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센도(中山道)는
에도 시대(江戶時代)에 중앙의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정비했던 5개 도로 중의 하나로 지금의 도쿄와 교토를 연결하는 중부산악지대의 행정도로였습니다.
전체 거리 약 532km, 최소 15일의 장정으로 오가는 귀족과 관리, 마부들이 쉴 수 있도록 중간중간에 숙소와 주막 역할을 하는 69개의 역참(슈쿠바)을 만들었지요.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면서 1882년 기소강을 따라 국도를 개설하고 1912년에 주오선(중앙선) 철도를 개통하면서 역참의 역할은 끝나고 산속 마을들은 잊혔으나 근래에 옛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나카센도와 역참 마을은 재건축과 복원 사업을 거쳐 다시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일본 중부 산악 지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이 길에서 마고메(馬籠)와 쓰마고(妻籠), 기소후쿠시마(木曹福島), 야부하라(籔原)를 거쳐 나라이(奈良井)로 이어지는 5시간 거리의 기소계곡은 높고 낮은 고개, 시골길과 숲길, 폭포 등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걷기 좋은 길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마고메에서 쓰마고까지, 야부하라에서 나라이까지 두 구간을 걸었습니다.
알펜 루트 여행을 마치고 시나노 오마치(信濃大町)에서 마쓰모토(松本)를 거쳐 나가쓰가와(中津川)까지 열차로 이동, 그 옆 버스터미널에서 마고메 행 버스를 탔지요.
마을 중심가의 나가센도 마고메 주쿠(中山道 馬籠宿) 이정표에는 강호( 江戶, 도쿄)까지 80리 반, 교토(京都)까지 52리 반이라 쓴 글자가 보입니다.
오늘의 숙소는 이정표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 Magome Furusato Gakkou.
숙소를 찾던 시점에서 마고메의 일반 숙소는 모두 매진, 여기서 겨우 몇 개의 침대를 찾아 냈지요.
폐교를 이용한 시설로 남녀구분 없이 교실 한 개당 2층의 캡슐형 침실이 22개 정도 놓여 있는데 하얀 시트의 내부는 의외로 넓었고 다수의 샤워실과 화장실, 부엌과 식당은 청결하여 불편한 점을 없었습니다.
탁 트인 운동장에 나무 우거진 뜰, 넓직한 동간 거리며 친절한 스탭 등 생각보다 가성비는 좋았네요.
마침 핼러윈 데이라서 숙소 측에서 500엔에 카레 저녁과 다과를 준비, 식당과 로비를 개방하면서 투숙객들이 모여들었고 다수의 서양인들이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마고메에서 쓰마고로 가는 길.
마고메 주쿠의 옛 가옥들을 보면서
구름 속의 에나 산 옆,
삼나무 숲으로 들어갑니다.
걷기 적당한 날씨에
이 길을 걷는 동행자도 많았습니다.
길가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중간중간, 마을을 구경하면서
마고메 고개(마롱토게, 馬籠峠, 마롱상)까지 왔지요.
이제부터는 쓰마고로 가는 내리막길.
그 아래에는 기부금을 내며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이 있습니다.
불 위 주전자에서는 찻물이 바글바글 끓었고 그 옆에는 짚으로 만든 방석과 그들의 전통 모자가 보입니다.
그러나 중간을 좀 넘긴 지점에서 걷기를 끝내고
코신주카(庚申塚) 마을로 내려와 쓰마고를 지나서 나기소(南木曹)까지 버스를 타야 했네요.
언니네가 오늘 나고야(名古屋)에서 저녁 비행기로 귀국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맞춰야 했거든요.
작년 봄, 도쿄 IN, 나고야 OUT의 여행에서 시라카와고의 합장촌과 오치아이 주쿠(落合川宿)에서 쓰마고까지 나가센도의 2코스를 걸었던 그 추억이 좋았기에 언니에게 그 길을 권하면서 알펜 루트를 추가, 3박 4일의 짧은 일정을 같이 한 끝에 언니 부부가 먼저 돌아갑니다.
나기소(南木曹)에서 점심을 먹고 나카쓰가와(中津川)까지 열차로 같이 이동, 두 사람이 나고야 행 환승열차에 오르는 것을 본 후 우리는 다시 마고메로 돌아왔지요.
바쁘게 일정을 진행했던 며칠, 임박한 열차 탑승 시간을 앞두고 긴 매표줄에서 발 동동거리던 우리를 불러 승차 후 차 안에서 차장에게 운임을 지불할 수 있게 '승차역 증명서'를 내주었던 역무원,
산속 마을에서 나기소에 가기 위하여 급하게 '코신주카 정거장'을 묻던 나에게 자가용을 끌고 나왔던 아저씨.
나기소에서 점심을 먹었던 식당, 열차 시간 때문에 서두르다가 상 밑에 떨어졌던 돈지갑을 몇 시간 후에야 기억하고 찾아갔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고스란히 돌려주었던 선한 얼굴의 여주인 들로 일본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습니다.
언니네 귀국 다음날에는 남편과 둘이 야부하라(籔原, 수원) 역에서 나라이(奈良井) 역까지 걸었습니다.
이른 아침의 역 광장에는 이 길을 걷기 전 준비 운동을 하는 한 무리의 일본인이 보입니다.
길을 잃었다 싶을 무렵에는 철로 아래의 지하도 위치를 알려주는 사람도 만났지요.
야부하라(籔原)는 작은 마을,
나가센도의 고찰장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우편함이 놓여 있습니다.
이 동네에서 나무 빗 만드는 젊은이를 보았지요.
이 마을의 전통 공예품, 오롯쿠 빗을 만드는 가게의 견습생이라니 그 사람이 새롭게 보였네요.
여기저기 빗 가게가 많은 이 동네에는
요런 장인 그림도 보이고
에도 시대의 여행자가 나오는 술집 입간판도 있어 저절로 웃음이 나오게 합니다.
거기에 내 유년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장면도 있었지요.
아주 어릴 때의 기억, 내 어머니는 당시 왜무라 부르던, 저렇게 기다란 무를 다발 채 담 위에 얹어 놓았다가 무가 꼬들꼬들 마르면 치자로 물을 들이고 쌀겨에 묻어 지금의 단무지라 부르는 노란 '다꾸앙'을 만들어주셨거든요.
이 길은 히다가도(飛驒街道)로 가는 분기점이랍니다.
토리 고개로 올라가는 긴 지그재그 길.
온통 단풍으로 화사한 이 길의
모퉁이마다 우리가 지나온 야부하라 마을이 내려다 보입니다.
숨이 차서 헉헉거리며 올라온 도리이 고개의 그림,
옛 풍속화에서는 그때 사람들도 이 고개를 힘겹게 넘었음을 알려 주었네요.
앉아서 쉬고 있는 두 사람의 지친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이 고개는 해발 1197m,
여기가 수원지인 나라이 강은 시나노 강에 합류되어 일본해(우리의 동해)로,
기소 강은 태평양으로 흘려간답니다.
잡목이 많고 해가 잘 드는 곳이라서인지 이 코스의 단풍은 그 어디보다도 예뻤습니다.
그 아래, 작은 공원 앞에는
도리이가 하나 서 있습니다
일본의 센고쿠 시대(전국 시대)에 한 장수가 여기서 벌어진 전투에 승리, 그 기념으로 이 도리이를 세우면서 '도리이 고개'라 불렀답니다.
곰 퇴치용 종이 매달린 찻집도 비어 있었으니
오가는 이 거의 없는 이 아름다운 숲길은 그야말로 최고의 힐링 장소였지요.
나라이에 가까워지면서 이 지역의 당시 모습을 담은 풍속화도 보입니다.
가게 앞에서 길 떠나는 사람들이 짊어지고 갈 물건을 확인하는 듯한 내용입니다.
숲이 끝나면서 시내에 들어서자 전통가옥의 가게가 시작되면서
여행자도 많아졌습니다.
아주머니의 손으로 만든 예쁜 수예품과
미용실, 칠기점에 그 옆의 송옥다방,
예사롭지 않은 분장의 남자가 지키고 있는 민박집과
방금 결혼식을 마친 이 싱그러운 신혼부부까지.
오밀조밀 이런 옛 거리를 기웃거리는 즐거움이 쏠쏠했네요.
점심은 역 근처의 동네 사람들이 드나드는, 오래된 노포에서 소바 정식으로 먹었지요.
중앙의 코타즈와 그 위의 불에 그을린 물고기며 대나무 환기통, 낡은 벽을 장식한 오래된 부채, 메뉴판의 웃는 듯한 글씨체, 반질거리는 마루 등 집 내부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시골의 작은 역, 나라이 역에서 마쓰모토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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