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2022년 7월 22일부터 2024년 1월 28일까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공동 기획으로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유산을 전시하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전'을 열고 있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메소포타미아'의 뜻 그대로
지금의 이라크와 투르키예 남부, 시리아와 이란 서부의 비옥한 강변지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BC 3400~3000년 무렵에는
이라크 남부에 신전을 중심으로 우룩을 비롯한 최초의 도시들이 탄생하였고
그중에서도 슈메르인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였으며
그들의 점토를 이용한 예술과 건축은 화려하고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형태로 발전하였지요.
전시 유물 중
인안나 신전에서 발굴된 이 점토판에는
닙푸르를 가로지르는 수로를 보수하고 농사에 잘 사용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5000년 전의 스메르의 쐐기 문자(설형문자)로 적혀있고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황소 그릇(일부)'은
황소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신전에 봉헌하였으며
'신전 밑에 묻은 말뚝'은
위쪽에 무릎 꿇은 한 남성이 한쪽 다리를 가슴 앞에 당겨 세우고 양손을 앞쪽으로 모은 조각 말뚝을 신전 밑이 묻은 것으로
이는 신전 건축 당시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했던 BC 2000년대의 전통이었습니다.
경건한 자세로 서 있는 남성의 모습을 한 '봉헌용 상'은
커다란 눈과 맞잡은 손에 초기 왕조 시대의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착용했던 스커트를 입고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신의 가호를 기대하면서 신전 안에 이 같은 귀중한 물건을 바쳤답니다.
그 옆에 보이는 같은 시기의 '봉헌용 그릇'에는
'인안나께 헤티의 아들이자 수석 상인, 아카-엔릴이 이 그릇을 봉헌한다'고 쓰인 쐐기 문자가 보입니다.
봉헌물에는 '연회 장면을 새긴 판 장식'처럼 연회에서 술을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 걸개 장식도 있었지요.
왕과 왕비, 남자와 여자 사제, 시종들이 술 마시는 장면을 묘사한 칸칸마다
다양한 글이 남으면서 이는 고대인들의 신앙생활과 의례를 재구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네요.
대부분 이런 용도의 부조에는 벽에 걸기 위하여 중간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현악기에 달았던 황소 머리 장식'은 고대 현악기에 부착되었던 청동 주조의 황소 상으로
거친 표정에 곱슬곱슬한 수염까지 정교하고
'사자 모양의 인장 부적'은 사자로 보이는 동물 세 마리를 새긴 것으로
이 같은 인장은 BC 3000년대부터 서아시아 지역에서 사용하던 물건이었지요.
예술과 문화에서도 개인의 정체성 표현은
인장과 장신구, 의복과 인물상 조각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쐐기 문자가 나온 이후 등장한 원통형 인장에는
음각으로 다양한 도안과 글자를 새기면서 문서를 인증하는 용도 외에도
재료의 속성이나 내용에 깃든 보호의 의미를 인식,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이쉬타르 신을 알현하는 장면이 묘사된 원통형 인장'에는
그 주인이 '피티툼 이쉬메신의 아들이며 네르갈 신의 하인'이라고 쓰여 있고
'이쉬타르 신상에 기도하는 장면을 새긴 원통형 인장'에는
이쉬타르 신 앞에 무릎을 꿇은 숭배자와 그들을 지키는 두 정령의 그림이 새겨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전 유적에서는 그 안에 놓였던 신상이 현재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인장의 이런 장면으로 신전의 숭배 의식을 유추할 수 있었답니다.
'결투 장면을 새긴 원통형 인장'에서는 인체의 근육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것이 눈에 띕니다.
메소포타이미아의 결투 장면에는 일반적으로 사자, 황소 인간, 나체 영웅이 등장하는데
아래 인장에서 인더스 계곡의 물소 등장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인 BC 2350년 무렵의 악카드 왕조와 하라파 문명(인더스 문명)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였지요.
원통형 인장을 굴려 점토판에 그림을 찍어내는 모습과
인장의 크기와 연대, 소재 등을 영상으로 설명하는 코너도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큐레이터는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 있었던 악카드 왕조 때의 인장을 예로 들면서
그 크기가 3.5cm 정도로 작기 때문에 구멍을 뚫어 팔찌나 목걸이의 형태로 몸에 지녔다했네요.
'파종 축제 때 바칠 동물의 수를 적은 장부',
''구누라 여신'의 옥좌를 위한 물품 목록''과
'5단 곱셈표',
'판사들의 판결문'과
'승계와 상속에 관한 대화를 기록한 문서' 등 크고 작은 일상의 주제들이 해설과 함께 등장합니다.
그들은 주변 강가의 점토와 갈대를 종이와 펜처럼 사용,
점토판에 한 줄 한 줄 빽빽하게 쐐기 문자를 적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몇몇 점토판의 내용은 키오스크에 담아서
수메르 왕조부터 바빌리제국까지 고대인들의 수호신이었던' 마르둑'에 대한 찬가와
우르크에서 출토된 '맥아와 보릿가루 수령 내역을 적은 장부'처럼 번역과 설명을 직접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3000명이 넘는 다양한 신을 숭배하였습니다.
그중에서 하늘신 아누, 우주를 관장하는 엔릴, 사랑과 전쟁의 여신인 이쉬타르(인안나)는 문헌과 예술에 자주 등장합니다.
'라마의 비'는 라마 여신을 새긴 부조로
BC 1595~1155년, 나지-마룻타쉬 왕이 인안나신에게 바친다는 글이 스커트에 가득 새겨있고
신 앗슈르 시대의 점토로 빚은 남성 사제 상으로 긴 머리와 수염, 돌출된 눈썹과 큰 눈이 특징인 '압칼루 상'은
주술적 성격을 띠면서 신전 건물 밑에 대량으로 묻혔습니다.
'리핏-이쉬타르의 공적을 적은 봉헌용 원뿔' 역시 '에-닉시사('정의의 집')'라는 신전을 지을 때 묻은 것으로
''이신'의 '리핏-이쉬타르'가 '남가름'에 신전을 세우면서 바쳤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바빌리에서 신전 앞의 의례 장면을 새긴 원통형 인장들도 있습니다.
'어머니 여신, 아루루에게 바치는 노래, 발락'은
기원전 고-바빌리 시대에 출산의 여신인 '아루루'의 권능을 찬양하는 수메르의 의례용 노래를 기록한 것으로
연주에 사용한 악기의 이름을 따서 '발락'이라고 불렀다네요.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우르에서 발견된 2000기 넘는 무덤 중에서
부장품이 들어 있는 왕실묘의 장신구는 죽은 자를 보호하는 제의적인 힘을 가진 부적 의미였지요.
그들은 왕의 초상이 통치자의 대리적 성격을 지닌다고 믿었기 때문에
'두상'의 깊은 눈매와 두드러진 눈썹, 풍성한 수염이 앗슈르왕 초상의 표준이 되어
'통치자의 두상'처럼
우아하게 정돈된 턱수염과 잘 다듬은 콧수염, 머리에 터번을 두른 정형적인 모습으로 조각하면서
기원전 2090년 경, 신 수메르 시대의 유물인 라가쉬 왕조의 '구데아 왕의 상'에는
맞잡은 두 손과 커다란 눈으로 사려 깊고 경건한 성정을,
오른팔의 다부진 근육으로 그가 심신이 건강한 통치자라는 점을 드러냈지요.
스커트에는 '구데아는 라가쉬의 신전 재건을 기념하려고 이 조각상의 제작을 지시했다'는 쐐기문자가 보입니다.
'바구니를 인 우르-남마 상'의 사람 모양 말뚝도 신전 건물 밑에 묻었던 의례 물품으로
통치자들은 자신이 신전 건축 행사에 참여하였음을 알렸습니다.
BC 1000년 전후로 한때 우세했던 도시 국가의 왕조들은
신 앗슈르, 신 바빌리의 두 제국에 양분, 흡수되면서
본격적인 국가의 체재를 갖춘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권을 차지한 앗슈르는 기원전 7세기에 최고의 번영기를 맞아
이란 서부의 자그로스에서 지중해, 이집트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통치자들은 신에게 받은 축복과 앗슈르의 영토 확장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대규모 건설 사업을 진행하며
궁전의 내부는 커다란 석판의 스토리가 담긴 부조로 장식하였습니다.
그중 '강을 건너라고 지시하는 앗슈르 군인'의 점토 벽화에서
창을 든 앗슈르 병사는 갈대로 만든 배의 선미에 서서 엘람인 포로에게 손짓을 하고
여성 포로들은 슬픈 듯 두 손을 들고 있으며 물에는 적의 시체가 떠 다닙니다.
고대 서아시아에서는 창세기의 신화, 인간 창조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 점토로 빚은 그림에는 창조적인 힘이 담겨 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서
아군은 늘 승리하는 모습으로, 적군은 항상 패하는 형태로 묘사하였다지요.
고대 도시 궁전의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거대하면서도 섬세했던 석판과 점토벽화는
이제 부서진 작은 조각으로 우리나라까지 왔습니다.
'앗슈르 왕세자'는
'신악하에리바 '왕의 '대적할 자가 없는 궁전'을 꾸몄던 부조의 일부로
잘 다듬은 긴 수염과 장신구를 갖춘 앗슈르의 왕세자 모습을 보여주고
'강가를 따라 말을 끄는 기병', 역시 '대적할 자가 없는 궁전'의 방 전체를 장식한 앗슈르 군대의 부조로
원뿔형 투구, 단검, 금속 미늘을 붙인 갑옷, 창, 활과 화살통 등을 짊어진 전장의 군사를 새겼습니다.
사르곤 2세도 새 궁전 내부를 아름다운 부조로 장식했답니다.
'조공 행렬에 선 외국인 마부'가 말 두 마리를 끄는 이 장면에서는
마구의 정교함, 돋보이는 장미 장식과 이마의 장식용 술이며 머리 위 문장이 아주 섬세합니다.
앗슈르가 귀하게 여기는 말을 조공하러 온 외국 사절단의 모습을 담은 부조의 일부분으로
그 시대의 거대한 부조들은 검은 벽에 영상으로도 나타났네요.
아다드-니라리 1세(BC 1307~1275)의 이 의례용 '낫칼'에는
칼등에 '앗슈르의 왕 엔릴-니라리의 아들인 앗슈르의 왕, 아릭덴일리의 아들, 우주의 왕 아다드-니라리의 궁전'이라는
내용을 문자로 새겼고
'앗슈르나찌르아플리 2세의 명문을 새긴 쐐기문자 석판'에서는
왕의 영토 확장의 업적과 님루드에 새로 지은 '북서 궁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 왕은 승전을 거듭하면서 엄청난 공물과 전리품을 거둬들여 앗슈르 번영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맹견 상'처럼 개는 메소포타미아 예술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개의 근육질 몸통과 얼굴의 주름, 실을 꼰 형태의 목줄에서는
점토를 능숙하게 다루었던 그 당시 장인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습니다.
벽돌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건축에 가장 중요한 재료로
고대인들은 그 창세 신화에 등장한 충적토로 만드는 벽돌 제작에 큰 의미를 부여했답니다.
그중에서도 바빌리인들은 벽돌 표면을 입체적으로 만들고 색색의 유약을 발라 완성도 높은 벽화용 벽돌을 찍어내면서
바빌리는 화려한 벽돌 건축물로 손꼽히는 도시가 되었지요.
'사자 벽돌 패널'에는 유약을 바른 벽돌 패널에 '이쉬타르 여신'을 상징하는 채색 입체의 사자가 등장하는데
이 같은 사자상 120구는 '나부쿠두리우쭈르 2세'가 세운 '이쉬타르 문'에서
'신년 축제의 집'인 '비트 아키투'까지 이어지는 '행렬의 길'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답니다.
'이쉬타르 문'의 정면도 '아다드 신'과 '마르둑 신'을 상징하는 595구의 황소와 용으로 웅장하게 꾸며 놓았다네요.
이집트의 룩소르,
그 룩소르 신전에서 카르낙신전까지 양옆에 스핑크스가 장식된 2km의 '참배로'가 연상되는 장면이었지요.
'아다드-슈마-우쯔르 왕의 명문을 새긴 벽돌'에는
'닙푸르'의 최고신인 '엔릴'을 위해 '에쿠르신전'을 재건하면서 신에게 올리는 왕의 글이 쓰여 있습니다.
전시장 한쪽에 4m 높이의 상자 형태로 세워놓은 '쿠쉬록'에서는
메소토파미아를 상징하는 땅과 강, 쐐기 문자와 점토 벽화, 벽돌 벽화로 이어지는 영상을 보여주었네요.
문명의 도도한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작은 전시실의
66점 소품들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에서 만났던
바빌리 제국의 가장 큰 문화유산, 기원전 1800년경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성문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과
앗슈르 제국 때 왕궁의 수호신, '인두 우상'과 '인두 사자상'에
벽을 뒤덮었던 대 전투 장면의 웅장하면서도 섬세했던 조각들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웠지요.
고대 세계를 평정했던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 제국은 한때의 번영 끝에
1500여 년 후 이 땅에는 제3의 제국인 페르시아가 200여 년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고
이어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어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합니다.
지난날,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의 역사 오랜 도시를 찾았던 여행은
메소포타미아, 그 영광의 흔적을 돌아보는 여정이었지만
고고학자와 탐험가들이 터키의 남부, '하산케이프'에서 땅 속에 묻혀 있던 수메르의 유물과 유적을 발굴하여
그리스와 로마 중심의 신화며 문명과 역사, 히브리 인들의 경전인 창세기는 모두
그 이전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수메르 문명에서 시작하였음을 증명한 후에도
유서 깊은 이 마을은 실크로드의 몰락 이후 트루키예 정부의 대규모 댐 건설 계획에 따라
수몰 위기에 처해 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수많은 혈거의 흔적에
티그리스 강 위에 세워졌던, 그러나 지금은 무너진 교각의 크기만으로도
번성했던 시절의 도시 국가인 수메르 왕조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었지요.
'마르딘'에서 '메소포타미아 오탄틱 카페'라는 간판이 반가워 들어갔던 아랍 풍 찻집에서는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내려다보며
오랜 문명의 땅에 와 있다는 사실에 가슴 뛰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네요.
그러나 수메르인들의 대표적인 도시로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가 다스리던 '샨르 우르파'는
쐐기 문자로 점토판에 담긴, 영웅 길가메시를 노래한 최초의 서사시, '길마메시'와
예언자, 아브라함이 태어난 도시였지만
원추형 가옥으로 특별했던 '하란'의
페허가 된 도시와
터키 동남부 쿠르드인들의 총본산, 디야르바키르의 무너진 성벽처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뒤 이란 여행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모습을 찾았을 때
'페스세폴리스'의 대규모 궁전은 복원 중이었으나
첫 수도였던 파사르가데의 궁전은 2500년의 시간 속에서 주춧돌들만 보였고
멀리 산 위의 성채도 그 터만 남아 있었지요.
그러나
5000년 전의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도시를 만들고 최초의 문자를 만들어 기록을 남겼던
메소포타미아인들의 문화유산이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날 문화의 밑거름으로 되었다는
그 벅찬 감동만은 잊을 수 없었네요.
이 전시에서는
인명, 지명, 국가명, 시대명 등의 외래어 고유명사를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였던 공용어인
악카드어 원어의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시하면서
이제는 바빌로니아, 바빌론을 '바빌리'로, 아시리아는 '앗슈르', 수메르는 '수메르', 아카드는 '악카드',
우르크는 '우룩'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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