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강진만을 사이에 둔, 바지처럼 생긴 지형에 '탐진강 푸른 물결과 월출산 깊은 골짜기마다 다산의 실학정신과 영랑의 시혼이 빛난다'는자부심의 고장입니다. 먼저 다산의 족적을 찾아갑니다.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머물렀던 4년의 사의재, 그 후 1년 가까이 보은산방에서 지내다가제자인 이학래의 집에서 2년, 윤단의 山亭에서 11년,유배 생활 18년을 보내면서 그 장소들은 다산실학의 4대 성지가 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을 극진하게 대했던 개혁 군주, 정조의 승하 이후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조정에서는 천주교 신앙 문제를 표면에 내세우면서 정적 제거에 나섭니다.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현에 유배되었던 다산은'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지를 옮기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