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해남의 '우수영 관광지'에는
12척 남은 병선을 놓고 지도를 손에 든 채 바다를 바라보며 '고뇌하는 이순신 장군'이,
건너편 진도의 '녹진 관광지'에는 왜군에 맞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의 이순신 장군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 있었습니다.
두 지역을 잇는, 아주 좁은 이 수로의 수심은 20m, 유속은 우리나라 수역에서 가장 빠르다는 24km에
굴곡이 심한 암초 사이에서 소용돌이치는 급류의 거친 소리가 마치 '바다 울음'처럼 들린다 하여 붙은 이름,
'울돌목, 명량(鳴梁)'입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명량대첩'은 정유재란이 시작된 1597년,
왜군이 133척의 배를 이끌고 이 해협을 통하여 서해안으로 북상할 때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하던 장군이 수군통제사로 복귀, 이곳의 조류 흐름을 이용, 큰 승리를 거두었던 전투로
이는 조선 해군의 제해권 탈환과 왜군의 북상 저지로
정유재란의 전세를 역전시킨 역사적인 해전이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군 전력은 원균의 '칠천량 해전' 패배로 남은 12척의 병선에 한 척을 더 급조했지만
장군은 13척의 적은 숫자로 울돌목을 뒤에 두고 싸우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
조선 수군을 진도 벽파진에서 해남의 우수영으로 옮기면서 물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必死卽生, 必生卽死)'라 하며
군사들을 격려하였답니다.
10월 25일의 새벽 3~4시, 133척의 왜군이 대열에 맞춰 울돌목을 통과하는 도중,
조류가 바뀌면서 조선 수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시점에 공격을 시작,
당황한 적의 배들이 좌충우돌, 서로 부딪히면서 오후 5~7시 무렵 바람을 이용하여 도망하기까지
왜의 장수인 구루시마를 죽이고 30여 척의 적선을 침몰시키며 90여 척을 부수는 전과를 올립니다.
'해군 충무공리더십센터'에서는 안내판을 이용,
명량해전이 발발한 1597년 9월 16일(음력)의 조류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8시 48분경 최강의 밀물에서 12시 57분, 썰물로 바뀌고 15시 03부터 8.4노트의 최강류가 흘렀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명량해전 당시 치열한 접전 중에 12시 30분경 밀물에서 썰물로 바뀌면서 급작스럽게 밀려오는 바닷물을
이용한 조선 수군의 총공격으로 좁은 해협을 빠려 나가지 못한 왜군이 참패했던 것으로 분석'했지요.
해남의 우수영 관광지,
해안 산책길에서는
장군의 '판옥선' 모형에
울돌목의 소용돌이 해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와
적은 병선에 '고뇌하는 이순신 상', '이색대첩비', '명량대첩탑'들을 만날 수 있고
그 길의 끄트머리에는 진도 진풍경 중의 하나인 '뜰채로 숭어를 잡는 신기한 현장'도 있었네요.
명량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울돌목과
진도대교를 내려다보며
진도타워로 건너 가면
2층에도 '승전관'이 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눈을 끄는 것은 충무공의 전술인 '비연'이었네요.
봉화 외에는 통신수단이 없던 그 옛날에 충무공은 연을 직접 제작하여 섬과 섬 사이, 섬과 육지 사이에
비연을 통하여 작전 지시를 내렸답니다.
연에 그려진 문양과 색에 따라 모두 각기 다른 내용을 담았지요.
그림으로 보는 장군의 일생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의 주요 해전 지도에서는 장군의 마지막 전쟁터였던 '노량해전'에
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와 병신일기, 정유일기 등
전쟁터에서도 늘 하루하루를 기록했던 장군의 '난중일기'가 나옵니다.
7층의 전망대에서는 긴 칼을 들고 전투를 지휘 하는 장군의 동상과
진도 안의 풍경,
염전과 농경지, 마을과
저 아래 115m의 저 나지막한 언덕, '망금산'에는 토성을 쌓고 이 지역의 부녀자들을 동원,
남장을 시킨 후 산봉우리를 돌게 함으로써 왜군에게는 대규모 군사 이동으로 오인하도록 심리전을 벌였다는
'강강술래터'가 보입니다.
'서해랑길 6코스'는
여기 진도 녹진관광단지에서 시작하여 진도타워와 벽파진 전첩비, 연동마을을 거쳐 용장성까지 이어지는 15.5km 거리로
이 길은 진도타워에서 진도와 해남의 해안가를 조망하고 벽파진과 연동마을을 거쳐 용장성에 이르는
'삼별초와 충무공의 호국정신을 새기는 의미 있는 길'이 되면서
매년 9월의 명량대첩축제에서는 '대첩재현행사'도 진행한답니다.
다시 '해남 스테이션'으로 돌아가서 차로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에 들어섰습니다.
거기에서 왼쪽으로 가까운 곳에 '벽파항'이 있습니다.
벽파진항은 1984년 진도대교가 개통되기 전, 뭍으로 오가는 뱃길의 가장 중요 관문으로
울돌해협 건너 해남군의 삼지원 나루와 직선, 2.5km 거리에는 철부선이 다녔답니다.
울돌목이 조류 속도가 빨라 육지와 연결하는 항로로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거기에 고려말의 삼별초군이 들어왔던 유적지이면서
정유재란(1597년) 때는 이순신 장군이 12척 남은 배를 이끌고 16일 동안 바닷목을 수비할 때
장군의 명량대첩 위업을 돕거나 직접 전장으로 나가 싸우다가 순절한 사람들의 마을입니다.
선소, 배를 만들었던 섬인 '감부도'를 바라보면서 시인묵객들의 현판이 걸린 벽파정'을 지나면
명량대첩을 기념하고 진도 출신 참전 순절자들을 기록하기 위하여 1956년 11월에 건립한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가장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바로 여기더니라'로 시작하는
시인 이은상의 비문에 진도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의 독특한 국한문 혼용글씨를 네 면에 새긴
높이 3.8m, 폭 1.2m, 두께 58cm의 거대한 비석이 서 있습니다.
거기에서 조금 내려가면 '고려 삼별초'의 근거지였던 용장성 터에
석축이 웅장한 계단 형상의 행궁 흔적이 보입니다.
'용장성'은 고려의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몽골군에 항전했던 성입니다.
고종 18년(1231년), 고려는 몽골이 침략에 대항하여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로 옮기면서 40여 년 동안 작은 섬에서
버텼지만 결국 원종 11년(1270년), 몽골과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를 하게 됩니다.
배중손을 비롯한 군 주력부대였던 삼별초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로 남하, 총길이 13km의 산 능선을 따라 용장성을 쌓고 몽골 항전을 이어갔습니다만
벽파진에서 용장성으로 넘어오는 려몽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온왕이 죽임을 당하고
남도진성 전투에서 배중손이 죽으면서 김통정 장군의 지휘 아래 제주도로 밀려났던 항전도 결국 참패,
장군의 자결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 옛날의 성 둘레는 이제 탐방로가 조성되어
한 바퀴 돌면서 그 시간의 일들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네요.
입구의 금잔화만 화려했습니다.
이러한 삼별초 군대의 대몽항쟁은 대국의 힘에 의한 지배를 거부하고 자주국방의 기치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그 숭고한 정신을 높이 평가하여야 할 것입니다.
배중손 장군의 사당 앞에는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모습과
그를 기리는 '대몽 순의비'가 서 있습니다.
'왕온의 묘'를
찾아가는 숲길은 가팔랐습니다.
한적한 왕온의 무덤 아래에는
그의 애마 무덤도 있습니다.
몽골군의 화포 공격을 받으며 10일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삼별초군이 패배, 승화후 왕온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삼별초는 제주도에서 최후를 맞이했지만 사실상의 왕조는 진도에서 끝났지요.
고려 조정의 무능과 몽골의 학정에 시달렸던 백성들은 삼별초와 같이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지만
패전 후 남은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몽골로 끌려갔다네요.
진도의 남쪽에 있는 남도진성은 왜적의 방비를 위하여 설치하였던 해안 방어기지로
용장성과 더불어 삼별초군의 대몽항쟁의 근거지였고
남해안과 서해안이 맞닿은 중요한 지리적 특성으로
조선시대에는 전라남도 수군기지인 가리포진관에 딸린 수군의 근거지였습니다.
지금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그 안에 볼거리들은 많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좀 더 내려가면 진도, '팽목항'이 나옵니다.
2014년 수학여행길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한 승객 476명을 태우고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면서 304명이 죽었던 처절한 비극의 현장이지요.
특히 어린 학생들이 대피 안내도 받지 못하고 대기하라는 방송에 따랐다가 그대로 수장되었던 참극으로 마음이 아파
그쪽으로는 아예 가 볼 생각도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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