두고 숙소에 캐리어 한 개를 맡긴 후(1주일에 20달러) 전날 예약해 놓은 슈퍼 셔틀로 열차역까지 이동,
아침 8시 15분에 출발하는 열차에 탔습니다.
서해안의 크라이스트 처치와 동해안의 그레이마우스 사이, 230km 거리를 횡단하는 'Tranz Alpine Train'입니다.
이 산악열차 구간의 멋진 경치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정도라지요.
연간 10만 명이상의 여행자들이 이용한다는 관광열차,
새로운 시작, 희망, 발전을 뜻하는 뉴질랜드의 상징, 은 고사리 마크에
뉴질랜드인을 지칭하는 키위, 국조인 키위, 이 나라의 대표적인 과일 키위 등
모든 의미를 담고 있는 '키위 레일'입니다.
기차는 느린 속도로 천천히 달렸습니다.
캔터베리 평야의 목초지대와
와이마카리리 강,
계곡과
'Arthur's Pass'의 해발 378m, 'Otira'를 지나갑니다.
'서던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여행자들은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들고 전망칸으로 몰려와 이 아름다운 풍경을 찍었습니다.
오후 1시, 그레이마우스 도착,
대기하고 있던 코치 버스로 환승,
중간, Hokitika에서 정차하여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달립니다.
드디어 프란츠 요셉에 왔습니다.
우리 숙소 YHA에서도,
마을에서도 저 위, 'Mount Cook'과 빙하가 보입니다.
메인 스트리트 양쪽으로
호텔과 카페, 여행사들이 모여 있는 이 작은 동네에서는
빙하 위를 걷거나 사이클, 헬리콥터와 경비행기 투어 등 각종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황제였던 프란츠 요셉의 이름을 붙인 이 지역의 마오리어 이름은
'카 로이마타 오 히네후카테레'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소녀의 눈물'이라는 뜻.
저 산에서 실족사한 연인을 슬퍼하며 히네후카테레가 끝없이 흘린 눈물은 빙하가 되었답니다.
'프란츠 요셉 빙하 밸리 가이드 워크'에 참가하기 위하여 들른 사무실에서
이 빙하를 구경하는 19세기 사람들의 정장 차림 사진이 재미있어서 한 장 찍었습니다.
빙하에 가기 전, 고객 전용 컴퓨터로 개인 건강 이상 유무를 셀프 체크하는 과정이 있기에
코스가 까다로운 줄 알고 잠시 긴장했는데 실제로는 평탄한 등산이어서 웃음이 나왔지요.
'빙하 밸리 가이드 워크'는 가이드의 안내로 와이호 강을 따라 밀려온 빙하, '프란츠 요셉 빙하'에
가까이 접근하는 왕복 4시간의 트레킹입니다.
마을에서 2km 거리의 주차장에 도착, 셔틀버스에서 내려서 안내문을 읽고
우리는 다국적팀에 섞여 'Glacier Valley Walk'를 진행합니다.
'Forest Walk'를 지나
숲 속, 곳곳의 작은 폭포를 보며
너덜길을 걷다 보니
어느 틈에 나타난 빙하.
그러나 여기까지입니다.
준비 없이 온 일반인들은 빙하 위를 걸을 수 없었네요.
되돌아보니 'Forest Walk'가 아닌 평탄한 길로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었지요.
저곳도 모두 빙하가 있던 자리랍니다.
빙하가 점점 녹으면서 그 한계점도 점점 뒤로 물러나고 있답니다.
명랑한 가이드 아라, 한국 라면을 좋아한다는 미국인 낸시와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온천 '글레이셔 핫풀'에 잠깐 몸을 담갔다가 숙소로 가는 길에서 '꺄 오라(안녕하세요?)' 반갑게 먼저 인사하던
마오리 모녀를 만났습니다.
접근하기 어렵게 무뚝뚝했던 울룰루의 애보리진과는 달리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들은 밝고 당당해서 대하기가 편했지요.
호주와 뉴질랜드에 발을 디딘 유럽인들은 상대적으로 차이가 있었고
원주민들의 침략자에 대한 대응도 달랐기 때문이었을까요?
호주 정부에서는 애보리진에게 생활비를 보조해주는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지만
이 명랑한 마오리 모녀를 보면서
원주민을 쓰레기 취급,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내몰고 적당히 돈을 지불하여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정책이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을 소재로 한 뉴질랜드의 예쁜 화폐, 뉴질랜드 달러입니다.
영연방인 다른 나라와 달리 지폐 도안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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