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일본 중부산악국립공원 주변

'雪國'의 무대, 에치고 유자와(越後湯澤)

좋은 아침 2024. 11. 28. 07:10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온천 마을, 니카타(新瀉, 신사) 현의 에치고 유자와(越後湯澤)에 왔습니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면서 먼저 가까운 도카마치(十日町) 시의  'Tunnel of Light'를 보기 위하여  9시 30분 출발하는 키요츠 협곡(淸津峽) 행 직행버스를 타고 

 

 

30여 분 지나 입구 도착.

 

 

협곡을 따라 

 

 

터널 안으로 들어갑니다. 

 

 

 'Tunnel of Light' 는 기존의 총길이 750m 터널을 외부 세계와 차단된 잠수함으로 설정하면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잠망경 역할은 중간 세 군데의 전망대로,  출구는 파노라마 스테이션으로 표현한 작품.

2018년 이 지역의 '대지의 예술제'에 참여했던 작품을 재단장한, 자연과 예술이 빚어낸 걸작이랍니다.  

예술제는 3년에 한 번, 올해에는 지난 8월 13일부터 11월 10일까지 다양한 행사가 진행 중이었고

이  'Tunnel of Light'의 경우, 개방 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입장 마감은 4시 30분, 입장 요금은 성인 1,000엔. 성수기에는 사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www.klook.com

행사 폐막 후에도 이 프로그램은 계속 운영하지만 동절기에는 강설량에 따라 임시 휴장을 할 수도 있다네요.

1 주차장에서는 버스 승하차,

1 주차장까지 3 주차장 사이에는 셔틀버스가 다닙니다. 

 

 

색색의 빛 터널을 지나

 

 

 

안과 밖의 빛이 만나는 제1 터널을 지나면 

 

 

 

밖의 풍경을 원형의 수많은 거울이  반사하며 터널 내부로 끌어들이는 제2 전망대.

 

 

 

천장과 벽, 바닥까지 흰색과 검은색의 줄무늬가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제3 전망대에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 키요츠 협곡의 풍경을 반사하는 바닥의 얕은 물웅덩이,  '수반 거울'이 환상적 대칭을 만들어내는  '파노라마 스테이션'이 나옵니다.

벽과 천장의 스테인리스판도 거울이 되어 저 주상절리와 초목까지 그대로 내부에 들여놨네요. 

자연과 예술의 색다른 협업이었지요.

 

 

이 멋진 장소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샷을 만들었습니다.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물을 만나 급격하게 식으면서 만들어진 육각형 기둥, 주상절리가 키요츠 강의 침식으로 그 거대한 깊이를 드러내면서 이 계곡은  쿠로베 협곡, 오스기 협곡과 함께  일본 3대 협곡의  하나가 되었답니다. 

 

 

축제 폐막일을 앞두고 여행자가 줄면서 11시 예약에 관계없이  일찍 입장할 수 있었기에 두 시간 정도 터널 속을 구경하다가 다시 에치고유자와 역으로  돌아왔지요. 

점심 후에는 역에서 15분 정도 거리의 유자와 고원 입구로 걸어가서 

 

 

166인승의 거대한 케이블 카에 타고 위로 올랐습니다.

 

'

전망대에서는 왼쪽으로 고가 철로 끝, 터널 근처에 있는 우리 숙소, '다카한(高半)'이 보입니다. 

 

 

거기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니

 

 

밥슬레이와 집라인, 고카트 등의 놀이 시설과 길고 짧은 트레킹 코스가 연결되는  

 

 

넓은 광장이 나오고

 

 

 

고산식물원으로 가는 별도의 케이블카도 있었지요.

 

 

우리는 케이블 카 탑승객에게는 무료인 리프트를 타고 호숫가로 내려가 

 

 

이국의 가을 속을 걸어 다녔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일본어가 지닌 운율을 살리면서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일본 근대 문학 작품을 통틀어 보기 드문 명문장이라고 평가받았던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雪國' 도입부입니다.

150여 페이지의 짧은 장편, '雪國'은 1935년 '저녁 풍경의 거울'을 발표한 후 십수 년의 긴 시간 동안 연작 형태로 썼던 여러 단편을 모아 장편으로 재구성, 완벽을 기하며 수많은 퇴고를 거친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동양적 미의 정서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지요.

 

여기는  '雪國'의 배경지로 눈이 많이 내리는  산골(雪國),  유자와 온천.

작가는 여기 다카한(高半) 료칸에 머물면서 소설의 주인공인 시마무라가 되어 뚜렷한 줄거리 없이 '작가 주변의 인물들, 실존인물이었던 게이샤 고마코, 가상의 인물로 기차 안에서 만난 소녀, 요코 들의 사소한 표정 변화와 말투, 동작에 감춰진 감정의 섬세한 흐름, 주변의 사물과 니가타의 자연이 드러내는 계절의 변화 들을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냈다'지요.

스토리가 아닌,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지역의 눈 덮인 산과 雪國의 밤풍경,  우수 깃든 산촌의 서정,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고독과 허무를 표현'하고 있었네요.

유년 시절에 겪었던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은 그의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답니다.

1972년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다카한(高半)의 우리 방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벽에 붙어 있던 이 안내,

 

 

겨울에 접어들면서 민가로 찾아드는 지독한 냄새의 노린재에 관한 '雪國'의 사유 한 구절이었지요.

 

'가을이 차가워지면서 그의 방 다다미 위에서 죽어가는 벌레를 매일 볼 수 있었다. 

날개가 딱딱한 이 벌레(노린재)는 뒤집히면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한다.

계절이 옮겨가듯 자연스럽게 죽어가는 조용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다가가 보면 다리와 촉각을 가늘게 떨면서 괴로워한다. 

그 작은 죽음의 장소로 팔 첩의 다다미는 너무 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벌레가 좀 들어오더라도 양해해 달라는 요청이었지만

작가가 '雪國'을  집필하며 머물렀던 료칸이라는 강한 자부심이 느껴졌네요. 

 

건물 앞으로는  군마현과 나가노현의 접경인 소설 속의 '시미즈 터널'처럼 터널의 끝에서 

 

 

나오는 열차가 보입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이 지역의 저런 순간을 두고 작가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고 썼던 걸까요?

 

 

멀리 점심 무렵에 다녀온 유자와 고원의 케이블카도 있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료칸의 노천탕에서도 볼 수 있었네요.

 

 

료칸의 2층은 서재,

 

 

그 한쪽으로 가와바다 야스나리를 추모하는 기념 공간이 나옵니다. 

 

 

 

말년의 작가 모습과  

 

 

그가 사용하던 찻잔이며 글씨, 저서들.

지인들이 남긴 방문 기념 사인, 

 

 

 

스웨덴 국왕에게 수상 메달을 받는 작가의 모습이며

 

 

 

우리나라 민음사와 범우사의 한글 번역본이 보이고 

 

 

만화가, 허영만이 남긴

 

 

방문 소감도 있습니다. 

 

 

주인공 고마코의 실제 모델이었던 게이샤, 마쓰에 사진과 함께 

 

 

그녀가 머물던 방도 그대로 재현해 놓았고,

 

 

 1950년대 이 료칸의 모습이며 

 

 

영화화되었던 장면장면들, 

 

 

영화 관련 스태프들과의 만남과

 

 

그의 작품을 번역하고 세상에 소개한 사람들과 찍은 사진도 보입니다.

 

 

눈으로 먹는다는 일본 요리, 료칸의 저녁 식사는 깜찍한 그릇과 함께 맛도 양도 모두 만족스러웠네요.

 

 

 

 

저녁 식사 후에는 로비 한쪽, 창가의 스크린을 내린 

 

 

작은 영화관에서 50여 년 전, 영화로 만들어진 ' 雪國'을 관람했습니다. 

그러나 2시간 15분, 흑백의 이 오래된 영화를 보면서 주연 배우의 어색한 연기, 오버하는 조연들 때문에 몰입이 되지 않아 더 견디지 못하고 1시간 만에 퇴장하였지요. 

그러면서 이 소설 자체가 영화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했네요.

 

 

료칸 안내에는 작가가 여기서 雪國을 집필했다고 밝히며 

 

 

그가 작품을 구상하며 산책하였다는 길,

 

 

 '雪國文學散步道'와 

 

 

스와(諏訪, 추방)신사 등 주변을 안내하고 있습니다만 

 

 

이제 그 길은 도시의 변두리로 흡수되면서 옛 모습을 잃었습니다. 

 

 

 

료칸 뒷길, 낙엽 뒹구는 길을 돌아 나오면서 오랫동안 꿈꾸던 곳이었지만 이제 다시 올 일은 없겠다는 생각,

이런 방문이 홋카이도의 아사히카와에서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문학관'을 찾았을 때처럼 작품에 대한 감동보다는 단발머리 시절의 나를, 나의 추억을 소환하는 의미였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나 그런 의미조차 이 황혼의 시간에는 다 부질없는 일이었네요.

 

 

다시 나가노를 거쳐 마쓰모토로 돌아가는 날은 첫날의 지정석을 포함한 2인 편도 특급의 19,420엔에 놀라서 이번에는 느긋하게 2인 편도 7,480엔의  로컬 열차에 탔습니다. 

오전 7시 45분 출발, 다카사키에서 환승하여 9시 5분에 도착했던 것에 비하면 시간은 세 배로 늘어났지만 요금은 확  줄어든 데다가 열차 안에서 내 또래 일본 아주머니들과 어울리면서 나눠주고 얻어먹는 심심치 않은 시간을 보냈으니 이 또한 즐거운 여행이 되었지요.

 

 

몇 번의 환승 끝의 마지막 이 노선에서는 북 알프스의 산을 조망할 수 있다는 안내가 있어 명산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재미가 괜찮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