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스페인, 남프랑스, 이탈리아 북부

스페인 바로셀로나 → 남 프랑스 아비뇽. 아비농에서 생 레미 다녀오기

좋은 아침 2017. 3. 14. 13:39

밤늦은 시간에 낯선 도시로 들어가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출발, 아비뇽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밤이었거든요.

늘 시행착오입니다. 

대중교통이 끊긴 열차역에서 할증료를 내가며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기사의 택시를 타고 

어두운 거리에서 숙소를 찾아 헤매다가 현지인의 수소문으로 간신히 이비스 호텔을 잡았습니다.

그분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해 아비뇽에 머물렀던 4박 5일 동안 혹시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결국 못 만났네요.

 

 

다음 날 아침, 후론트에 부탁하여 2인실 두 개(각 57유로/1일)를 패밀리 룸(68유로/1일)으로 교체, 

추가로 3박을 결제하고 

다음 행선지인 마르세이유의 이비스 호텔 2박 예약을 부탁한 다음,

센트럴, 열차역 근처에 있는 터미널에서  57번 버스를 타고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러 생 레미로 갔습니다. 

아비뇽에서 20분. 

이 거리에서 회차하는 왕복 버스는 하루 7편. 왕복 1인 6유로입니다.

 

 

구시가의 남쪽, 인도에 있는 빈센트 표지를 따라 그의 미술관으로 갑니다. 

 

                       

길가 벽을 따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전시해 놓은 길입니다. 

 

 

 

 

   그가 입원해 있던 정신과 병원은 이제 그의 미술관으로 바뀌었지요.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그의 그림이 그 배경 앞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고흐의 자화상과

 

 

해바라기를 손에 든 고흐의 동상이 보입니다. 

 

 

이 병원을 그린 그의 작품.

 

 

뜰에 걸려 있는 그의 그림을 보며

 

 

 

잘 가꾸어놓은 정원을 지나 

 

 

 

그의 흉상을 보면서

 

 

그가 입원해 있던 병실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철제 침대 하나, 그의 자화상 하나인 작은 방입니다.

뜻이 맞는 화가들과 공동 작업을 시도했던 고흐는 아를로 찾아온 고갱과 '노란 방'에 머물며 

함께 그림을 그리지만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지면서 고갱은 떠났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고흐는 결국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는 자해 사건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이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지요. 

 

                     

화면의 절반 아래, 절망적이고 우울한 표정의 고흐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마음을 추스른 그는 심기일전, 많은 그림을 그리지만

그를 경계하는 이 마을에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지면서 생 레미의 2년을 청산한 후,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파리 북쪽, '오베르 쉬즈 와르'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1년 후 1889년, 그는 38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요. 

고흐의 후견인으로 그를 돌봐주던 동생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으면서

둘은 나란히 오베르 쉬즈 와르의 동네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그의 방에서 보이는 병원의 뜰.  

 

 

계절에 따라 붉은 양귀비와 

 

 

보랏빛 라벤더, 파란 아이리스로 가득했던 그 뜰은 고흐 그림의 소재였습니다. 

 

 

그러나 생전에 팔린 그림은 겨우 한 점.

병에 시달리며 가난하게 살았던, 한 젊은 화가의 짧은 인생이 가여워서

그의 시선이 머물렀을 뜰에서 한동안 서성이었네요. 

 

 

 

그가 스케치를 하며 돌아 다녔다는 들판에는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싸이프러스 나무가 많습니다.

 

 

고흐를 생각하며 우리도 그 들판을 걸었네요.

 

 

다시 시내로 나와 늦은 점심에 아이스크림 사들고 셍 레미의 골목길을 돌아다닙니다.

 

 

쇠구슬을 던지며 노는 노인네들에

 

                         

골목골목에 이런 깜찍한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조용한 도시,

 

 

                 

이곳은 16세기의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가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합니다.

 

 

시내로 들어와 골목 안쪽에 있는 이 석판을 확인하고 

 

 

그의 생가 앞에서 그의 흉상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앉아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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