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의 기분 좋은 숙소를 떠나
눈 쌓인 하이 아틀라스 산맥을 옆에 두고
해발 2000m가 넘는 타진티쉬카를 넘어갑니다.
그 옛날 대상들이 다녔던 높은 고개의 저 계곡 아래쪽에는
몇 채의 집이 보이고 그 주변에서 사람들이 밭을 일구고 있었지요.
프랑스 식민시대에 잘 닦아놓은 설산 길의 환상적인 드라이브였습니다.
이민족의 오랜 지배가 이들에게는 체념과 동화의 시간이었는지 이브라힘에게는
지배자였던 프랑스에 대한 미움이 없어 보입니다.
그는 나라 이름도 영어식의 모로코가 아닌 불어식의 마로크라 불렀네요.
착취와 탄압, 저항으로 점철된 스페인의 중남미 지배나 일제의 우리나라 통치와는 격이 달랐던 것일까요?
4시간 정도 걸려 오늘의 목적지, Ait Ben Haddou의 카사바(성채) 마을에 왔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오아시스에 터를 잡고 살던 하두 가의 사람들은 이곳이 교통의 요지임을 이용,
지나가는 대상들에게 통행세를 받으면서 번영을 누렸답니다.
그러나 실크로드의 몰락과 함께 대상도 사라지고.
어느 해인가 이 땅에 뜻밖의 폭우가 내리면서 마을의 흙벽돌(피제이) 집이 무너지자
많은 주민이 들판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성채 옆을 흐르던 루에드 강도 이제는 작은 개천으로 줄어들었지요.
좁은 골목길을 지나 제일 높은 감시탑, 아가디르(다락방)]까지 올랐습니다.
황토에 자갈과 마른 풀을 섞어 만든 이 흙벽돌 건물은 비바람에 많이 허물어졌지만
베르베르 스타일의 용맹을 상징하는 탑 장식은 사막의 전사처럼 당당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골목마다 빈 집이 많습니다.
현재 일곱 가구 정도가 남아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며 살아가는 이 유적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었답니다.
복원된 크수르(공동체를 방어하는 성채)는
영화, '스타워즈'를 촬영하면서 복원되었습니다.
이 주변의 지형을 배경으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며 스타 워즈, 글래디에이터, 나사렛 예수, 쿤둔, 모세 등
50여 편의 영화를 찍었다네요.
온통 적갈색의 황야, 낮고 푸른 하늘, 먼 설산, 이국적이며 아름다운 카스바, 이런 것들이
영화를 찍는데 천연의 세트가 된 듯합니다.
지금은 미국영화, 'Alan'을 촬영 중이라지요.
한 옆으로 입장료를 받는 세트장, 입구에 모조의 아부심벨을 세워둔 '아틀라스 스튜디오'도 있습니다.
호기심에 1인 50디르함을 내고 들어가 여기저기 유명한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가건물을 돌아보았지만
허술하고 관리가 안 되어 있어 실망만 하고 나왔네요.
에잇 벤 하두에서 30분 거리인 오아시스 마을, 와자잣의 우리 호텔, 'La Vallee' 앞에서
이브라힘과 기념사진 한 장 남깁니다.
29세 미혼의 조용하고 과묵한 베르베르인, 이브라힘은
어제와 달리 그들의 전통색인 인디고 블루 터번 '쉐시'에 바지인 '칸드리시, 겉옷 '칸도라'를 입고 나와
우리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양복보다 훨씬 잘 어울립니다.
고향인 하이 아틀라스 산 속 마을에 부모님이 살고 계시다 했지요.
대학을 중퇴하고 가이드스쿨에 다닌 지 6개월 만에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여행사에 취직했답니다.
영어와 불어, 아랍어와 베르베르어를 하는 그의 분야는 아틀라스 트레킹.
이 모로코에 다시 와 그와 함께 아틀라스에 오를 꿈을 꾸게 했습니다.
늘 끝이 뾰족한 후드 달린 전통복, 젤레바를 입었던 운전기사 리샴도 성실했지요.
그들은 철저한 무슬림이 아닌 듯 하루 다섯 번의 예배 시간을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돈을 벌어 결혼하고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이 이 두 젊은 베르베르인의 꿈이라했네요.
한적한 시골 동네, 에잇 벤 하두 카사바의 위용을 살려 지은 이 호텔에서는 아틀라스 설산이 가까이 보입니다.
호텔 수영장 의자에서 잠시 쉬었다가
동네 구경에 나섰습니다.
흙벽돌 사각형 집들이 모여있는 동네에서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사이에
이 황야에도 밤이 왔습니다.
야자수 배경의 이국적인 석양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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