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의 '김환기 회고전'에 가려고 나섰다가
이 시기, 연꽃으로 유명한 시흥시 하중동의 '연꽃테마파크'부터 들렀습니다.
오전에 활짝 피었던 연꽃이 오후가 되면 오므라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지요.
조선 전기의 관료였던 강희맹(1424~1483)은 세조 9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전당홍'이라는 새로운 품종의 연꽃을 들여와 여기 사위 가문의 고택 안에 있는
작은 연못, '官谷池'에 심었답니다.
시배지가 된 그 연못부터 먼저 구경하고 싶었지만
고택은 '종중 사정'으로 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개방한다기에
오늘은 그 담 너머로 들여다볼 수 밖에 없었네요.
뜰 가운데, '蓮池史蹟'이라 쓰인 비석이 보입니다.
이 연꽃이 재배되면서 당시 이 일대는 '연꽃의 고을'이라는 뜻의 '蓮城'으로 불렸답니다.
시흥시에서는 이 같은 인연을 되살려
호조벌 농민들에게 일부 기부받은, 간척지('바라지') 20ha의 땅에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연꽃테마파크'를 만들었지요.
초입부터 분홍빛 배롱나무와 어울린 색색의 연꽃을 보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별도의 주차장이 없어서 길 양쪽으로 세워놓은 자동차의 행렬 또한 길었네요.
드넓은 대지에서 이제 시작인, 다양한 연꽃들을 감상해 보세요.
'전당홍'은 흰색인 백련이지만 꽃잎의 끝부분은 연홍색을 띠고 있습니다.
오리 세 마리가 앉아 있는데도 끄떡없는 '큰 가시연꽃' 주변에는 작고 노란 '개 연꽃'도 보입니다.
여기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가 먹이 활동을 하는 곳이랍니다.
넓적한 부리로 물을 휘저으며 먹이를 잡는다 하여 붙은 이름, 저어새를 보호하자는 안내판이 보였지만
사람을 꺼리는 탓인지 그 새는 볼 수 없었네요.
거기에 올해 7월 22일부터 예정되었던 '연꽃축제'는
이번 장마 피해의 아픔을 같이한다는 의미에서 잠정 연기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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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테마파크에서 나와 용인 에버랜드 인근의 '호암미술관'에 왔습니다.
매표소 앞에는 커다란 거미,
'거미가 거미줄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새로운 정보망을 구축한다'는 의미를 가졌다는
일본 도쿄의 롯폰기, 모리 타워 앞에도 서 있던 그 거미와
넓은 저수지인 '삼만 육천지'가 보입니다.
기와담장 위로 능소화가 만발한 전통정원, '희원'으로 들어가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곳곳에 전시된 100여 쌍의 벅수, 남녀 한 쌍으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 성문 앞 등에 경계를 표시하거나
수호신 역할을 하던 돌장승들이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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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연못, '연지'에서는
연꽃 너머 미술관이 보입니다.
정원은 넓었지만 삼성가의 개인 사유지라며 미술관과 그 앞의 정원 일부만 개방하고 있어서 아쉬웠네요.
장식담을 지나면
모조의 '다보탑'과
고려 초 고승인 '지광국사'의 사리탑을 재현한 '현묘탑'이 양쪽에 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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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같은 외관의 호암미술관이 나옵니다.
지금 여기서는 2023년 5월 18일부터 9월 10일까지 수화 김환기의 회고전, '한 점 하늘, 김환기'전이 진행 중입니다.
미술관 홈페이지(호암미술관, www.hoammuseum.org)에서 관람 2주 전에 한 시간 단위로 예약을 해야 합니다.
개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
일반 입장료는 성인 14,000원.
도슨트 해설은 오전 10시와 오후 2시의 두 번에 오디오를 대여할 수도 있습니다.
2층의 '1부 달/항아리'부터 관람을 시작합니다.
김환기(1013~1974)는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며 20세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이번 전시는
'자연과 전통에 천착하며 집요하게 한국적 추상미술을 추구했던 그의 40년 예술 여정을 조망하는 전시'라 했네요.
1960년의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는 평생을 한국적 예술을 추구하여 달과 산, 꽃과 여자며 새와 사슴, 특히 우리의 백자에서 추상의 가능성을 찾았고
말년에는 동양적 사고와 시적 정서로 삶을 관조하는 '전면점화'의 독창적 예술 세계를 만들어나갔습니다.'
이번의 전시회 제목, '한 점 하늘'은
'오랜 예술 활동을 통하여 그의 추상이 작은 점으로 수렴되었음과 동시에
그 작은 점 하나하나에 자연과 인간, 예술과 사유가 담겨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했지요
맨 처음 접한 초기작, 1938년의 작품인 'Rondo'는
'화가의 작업실에 들어온 그의 어린 세 딸이 축음기 옆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론도의 경쾌한 선율에 맞춰
고갯짓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는 그림.
현재 우리나라의 추상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인정받으면서 '문화재'가 되었답니다.
1949년의 '백자와 꽃'
'초가집'과
1951년의 '판잣집'에
서정주의 시, '기도'
'저는 시방 꼭 텡 비인 항아리 같기도 하고
또 텡 비인 들녘 같기도 하옵니다.
주여, 한동안 더 모진 광풍을 제 안에 두시든지
날르는 몇 마리의 나비를 두시든지
반쯤 물이 담긴 도가지와 같이 하시든지
마음대로 하소서. 시방 제 속은 꼭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비어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같은 향토적 서정시를 써넣은 시서화, 1954년의 '항아리와 시',
1957년의 '영원의 노래'와
1961년의 '여름 달밤'하며
1963년의 '달과 새'에서
그는 '자신이 추구했던 한국적인 전통을 표현한 추상의 세계, 그 절제된 아름다움을 담백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나는 동양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는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이요,
철두철미한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 밖에 없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들고나갈 수 밖에 없다.
남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을 들고나갈 수 밖에 없다.
우리 것이 아닌 그림은 모방이나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라 하며
'나 대로의 그림으로 밀고 나가겠다'고 다짐하던 화가였지요.
일본 유학 시절부터 추상화에 관심을 가졌던 수화 김환기는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를 역임하면서
1957년 벨기에 브뤼셀의 '슈발 드 베르 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이후 3년간 파리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고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한 것을 계기로
록펠러 3세가 설립한 단체의 재정적 후원을 받으며 11년간 뉴욕에 살면서
그의 그림은 이전과 다른 '전면점화'로 변모합니다.
그 기간의 활발한 작품 활동 중에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1974년 7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61세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뉴욕의 한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전시장의 '2부, 거대한 점'은 그 시기의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1963년의 'Sunny Day'와
1964년의 'Morning Star',
1965년의 '메아리(3)'와
1968년, '파피에 마쉐'(펄프에 아교를 섞어 만든 종이)로 만든 '무제' 같은 뉴욕 시대의 작품입니다.
1970년,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를 읽다가
'이렇게 정다운 너와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구절을 읽고
한국을 떠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그리워하면서 점 하나하나를 찍어 그렸다는 그림,
대상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보이고
'처절한 고통 끝에 완성하였다'는 1971년의 '23- Ⅻ-71 #218'도 있습니다.
그 시기에 남긴 일기들,
자신의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의 고뇌와
외국에서의 외로움,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기록한 일기 내용도 같이 전시되고 있었지요.
1층의 아카이브 공간 한쪽에는 작업 중인 화가의 모습과
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한 거며
전시회에 찾아왔던 화가와 문인들, 이경성, 박두보, 이헌구와 신범승, 이우환, 전숙희, 최정희, 박화성 등
당시의 문화계 인사들이 남긴 방명록과
1949년 9월의 문예지에 실렸던 간결한 문체인 그의 글과 캐리커쳐,
그가 잠시 운영했다는 '종로화랑' 간판 등의 유품이 보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개인 소장품과 리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등 120여 점의 그림에
수화가 지녔던 다양한 자료까지 등장하면서 푸짐한 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었네요.
김환기는 1913년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안의 팔금도에서 신안제 1교를 넘어가는 안좌면 면사무소 근처, 섬 초입의 오른쪽으로 '김환기로'가 있고
그 큰길에서 200m 안으로 들어가면 그의 생가가 나옵니다.
높직한 솟을대문에
한쪽에 우물이 있는 고가입니다.
이 작은 어촌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그림 공부를 하려고 서울로, 도쿄로 떠났고
파리와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중 별세하였지요.
이상과 김환기, 천재적인 두 예술가의 동반자였던 김향안(변동림)도 2004년에 죽으면서 그와 같이 묻혔답니다
그의 작품 중 '우주', 05-Ⅳ-71 #20'은 홍콩의 경매시장에서 132억에 매매, 한국 미술품 경매의 신기록을 세웠다네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는 그를 기리는 '환기미술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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