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달밤의 창덕궁에서 청사초롱을 들고 걸어 다니며
궁궐과 왕실에 관련된 이야기를 전문가의 안내해설로 듣는 '달빛 기행'은
전통차를 곁들인 전통예술공연으로 이어지면서 눈과 귀, 입이 즐거운 시간이었지요.
돈화문 기와지붕 위로 보름을 갓 지난 둥근달이 떠 있던 날,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예약했던 '달빛 기행'에 참가하려고
정문인 돈화문에 왔습니다.
이 문은 왕이 행차를 하거나 국가 행사를 치를 때 드나들던 2층의 목조 건물.
창덕궁은 남쪽의 종묘를 의식, 궁궐의 남서쪽 끝에 이 정문을 세우면서
인정전을 비롯한 중심부로 가려면 동쪽의 금천교를 건너야 했지만
조선 시대의 5대 궁궐인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 중에서
제일 넓고 후원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대 왕들이 가장 좋아했던 곳이랍니다.
북한산 자락의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과 연못, 정자가 많았거든요.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된 이후 복원될 때까지 일시 정궁으로 사용하였고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궐이라고도 불렀지요.
중앙의 인정전과 선정전 등은 통치 영역, 그 뒤편의 희정당과 대조전 일원은 침전,
동쪽의 낙선재와 북쪽 후원은 왕실의 생활공간으로 나뉩니다.
오늘 일정은 돈화문 앞에 집결,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초롱을 들고
금천교 → 인정전 → 희정당 → 낙선재 → 상량정 → 주합루와 부용지 일원 → 불로문과 애련지, 애련정 → 연경당 다과와 공연 관람 → 후원 숲길 → 돈화문으로 회귀하는 1시간 40분의 산책입니다.
먼저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의 금천에 놓인, 궁궐의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금천교를 지나
인정문을 거쳐
'어진 정치를 베푼다'는 의미의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 앞에 섰습니다.
여기는 왕의 즉위식, 조회, 외국 사신 접견 등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공식 의례 공간으로
왕좌 뒤의 일월오봉도가 화려합니다.
그 옆, 왕의 비공식적인 집무실로 원래 숭문당이라 불렀던 건물은
1496년(10대 연산군 2년), '정치를 빛낸다'는 의미의 희정당으로 바뀝니다.
임진왜란 때 파괴된 이후 여러 번의 복원과 소실을 거치면서 1920년 재건할 때는
내부를 카펫, 유리 창문, 샹들리에 등의 서양식으로 꾸미고
현관 앞까지 왕의 전용차가 들어갈 수 있게 구조를 변경, 원래의 모습을 잃었습니다.
1847년(24대 헌종 13년)에 지은 곳으로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던 생활공간, 낙선재는
통치영역의 건물과 달리 단청을 하지 않은 평범한 모습으로 왕가의 검소함을 엿볼 수 있는 건물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왕조가 무너지는 와중에 궁에서 쫓겨나
가난하고 외롭게 살면서도 당당한 기품을 잃지 않았던 27대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 윤비의 마지막 거처였지요.
이승만 정부 시절, 오랜 투쟁 끝에 낙선재를 되찾아
정략결혼으로 일본에 머물던 조선의 황태자, 순종의 동생이었던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
26대 고종의 외동딸인 왕녀, 피폐한 삶의 덕혜옹주를 불러들이면서 왕족을 지키려 했던 윤비는
1966년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잠깐 들여다본 방 안은 정갈하였고
창호지를 바른 문틀의 모습은 다양하였지요.
특히 오복을 상징하는 박쥐 조각이 눈을 끌었네요.
낙선재의 후원, 언덕에는 육각형의 누각인 상량정이 있습니다.
'시원한 곳에 오르다'의 뜻으로
여기에서는 대금 독주, ' 청성곡' 공연이 있어
대금 고유의 맑고 깊은 음색이 초가을의 달빛 아래 도심 한복판, 고궁의 야경과 잘 어울리면서 아주 감동적이었지요.
둥근 문과 꽃담 장식도 멋집니다.
부용지 주변에는 주합루를 비롯하여 부용정과 영화당, 서향각과 희우정, 천석정, 사정기 비각 들이 모여 있습니다.
주합루는 22대 정조 원년(1776)에 창건된 2층의 누각으로
아래층에는 왕실 직속 기관인 규장각을, 위층에는 누마루를 조성하였지요.
규장각은 정조의 개혁정치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또 이를 위한 도서를 수집하며 연구하는 기관이었습니다.
그 앞뜰을 거니는 조선의 왕과 왕비를 알현한 후
영화당의 아쟁 산조 공연에서는 그 현의 느린 저음에 내 마음도 잠시 애절해졌네요.
긴 여운을 남기며 이제 애련정을 지나 연경당으로 갑니다.
연경당은 병약했던 아버지인 23대 순조를 위로하는, 효명세자의 효심 담긴 연회 공간이었지요.
거기에서 달빛 기행의 마지막 순서, 따뜻한 대추차와 작은 약과가 곁들인 전통예술공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세자가 창작했다는, 호랑나비가 날아드는 봄날의 정경을 표현한 박접무와
보상무를 보면서 그 시대로 돌아간 듯 잠시 착각에 빠졌네요.
보상무는 중앙의 보상반에 연꽃 그림의 항아리를 놓고 그 안에 공을 던져 넣는 놀이 형식의 춤으로
공을 넣은 무희는 꽃을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얼굴에 먹점이 찍히는 벌칙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이어진 여창가곡, '북두칠성'은 곱고 여성스러운 곡조와 내용을 가진 성악곡으로 청아한 그 결이 남달랐지요.
아, 오늘의 달빛 기행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것에 대한 반성의 시간,
그러면서 달밤에는 놓쳤을 이 고궁의 면면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던, 서럽고도 자랑스러운 시간이었네요.
며칠 후, 전날의 감회를 잊지 않으려 창덕궁 홈페이지를 뒤져 후원 관람을 예약, 낮에 다시 왔습니다.
전체 안내도를 보며 다시 후원으로 갑니다.
전에는 창덕궁 전체를 비원이라 불렀던 시절도 있습니다.
후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각관람권까지 구매해야 합니다.
인정문과
숙장문을 지나 후원 입구, 창경궁으로 들어가는 함양문 옆에 집합.
들어갈 때는 정해진 시간에 해설사를 따라가야 하지만
일단 입장 후에는 자유롭게 폐문 시간까지 그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후원은 왕실의 생활공간이었지만 왕이 주관하는 여러 가지 야외 행사가 열리면서
조선 초기에는 왕의 참석하에 군사 훈련이나 활쏘기 대회에
대비를 모시는 잔치나 종친 또는 신하를 위로하는 잔치도 열었답니다.
왕은 친경지를 만들어 곡식을 심고 기르면서 백성들의 삶을 체험하였고
왕비는 누에를 치면서 양잠을 장려하였다네요.
후원은 창덕궁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넓었고 가끔 호랑이가 나타났을 정도로 깊었다지요.
11시, 후원 투어 시작,
주합루와 부용지 일원 → 의두합과 애련지, 애련당 → 연경당 일원 → 존덕정 일원을 돌아보는 일정입니다.
달빛 기행에서 들렀던 낙선재 일원은 서운하게도 포함되지 않았네요.
후원으로 들어가는 언덕,
기와를 얹은 격조 있는 돌담이 아름답습니다.
먼저 정조의 친필인 현판, 주합루가 보입니다.
1층의 규장각과 주합루 서쪽의 서향각에 소장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이며 각종 도서, 자료는
현재 서울대 규장각과 중앙박물관으로 분산 이전, 관리하고 있고
병인양요 때 소실되었던 외규장각은 지금 강화도 고려 궁지에 복원해 놓았습니다.
입구 어수문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통치자들은 항상 백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짐하는 이름,
정조의 민본 정치 철학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문 좌우에는 '취병'이라는 대나무 담장이,
그 앞에는 부용정이 있고
석가산 뒤로는 세조 때 찾은 우물 4개를 숙종 때 복원하면서 그 기록을 남긴 사정기 비각이 있습니다.
학문과 교육을 담당하던 공개된 장소, 영화당에는
영조의 친필 현판이 보입니다.
영화당 앞, 춘당대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과거시험을 치른 일도 있었다네요.
한때 3000여 명의 유생이 응시하면서 창경궁의 친경지인 춘당지에 이르렀던 넓은 과장은
이제 돌담으로 나뉘어 협소해지면서 창경궁과는 별도의 공간이 되었지요.
예전에 두 궁궐을 오갔던 영춘문을 지나서
효명세자가 공부방으로 사용하였던 의두합을 돌았습니다.
단청을 하지 않아 단출하고 소박한, 궁궐 내 유일한 북향 건물입니다.
순조의 맏아들인 효명세자(1809~1830)는 총명하고 인품이 높아
18세부터 병약했던 아버지를 대리하여 정사를 돌봤답니다.
정조 시대의 영광을 꿈꾸며 다양한 방법으로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조정의 치열한 정쟁과 관리들의 탐학, 잦은 자연재해와 사회불안 등 당시 조선의 암울했던 현실 앞에서
그는 뜻을 펼치지 못하고 22세로 요절하였고
순조의 뒤를 이은 헌종은 아버지인 비운의 효명세자를 왕(익종)으로 추존합니다.
순조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세자가 세웠던 불로문을 지나
숙종이 사랑했다는 애련정을 지납니다.
연잎이 가득한 애련지의 작은 정자, 애련정의 물 그림자가 곱습니다.
연경당은 사대부의 집처럼 소박하게 지은, 궁궐의 전각이면서도 여기 역시 단청을 입히지 않은 건물로
수인문으로 들어가는 안채와
장양문으로 들어가는 사랑채가 있습니다.
달빛 기행 때는 이 연경당에서
효명세자가 어머니 순원왕후의 40세 탄신을 축하하기 위하여 1828년(순조 28) 6월,
여기서 진작례를 거행할 때 선보였던 박접무와 보상무의 재현 공연을 보았지요.
후원 투어의 마지막 코스, 작은 홍예교를 건너 존덕정에 왔습니다.
정조의 산책길 쉼터였다는
존덕정의 북쪽 벽에는 그가 집권 말기인 1798년에 직접 썼다는 교시,
'만천명월주인옹자서'라는 제목으로 가득 채운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나이고 시내는
모두 신하인 경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이다'라는 내용이랍니다.
정쟁의 시대, 정조는 휘둘림 없는 통치를 위한 왕권강화 의지를 이 교시와
천장 중앙, 여의주를 탐하는 쌍룡 그림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그 앞에는 관람지가 있고 오른쪽에 승재정, 왼쪽에 관람정이 보입니다.
존덕지 상류의 옥류천 일원은 공사 중이어서 출입금지.
후원에서 나와 함양문을 통하여 그 옛날, 밤벚꽃놀이를 했던 창경궁에 들어갑니다.
창경궁은 경복궁과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은 조선 시대 궁궐로
왕실 가족이 늘어나면서 성종이 왕실의 어른인 세조 비 정희왕후, 예종 비인 안순왕후, 덕종 비 소혜왕후 등
세 분의 대비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창덕궁 옆에 지은 건물이라서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하여 그 규모가 아담하고 전각의 수도 적습니다.
정치 공간인 외전보다는 생활공간인 내전이 더 넓었지요.
별도의 입장권을 사야 합니다.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희빈 장 씨가 건물 주변에 흉물을 묻어 숙종 비 인현왕후를 저주하였다가 사약을 받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양화당은 대비의 침전이었지만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던 인조가 돌아와 지냈던 곳이라지요.
환경전은 왕의 침전,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태어났고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가 승하한 곳이며
함인정은 문무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정자로
현판의 글씨는 '세상이 임금의 어짊과 의로움에 감읍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숭문당은 독서를 하거나 국사를 논하던 곳으로 현판 글씨는 영조의 친필입니다.
숭문당 뒤쪽으로 창덕궁의 낙선재가 보입니다.
명정전의 후문인 빈양문은 궁궐에서 행사가 있을 때 공과 사의 경계가 되던 문으로
명정전에 행차하는 왕의 통로였지요.
명정문을 지나
가운데 왕의 길과 양쪽으로 정일품부터 종구품까지 품계석이 보이는 정전,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치르던 공식 의례 공간인 명정전을 바라보며
옥천교를 지나 정문, 홍화문으로 나왔습니다.
일제강점기, 그들은 이 창경궁 안의 건물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
시민공원으로 만들면서 그 이름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고
종묘와 연결된 땅의 맥을 끊어 그 사이에 도로를 개설, 궁궐의 품격을 훼손하였지요.
1983년에 동물원을 과천대공원으로 이전, 원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는 작업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도화서 화공의 기록인 동궐도에 전하면서 옛 모습 재현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이 땅의 역사, 전통을 알려주는 서울의 궁궐은 한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
그중에서도 창덕궁과 왕실의 사당인 종묘는 당대 최고의 규모와 기술을 인정받으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유산들은 화려하면서도 위엄이 있고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자랑이며 긍지가 되었지요.
창덕궁의 홈페이지 설명은
'궁궐은 우리 역사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이자
왕과 왕실 사람들이 생활하며 희로애락을 담았던 삶의 공간으로
궁궐이 전하는 역사, 인물, 건축, 자연 등 많은 이야기 속에는
우리 선조들이 오랜 역사와 삶 속에서 터득한 지혜와 슬기로움이 담겨 있습니다'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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