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책

이만익 회고전에서 윤동주를 만나다

좋은 아침 2022. 10. 9. 21:53

올림픽공원 안의 소마미술관에서 화가 이만익의 10주기 회고전이 있다기에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면서 찾아왔습니다. 

1988년의 김중업 작품인 화려하고 멋진 남문,  '세계평화의 문'으로 들어가 

 

 

공원 안, 전 세계 조각가들의 다양한 조각 작품을 보면서 

 

 

'이만익 회고전'이 열리는 소마미술관,

 

 

1관으로 들어갑니다. 

화가가 생전에 좋아했다는 시인 윤동주의 '서시' 한 구절,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에서 차용한 전시 제목, '별을 그리는 마음'입니다. 

시인은 별을 노래했지만 화가는 별을 그렸네요.

 

 

4개의 전시실에서

1,2실은 화가의 생애와 성장, 변혁의 과정을 다루었고

3,4에서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특색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작품을 전시했으며

이만익 아카이브실에는 화가의 드로잉과 스케치, 사진과 그가 쓴 에세이집에 다큐영상을,

88 올림픽 아카이브실에서는 작가가 1988년 서울 올림픽 미술감독을 역임하면서 제작한

다양한 시각자료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1974년의 자화상을 시작으로

 

 

화가의 생애를 읽으면서 

 

 

'나그네(귀로)'를 비롯한 초기의 유화 작품을 지나면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이만익의 특징이 뚜렷한 신화, 전설, 민담,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나옵니다. 

젊은 시절, 프랑스에서 짧은 유학 시절을 보냈던 화가는

서양의 예술문화에 접하면서 자신의 그림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던 끝에

그림의 주제와 색, 형태 등 윤곽선이 강조되거나 명암이 생략된 독특한 화풍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갔습니다.

 

 

2005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의 포스터로 등장하면서 유명해진 '유화자매도'는

 

 

1998년의 작품, '유화취적도'가 모티브가 된 작품이었지요. 

화가는 고구려의 주몽을 키워낸 유화부인의 이야기를 자주 다루면서 

세상 모든 어머니의 힘과 자애로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답니다. 

 

 

이렇듯 유화부인이 등장하는 '해후'와 

 

 

'주몽의 하늘'처럼 삼국유사에 나오는 우리의 서사들을 소재로 활용하였지요. 

 

 

춘향전, 심청전 줄거리도 시리즈로 나왔네요.

 

 

흥부가의 '박 타는 장면'도 재미있고

 

 

박목월의 시 '사월의 노래' 한 구절, '이름 없는 항구에서'와

 

 

장미를 안은 반가사유상 모습인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목동과 스테파네트에

 

 

'시인 윤동주 예찬'에서도

'한국적인 것의 상투성을 극복하여 촌스럽지 않게 보편적으로 제시하고 싶다'했던

화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는 '그림이 어렵고 모호해져서 공허한 논리로 옹호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직설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방식으로 자신만의 색채를 구축하면서

한국적 미의식과 감성에 친숙하게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내가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였지요.

 

 

1995년 12월 명성왕후 시해 100주기를 맞아 기획된 뮤지컬,  '명성왕후'의 포스터였던 이 원화는

조선왕조 26대 고종의 왕비로서

격변의 시대에 주변 열강에 맞서 나라를 지키려 했던 그의 고뇌와 비극적 삶, 죽음의 이면을

화려한 색채로 당당하고 기품 있게 담아내어 우리 민족의 기개를 잘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발가벗은 아이들과 소가 나오는 그림, '이중섭의 귀환'도 반가웠네요.

 

 

 

'금강 화사(겸제 예찬)'처럼 겸제의 화풍이 보이는 산수화도

 

 

170330cm의 '새 날'처럼 모두 대작들입니다. 

 

 

'88 올림픽 아카이브'에서는

올림픽의 미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 개폐막식에 사용된 '세계수' 제작이며

 

 

 

공연의상, 무대장치와 행사 연출 등 대형 프로그램의 시각자료가 보입니다. 

 

 

2011년 마지막 전시, '석양의  노래'에서 화가는 

"내 나이 70 중반, 화업에 들어선 지 50여 년.

이제 나는 황혼의 길목에 서서  마지막 '석양의 노래'를 읊는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 했던 윤동주 시인의 시 구절을 되새기고 있다.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은 아름답고 정겹고 감사했다'고 했답니다. 

그는 이듬해인 2012년 8월,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요. 

 

 

                           시인 황금찬은 시, '생명의 새'로 이만익의 그림을 예찬하였습니다.

 

 

'별을 그린 화가'를 만난  다음날에는 '별을 노래한 시인'을 찾았습니다. 

그 시인,  '윤동주 문학관'은 종로구 자하문 고개, 인왕산 자락의 옛 '청운 수도가압장'을 활용한 자리에 있습니다. 

 

 

건물 앞면에는 윤동주(1917~1945)의 얼굴과

 

 

1938년에 지은 그의 자필 시, '새로운 길'이 보이고

 

 

시 창작을 통하여 일제에 저항했던 시인의 문학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나옵니다. 

 

 

문학관 안은 사진 촬영 금지라기에 거기서 받은 팸플릿을 대신 보여 드립니다. 

 

 

                      제1전시실에는 시인의 일생을

 

 

시간 순으로 사진과 함께 배열해 놓았고 

'열린 우물' 이름의 중정을 지나면

 

 

영상실이 있습니다. 

작고 소박한 문학관에서 

 

 

그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별 뜨락(윤동주 문학관 카페)'에

 

 

'시인의 언덕'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학업을 위해 집을 떠나 경성에 왔던 윤동주가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후배, 정병욱과 같이 하숙할 때  아침마다 올랐다는 그 언덕입니다. 

 

 

 

 

 '시인 윤동주의 영혼의 터'라 쓰인 그 옆에는 

 

 

그의 시, '서시'를 새긴 시비가 서 있습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면서 그 기념으로

19편의 시를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윤동주는

1942년 부친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위하여 창씨개명을 하면서

고국에서의 마지막 작품인 '참회록'을 씁니다.  

'죽은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했던 윤동주는 어쩔 수 없이

일본식 이름을 가진 후 온몸으로 거울을 닦으며  치욕스러운 역사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시대 상황은 암울했지요.

나라를 잃고 어두운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젊은이는 '운석'으로 자신의 비극적인 죽음을 예견했을까요?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ㅡ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ㅡ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1942년 도쿄의 릿교 대학을 거쳐 교토의 동지사대학 영문학과에 편입했던 그는

1944년 독립운동 혐의로 징역 2년을 언도받아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었고 

거기에서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성분을 알 수 없는 주사를 강제로 맞은 후 

2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 같은 혐의로 그보다 먼저 수감되었던 사촌동생 송몽규도 옥사를 당했지요.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가 남긴 자필 시고 3부 중에서 

정병욱에게 맡겼던 1부가 유일하게 남아 있어 정병욱과 아우 윤일주에 의해 

그의 3주기인 1948년에 정음사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정음사는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가 강의를 위하여

'우리말본'과 '소리 갈'의 등사본을 찍은 것이 계기가 되어 1928년에 창설한 출판사로

발행인은 외솔의 아들인 최영해였습니다. 

 

                    아래 시집은 1955년의 10주기에 윤동주의 시를 모아 만든 기념 증보판으로

 

 

                     역시 정음사에서 발간한 시집의 필사본입니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구입, 간직하고 있었네요. 

 

 

1부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실었던  '자화상', '별 헤는 밤' 등의 19편,

2부에는 '흰 그림자' 등 도쿄 시절의 작품 5편.

3부에는 참회록 등의 42편,

 

 

4부에는 습작기의 시 22편이 실려 있고 

 

 

 앞부분에 윤동주의 자필인  1941년 11월 20일의 '서시'가 나옵니다. 

 2016년에는 3주기 초판본과 함께 윤동주의 육필원고철, 판결 서류와 사진을 담은 소장본이 발간, 완판 되면서 

우리 국민들의 윤동주 시인에 대한 사랑과 추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시인의 언덕'에는 이제 그 시대의 비극이 모두 사라지고

산수유 붉은 열매가 익어가는 

 

 

평화로운 성벽과  

 

 

고층건물이 즐비한 현대적인 대도시, 서울 시내가 보입니다. 

 

 

그가 유학했던 일본의 교토, 동지사대학 교정에는

대학 동문으로 윤동주의 유고시집 초판본 서문을 썼던 '향수'의 정지용, 그의 시비와 나란히

윤동주의 시비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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