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을 소장한 해인사의 합천입니다.
후기 가야연맹을 이끌었던 대가야의 땅을 상징하는 듯 시내에는 '대야성' 이름의 성문이 복원되어 있었지요.
황강의 물길을 막아 만든 합천호 둘레길이 좋다기에 찾아왔지만 이 계절에는 황량하여
오도산과 감악산, 정수산으로 둘러싸인 40km의 둘레길, 시골마을 드라이브로 끝냈습니다.
합천을 가로지르는 황강변의
늦가을입니다.
천변에는 대야성 성문의 모형이 있고 강 건너편으로는
비탈에 세운 누각 '함벽루'와 사찰인 '연호사'가 보입니다.
다리를 건너 찾아온 함벽루는 고려 때 세워진 누각으로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
'제일강산'이라는 또 다른 현판을 달고 있었네요.
두 번의 사화에서 훈척 정치의 폐해에 환멸을 느끼고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몰두했던 조선 중기 성리학자, 합천 출신의 남명 조식(1501 ~ 1572)이
여기서 읊었던 5언 절구에는 그의 맑은 영혼이 담겨 있습니다.
상비남곽자(남곽자처럼 무아지경에 이르지는 못해도)
강수묘무지(강물만 멍하니 바라보노라)
욕학부운사(뜬구름의 일을 배우려고 해도)
고풍유파지(오히려 고고한 바람이 흩어버리네)와
송시열이 지은 봄날의 함벽루에 |
누각 뒤에는 그의 글씨도 보입니다.
전장에서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왕생기도도량'이라는 '연호사'에서는
감로당 주련의 한글 풀이 경문이 특이하고 반가웠지요.
공원 입구에는 조식의 함벽루 시가 시비로 서 있습니다.
합천사입니다.
'경로'라며 경내의 선재카페 옆 무료주차를 허용받으면서 기분이 묘했네요.
입구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부처의 탄생게'를 표현한 조형이 보입니다.
이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존귀하다는 말'로
'인간도 오랜 시간 수행을 거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각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이랍니다.
'가야산해인사'라 쓰인
일주문 뒤쪽에는
'해동제일도량'이라는 자부심에
불교에 의지하여 적을 물리치려했던 고려인들의 염원,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는 고려 시대의 '팔만대장경'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음을 알리는 긍지가 보입니다.
한편의 '국사단'이라는 성격 다른 건물이 특별했습니다.
이 국사단은 가야산의 수호신인 정견모주를 모시고 있는 전각으로
여기서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면 소원 하나는 이루어진다네요.
'일주문'에서 '해인총림', '봉황문(사천왕문)', 해동원종대가람', '해탈문(불이문)', '구광루'와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웅보전'이 직선으로 이어집니다.
일주문에서 해탈문까지 33개의 계단은 수미산 정상의 33개 하늘을 표현한 것이라지요.
대웅보전 앞에는 해인사 창건 당시 세웠다는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인 삼층석탑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져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면서 불교 의식 때 불을 밝히는 '팔각석등'이 있습니다.
위 팔각의 4면에는 창이 나 있고
나머지 4면에는 인간의 번뇌를 제어해 준다는 사천왕상을 새겼습니다.
장경판전으로 가는 길,
신라 말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이 만년에 이 산에 은거하며 詩書에 몰입했다는 '학사대'를 지나면
그 옆으로 대장경판 내부를 담은 커다란 휘장과
팔만대장경 안내가 있어 화면으로 대장경을 설명하고 있었지요.
오른쪽의 유리창 안으로 모조의 경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국보 32호 '대장경판'은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된 이후,
고종 때 백성들의 염원을 담아 16년에 걸쳐 다시 만든
'재조대장경판(팔만대장경)'으로 81350판,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법문을 수록한 것.
현존하는 대장경 가운데 가장 완벽한 작품이랍니다.
조선 태조 때 강화도에 있던 것을 해인사로 옮기면서 해인사는 법보종찰이 되었지요.
경판은 자작나무를 벌채, 3년간 바닷물에 담갔다가 조각을 내고 다시 소금물에 삶은 뒤 그늘에 말려 대패질 후
경문을 한 자, 한자 붓으로 쓰고 글자를 판각한 다음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옻칠에
경판의 양쪽 끝에는 두꺼운 각목으로 4면에 동제 장식의 마구리를 붙여
뒤틀림이나 터짐을 방지하며 서로 부딪혀 파손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그 사이로 통풍이 되도록 하였답니다.
세로 30cm 가로 70cm의 경판에는 평균 14자씩 23행의 경문을 앞뒤로 새겨 놓았는데
글자 수는 대략 16만 3천 쪽에 5천3백만 자, 한 사람의 글씨인 듯 똑같은 필체의 붓글씨입니다.
그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기도를 드린 다음 경건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답니다.
이를 두고 추사 김정희는 '사람이 아니라 신선이 내려와 쓴 것 같다'고 감탄했다네요.
대장경판을 전부 쌓으면 높이가 3200m로 백두산보다도 높고
나란히 놓으면 그 길이가 60km나 된다는 엄청난 작업이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수다라장'과 '법보전', 앞뒤 두 채인 국보 52호 '장경판전' 건물은
건물 앞면과 뒷면의
위아래로 각각 크기가 다른 나무 창살을 통하여 들어온 바람이
건물 내부 전체에 골고루 퍼진 후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설계하였으며
판전 내부 바닥은 황토와 강석회, 숯과 소금으로 다지면서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그 안에서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만든 과학적인 건축물로
1955년 대장경판과 더불어 그 우수함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거기에 수다라전 통로에는 매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에 연꽃 모양의 그림자가 피어난다네요.
이는 그림자가 바닥에 예쁘게 비치도록 철저한 계산에 의하여 건물을 설계했기 때문이랍니다.
문틈으로 살짝 들여다본 경판에는 글자들이 가지런하고 일정하게 새겨 있습니다.
'수다라장'의 뒤 건물인
'법보전'에서는 매주 토, 일요일마다 일반인에게 경판을 공개합니다.
사전 예약을 통하여 1회 20명 한정으로 그 안에 들어가 팔만대장경 순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여행 전에 예약하려고 여러 번 매 월요일 12시, 해인사 홈페이지에 들어갔었지만
번번이 일찍 마감되면서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해인사에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라시대 목조불상인 '대비로전의 비로자나불'과 '대웅보전의 비로자나불'의
국보 지정을 축하하는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높이 세운 당간지주에 여기저기 내걸린 깃발과 오색 등으로 절 안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지요.
해인범종각의 스님들 북장단도 예사롭지 않았네요.
화려하면서도 엄숙한 손놀림과 리드미컬한 북소리에 압도되어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그 앞에는 바닥에 설치된 '해인도'를 따라서 합장, 기도하는 신자들이 보입니다.
해인도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팔만대장경인 화엄경의 가르침을 도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 해인도를 합장과 일심으로 한 바퀴 돌게 되면 '팔만대장경의 진리와 함께 부처와 보살의 가호를 받아
지혜와 복덕을 얻으며 마침내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게 된답니다.
강화도의 성공회 교회 건물 뒤편에도 묵상과 기도의 장소인 수도길, '라브린스'가 있었지요.
고대 그리스, 켈틱, 마야 문명 등의 여러 신전과 유럽의 오래된 성당에서도 이어지는 의식이라니
그러한 공통점이 신기합니다.
팔만대장경이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 전쟁의 와중에서 온전히 보호된 이면에는 한 공군 지휘관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가야산 자락의 해인사 인근이 빨치산의 활동무대가 되자 이 일대를 초토화시키라는 정부의 폭격 명령이 있었지만
조종사인 김영환 대령(1921 ~1954)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
명령을 어기고 폭격 대신 기관총을 쏘면서 그들을 쫓아냈다네요.
명령불복종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일도 있었지만 1954년 순직 후 2010년에는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수호한 공로로 정부의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해인사에서는 경내에 그를 기리는 공덕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5월 16일에 호국추모제를 지낸답니다.
부도전의 '성철스님 사리탑'을 끝으로 내려가는 길.
해인사에서 '대장경테마파크'까지 홍류동 계곡을 따라가는 편도 6.2km, 2시간의 '소리길'로 들어섰습니다.
길상암을 지나
홍류천을 따라갑니다.
낙엽 밟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계곡길에서
이런 안내판도 들여다보며
제월담을 지나
해인사 문화재 구역 매표소인 산문, 홍류문까지 걸었지요.
마음이 정갈해지는 느낌이었네요.
늦은 오후에는 '한국의 마지막 표범 서식지'라는 특이한 표지를 보면서
합천의 오도산(1120m)에 올랐습니다.
KT 기지국이 설치된, 정상까지 차로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입니다.
일몰의 시간.
멀리 합천호가 보입니다.
일교차로 인한 안개와 해무리로 시계는 흐렸지만
첩첩산중의 장엄한 일몰이었습니다.
합천에 머무는 동안 두 번의 점심을 먹었던 합천 시내의 음식점 이름은 '행복가든'.
깔끔한 음식에 친절한 안주인이 기억나는 곳이라서 기록해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