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포항에서 동해안의 7번 국도를 따라 여행할 때는 낙석 파손으로 폐쇄되어 걸을 수 없었던
강릉의 '정동심곡 바다 부채 길'에 다시 왔습니다.
230만 년 전의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 단구로
부채바위와 탐방로의 형상이 마치 부채를 펼쳐 놓은 듯하다 하여 붙은 이름,
정동진과 심곡마을 사이의 비경을 간직한 산책길입니다.
정동진의 '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과 심곡항을 오가는 길은 편도 2.86km, 1시간 거리로
운영시간은 하절기(4 ~ 10월)는 09:00 ~ 17:30(매표 시간 09:00 ~ 16:30),
동절기(11 ~ 3월)는 09:00 ~ 16:30(매표 시간 09:00 ~ 15:30)으로 유료.
날씨에 따라 이용을 제한합니다.
편도만 걸을 경우에는 주말과 공휴일에 한하여 순환버스를 타고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개방 여부나 버스 운행 시간 확인은 전화 033 641 9444, 033 644 9445로.
매표소 개방 시간 이전에는 ARS 확인도 가능합니다.
썬크루즈 주차장(주말과 공휴일은 유료)에서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가
'바다부채길'로 들어섰습니다.
몽돌해변을 지나면서
보이는 절벽과 해안의 바위 모습이 독특합니다.
길이 4km, 높이가 75~85m인 정동진의 해안단구는 200~250만 년 전 바다 밑의 지면이
해수면 위로 솟아오르면서 형성된 것으로 적갈색 흙과 모래, 자갈이 해안을 따라 계곡에 층층으로 쌓여 있습니다.
이는 한반도의 지반 융기에 대한 증거로
우리나라의 지질구조 발달과정과 퇴적환경, 지각운동, 해수의 침식작용, 해수면 변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답니다.
맑은 날씨, 하늘도 바다도 청색으로 빛났지만
한겨울의 거친 파도를 맞으며 저 바위에는 고드름이 매달렸네요.
접근하기 험한 이런 바닷가,
해안을 따라 조성된 길은 낙석 파손 이후 종전의 목조 데크에서 더 튼튼한 금속으로 보강되었습니다.
투구를 쓴 병사의 모습, '투구바위'와
전설 깃든
펼쳐진 부채 모양의 '부채바위'를 지나면
심곡항의 빨간 등대가 나옵니다.
왕복으로 걸을 예정이었지만 한겨울의 거친 바닷바람과 파도에 놀라 편도로 끝내고
심곡항의 전망대를 지나
항구로 나와서 택시를 타고
오늘의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거대한 유람선 형태의 건물,
'썬크루즈'입니다.
城의 해자처럼 둘레에 얕은 수면을 만들어놓아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지요.
입구에 도열한 조각을 보면서
들어온 우리 방에서는 썬크루즈 옆에 신축한 '비치크루즈'와 뒤쪽의 '정동진 마을'에
동해가 펼쳐졌습니다.
저녁에는 뜰을 산책하다가
'크루즈 안의 船首'까지 올라갔네요.
다음날 아침에는 9층의 전망대에서 일출 맞이하기!
뜰에는 여러 가지 조형물과 놀이 공간,
비치크루즈 쪽으로도
조각공원도 있어 기분 좋은 산책 시간을 보냈습니다.
동쪽 해안을 따라 조성되는 새로운 산책길,
수면 가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저 길이 완공되면 얼마나 멋진 길이 될까 기대가 됩니다.
경포호 인근의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에' 왔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중국과 일본까지 그 이름이 알려졌던 시인, '허난설헌'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공원입니다.
기념관 안에는
강릉의 명문가, 양천 허 씨의 초당 허엽과 그의 세 자녀인 허봉, 허초희(난설헌, 1563~1589), 허균(1569~1618)을 두고
'허 씨 5 문장'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며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던 아버지 허엽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학문을 익혔던 남매가
둘째 형 허봉에게 古文을, 영남학파의 거두인 유성룡에게는 문장을 배우고
서얼 출신이었던 당대 최고의 시인, 이달에게는 시를 배우면서 조선의 신분제도의 모순과 행동규범을 비판했던
스승의 사상을 체득, 현실의 부조리한 이면을 알게 되는 과정도 보여줍니다.
특히 성리학을 비롯하여 유불선과 서양의 학문을 섭렵하며 개방적인 사상에 가졌던 허균은
조선의 사회 개혁의지를 담은 글, '관론'과
'유재론', '호민론'과 같은 글을 통하여 평소의 소신대로 '역사 속에서 민중의 힘을 발견하고
능력 있는 인재의 적극적인 등용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정치를 주장했던 개혁적인 지식인'이었습니다.
'홍길동전'은 이러한 그의 사상을 담은 소설이었지요.
그러나 세상을 바꿔보려던 그의 의지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역적의 누명을 쓰고 50세에 능지처참의 형벌로 죽습니다.
이렇듯 '시대를 앞서가면서 기득권 세력과 대립, 충돌했던 두 예술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지요.
유명 문장가와 학자를 배출했던 명문가에서 어릴 때부터 詩作의 '천부적인 자질'을 보였던
난설헌, 허초희는
초당동 고택에서 태어났지만
그 역시 여자를 옥죄는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순탄치 않았던 결혼생활과
두 자녀를 잇달아 여읜 데다가 뱃속의 아이까지 유산되고 친정의 연이은 獄事와 몰락의 비극이 겹치면서
그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26세에 병으로 요절하였습니다.
그의 詩畵는 유언대로 모두 불살랐다네요.
정원의 '허씨 5 문장' 시비에는
허균의 '호정'과 난설헌의 '죽지사'가 보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대산 월정사에 들러
전나무 숲길을 걸었습니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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