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책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회

좋은 아침 2024. 10. 16. 12:42

 

 

'미타쿠예 오야신(Mitakuye Oyasin)'

이 말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가 담긴  북미 원주민들의  인사말입니다.

'모든 생명은 땅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형제이고

자연은 다음 세대와 나눠야 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인식이 담겨 있었지요. 

 

대지를 잘 보살펴라

그것은 네 선조가 준 것이 아니라

네 후손이 빌려준 것이니

우리는 선조로부터 대지를 물려받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후손에게서 빌려올 뿐이다. 

(원주민 잠언)

 

대지가 네 말을 듣고 있고

하늘과 숲과 우거진 산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너는 온전한 어른이 될 것이다.

(루이세뇨 족이 아이들에게)

 

원주민들에게 자연은 이렇듯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아이의 요람에도 담겨 있었지요. 

갓난아기 때부터 자연을 체감할 수 있도록 요람을 말에 매달아 어디든 데리고 다녔기에 아이들은 그 속에서 일상적인 일과 의식에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답니다. 

 

 

들소도 대자연의 주인이었지요.

샤이엔 족의 화이트 버드가 남긴 이 그림은 들소 사냥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그들은 각 부족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활집과 화살통을 이용하여 필요한 만큼의 들소를 사냥하였다네요. 

 


 

 

무릎을 꿇고 들소의 뼈를 매개로 전통적 치료 의식을 진행 중인 키오이 족의 이 남자처럼  들소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는 고마운 존재이고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말 역시 오랜 시간을 그들과 함께한 동반자였지요.

 

 

들소 사냥이나 적과의 전투 등, 일상의 생활에서 소중했던 말에게 그들은 화려한 장식으로 보답해 주었습니다.

안장과 도끼 같은 도구에 그려진 다양한 무늬와 색깔로 각 부족의 문화를 유추할 수 있답니다. 

 

 

 

'인디언'은 1492년 콜럼버스가 북미 땅에서 처음 만난 원주민을 인도 사람이라 생각해서 붙인 명칭으로 오랫동안 여러 원주민 부족을 한꺼번에 부르는 말로 사용되었지요.

지금도 미국 땅에만 570개가 넘는 다양한 원주민 부족들이 남아 있답니다.

이 많은 부족들의 삶과 문화를 '인디언'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들 북미 원주민들은 거칠고 낯선 이주민들을 맞아 갈등과 위기를 겪으면서 사라진 과거의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그들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면서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회는 지난 6월 18일부터 10월 9일까지로 끝났습니다만 여기서 받은 감동이 커서 그 내용을 정리해 놓고 싶었지요. 

원주민의 과거와 현재를 찾아볼 수 있는 공예, 회화, 사진 등 151점을 통하여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을 새롭게 인식, 나와 다른 문화를 편견 없이 바라보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전시였네요. 

 

북미 원주민들은 거주 지역이 넓은 만큼 사는 자연환경도 다양합니다. 

북부는 춥고 남부는 건조했으며 바다와 맞닿아 있거나 초원이 펼쳐지고 산림이 울창한 지리적 특성은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원주민들의 언어나 습관은  각각 차이가 있었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세상'이라는 관점은 같았지요.

사람과 동물, 식물과 무생물까지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그들은 자연에서 무언가를 얻었을 때는 늘 하늘과 땅에 감사했고 다음 세대와 주변 사람들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취하지 않는 조화와 균형의 가치관은 그들이 만든 집과 옷, 그릇과 의식 등 삶의 곳곳에 담겨 있답니다. 

 

 

그들은 우리의 열두 달 명칭도  자연의 변화에 따라  '물고기가 뛰노는 달', '곧 더워지는 달', '과일을 따서 말리는 달' 등으로 불렀고 

 

 

사람의 이름도 '늑대와 함께 춤을', '햇빛 아래 호랑이', '하늘을 가르는 표범'처럼 자연과 연결하여 짓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사는 곳 근처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연의 재료를 이용하여 집을 지었지요. 

 

 

건조한 사막 지형에서는 흑벽돌로 어도비를,

북극에서는 얼음으로 이글루를 만들었으며

대평원에서는 이동하기 쉬운 티피를,

북동부에서는 나무로 롱하우스를 지었습니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티피에서는 겉의 그림 장식이 눈을 끌었네요. 

 

 

 

어도비의 야외 화덕을 이용해 빵을 굽는 그들의 일상에

 

 

할머니의 할머니부터 이어온 그릇들이 보입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10개의 문화권,  43개 부족의 공예와 회화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작품을 남서부, 북극, 북서 해안, 캘리포니아, 남도우, 북동부, 대평원 등 일곱 개의 지역으로 분류,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이고 

가족과 공동체의 고유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랍니다. 

이렇듯 북미 원주민에게도 공예품은 삶을 위한 기능적인 물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지요. 

공예문화에서 자연환경은 아주 중요해서 대평원 지역에서는 들소는 이용해 옷과 사냥 도구를 만들었고, 추운 곳에서는 동물 가죽으로 따뜻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자연의 재료에 자연을 나타내는 무늬의 토기나 바구니를 만들었습니다.

부족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화나 믿음 등의 소중한 전통은 그들의 예술작품에 그대로 담겼지요.

 

남서부 지역에서 눈을 끌었던 것은 한 올 한 올 엮어간 족장의 '덮개'였네요.

 

 

성조기 무늬가 있거나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덮개며 전통방식에서 벗어난 나바호족의 화려한 덮개도 등장합니다..

 

'천을 짜는 것은 신이 준 선물이자

우리의 전통과 세계관을 담고 있다. 

나의 일상에 위대한 목적의식을 주고

나를 가족과 연결해 준다.'는

나바호족 잠언도 보입니다. 

 

 

북극 코너에서는  방한용인 짐승의 털을 덧댄 외투에  

 

 

이누피액 족의  전사를 위한 튼튼한 갑옷과 다양한 장식의 의례용 외투가 남아 있습니다.  

 


 

 

북부 캐나다, 그린란드, 알래스카, 시베리아에 살았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실용적인 카약을 만들어 물새나 바다표범, 바다코끼리와 고래를 사냥했습니다. 

카약은 이누이트 어로 '사냥꾼의 배'라는 뜻이라네요. 

 

 

북서해안은 바다와 가까이 있고 산과 숲이 많아 다양한 동물이 살았기 때문에 하이다 족 등 여러 부족들은 독수리, 까마귀나 곰 같이 그들에게 중요한 동물을 형상화하여 집의 정면이나 토템 기둥, 모자 들에 새기거나 그려 넣었지요.

콰콰케와크 족의 '달 속의 범고래', '휜 목재로 만든 상자',  축제용 그릇에

 

 

하이다 족의 족장들이 쓰던 모자에도 독수리가 보이네요.

 

 

특히 이 '의식용 기둥'은

넙치를 닮은 바다괴물을 상상하여 만든, 큰 혼란과 파괴를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하고 무서운 생명체를 표현하여 바다와 거기에 사는 동물에 대한 경외심과 숭배를 담았습니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무늬를 넣어서 만든 바구니가 많습니다. 

이들은 식물의 줄기나 뿌리, 조개껍데기와 새의 깃털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 섬세하고 멋진 생활 도구를 만들었지요. 

 

 

 

날씨가 따뜻하고 습한 남동부 지역의 화려한 옷을 즐긴 사람들은 이 지역에서 일찍부터 이주민과 접촉을 한 이른바 '문명화된 다섯 개 부족'이라 불리던 촉토 족, 치카소 족, 세미놀 족, 크리크 족, 체로키 족이었습니다. 

체로키 족과 치크마차 족은 주변에 흔했던 대나무로 정교하면서도 다양한 무늬의 바구니를 만들었고 

 

 

그중에서도 세미놀 족의 남성은 화려한 줄무늬가 있는 전통 옷을 입었습니다. 

 

 

북동부는 숲과 호수, 강이 많은 곳으로 

이 지역은 빨간색과 초록색 대비되는 호청트 족의 화사한 의례용 치마가 인상적이었지요. 

꽃을 추상화한 이 대담한 무늬가 예사롭지 않았거든요. 

 

 

모호크 족의 이 모카신은 부드러운 발바닥에 추위를 막기 위해 두텁게 지었지만 

대평원 지역의 부족이 신는 모카신은 바닥이 단단했다네요. 

구슬로 장식한 공예품이나 호저의 가시와 자작나무로 만든 바구니는 아름다웠지요.

 

 

 

대평원지역에서는 독수리 깃털로 만든 기품 있는 머리 장식이 특별했네요.

 

 

이 화려한 장식은 부족 내에서 존경받는 사람들만 쓸 수 있었답니다.

 

 

이들의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모카신에서는 뛰어난 색채 감각이 보입니다.  

 

 

 

대평원 전사의 술 달린 전투복 상의,

독수리와 청둥오리 깃털로 장식한 드레스에

압사로 족 여성의 사슴 이빨로 장식한 드레스는 화사했고 

 

 

구슬로 햇살과 독수리 깃털을 수놓은 예복과

말을 타고 달리는 전사들이 그려진 예복에도 섬세한 장식이 보였네요.

 

 

원주민들의 일상은 영적인 삶과 구분하기 어려웠지요.

세상의 모든 존재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의식을 치르기 위한 탈과 카치나와 같은 인형을 만들고 종교적인 여러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축복과 생명의 물을 붓는 여인, '하하이우티' 카치나,

비를 부르는 카치나,

호피족의 신성한 존재, 코샤레(광대 카치나),

독수리 춤을 추는 무용수 '시토토' 카치나 들이 보이네요. 

 

 

 

첫 수확에 감사하고 그해 결혼한 다섯 명의 여성들에게 축하를 해주는 화려한 니만 의식, 

질병과 적을 막기 위한 의식인 아파치 족의 역동적인 왕관춤,

산 일데폰소 족의 추수를 감사하는 경건한 의식에

 

 

 

호피 족 독수리 무용수의 그림과

 

 

산타클라라 족의 이 코샤레처럼 자신의 부러진 뿔을 고치느라 집중하는 모습의 인형도 있습니다. 

 

 

타리오와 족의 깃털 춤은 화려했고

 

 

산 일데폰소 족의 들소와 사슴 춤은 연희 장면을 보는 듯했지요.

창을 쥐고 들소 탈을 쓰거나 사슴 탈을 쓴 사람들이 춤추는 옆에는  독수리 털 장식의 북 치는 이들도 보입니다. 

 

 

카이오와 족의 태양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는 간절했으며

 

 

촉토 족의 볼 댄서들은 흥겨웠지요.

 

 

 

초자연적인 존재를 묘사한 탈과 숲의 야인 '바크와스' 탈,

 

 

 

범고래와 까마귀  모습을 한 의식용 탈도 있습니다. 

범고래는 콰콰케와크 족 해역에 많이 서식하며 그들의 신화에도 자주 등장한답니다.

그들은 먼바다의 거대한 집에 범고래가 살고 있다고 믿으면서 범고래의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고자 했고 

까마귀는 거인에게 사람을 먹이로 바치는 중개 역할을 한다고 믿으면서 그 또한 경외의 대상이 되었답니다.

그들은 이런 탈을 쓰고 춤을 추면서 그 대상을 숭배했고 그 힘의 도움을 염원했겠지요.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래 유럽인들이 북미 대륙으로 건너오면서 원주민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 만남은 낯설었지만 원주민들은 낯선 땅에 정착한 이주민들을 도와주며 나눔과 배려, 조화와 공존의 삶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며 평화로운 시기를 보냅니다.

이주민들은 처음 보는 원주민의 외모와 옷차림, 생활 방식에 관심을 가졌고 그 모습을 그림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드럼 연주자들',

 

 

'말 문화의 일몰'과

 

 

'유트 족의 보금자리' ,

 

 

'덮개를 두른 소녀'와

 

 

'지나가는 인디언들' 등에서 원주민들의 생활은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상 이런 그림은 유럽의 백인을 미국에 유인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답니다.

 

 

원주민들에게 자연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이주민들에게 북미 대륙은 '기회와 풍요의 땅'이었지요.

처음 동쪽 바닷가에 자리 잡았던 이주민들은 1783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점점 더 서쪽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그러면서 이주민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던 원주민들 간의 갈등과 충돌은 더 심해졌지요.

1848년에 시작된 '골드러시'는 북미 원주민과 이주민 간에 일어난 대대적인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아 서부로 몰려들면서 원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살던 곳에서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890년에 일어난 '운디드니 대학살 사건'도 그중 하나입니다. 

거기에 평원 지역 원주민들의 삶에서 절대적이었던 들소는 이주민들의 무차별적인 사냥으로 멸종위기에 놓이게 되었고 

이런 고의적인 행동은 많은 원주민들을 굶주리게 하였으며 설상가상 이주민들이 옮긴 전염병으로 많은 원주민들이 죽으면서  그들의 삶도 무너졌습니다. 

이제 그들의 신성한 땅에는 철도가 놓이고 들소는 사라졌으며 그 땅에 울타리가 만들어지고 수많은 죽음을 겪으면서 원주민들은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이런 역마차의 이미지는 서부 개척에 걸림돌이 되는 원주민을 추방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고 

 

 

1950년대, 콜로라도주의 아이언마스크 광산에 수천 명의 이주민들이 몰려와 마을을 이루었다는 그림에 

 

 

클링깃 족의 제시 쿠데이가 그린 '존 웨인의 세계'에서는 한때 서부영화의 우상이었던 그가

'나는 이 위대한 나라를 그들로부터 빼앗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략)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땅이 필요했고 원주민들은 그 땅을 그들만 가지려고 했다'고 말한 기록도 보입니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은 압사로 족인 화이트 스완이 겪은 전쟁을 묘사한 그림에도 나타납니다. 

1876년 6월, 당시 미 육군의 정찰병으로 고용되었던 그는 '리틀 빅혼 전투'에 참여하여 전투 상황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화이트 스완이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는 모습,

바로 아래에는 나팔수가 다친 그를 구하는 광경이며

더 아래는 말 탄 그가 원주민을 공격하는 장면,  

왼쪽 상단에는 3명의 원주민에게 포위된 그가 결사적으로 싸우는 장면,

아래에는 그가 마상의 원주민을 공격하는 광경이 나옵니다. 

 

 

'운디드니, 아메리카 대학살'은

사우스다코다주의 운디드니 보호구역에서 항의 모임을 갖던 원주민들에게 미 기병대가 무차별 총격,  300여 명이 죽거나 다친, 참극을  담은 충격적인 그림입니다.  

 

 

우는 걸 두려워 말라

울음은 당신 마음을 슬픈 생각에서

해방시킬 것이니 

소리 내어 진정으로 울 줄 아는 자는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호피족 잠언)

.

.

.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원주민들은 여러 갈등과 위기를 겪으면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원주민 후예들은 예술을 통하여 그들의 전통적인 주제를 표현하거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아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원주민에 대한 오해, 그들이 겪는 차별을 바로 잡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답니다. 

 

이제 이런 '젊은 인디언'의 차림은 지금 볼 수 없지만 그들의 기개만은 아직도 살아 있으며 

 

 

체메우에비 족의 카라 로메로가 찍은 '원주민 소녀'의 강인함과  

 

 

 

예술작품인 그림 속 그림과 바닥의 깔개를 통하여 그들의 긍지가 확인되고 있었지요.

 

 

그러나 '딸랑딸랑'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에서는 

원주민의 땅에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그들 공동체가 겪은 폐해를 폭로하려다가 죽임을 당한 새로움 죽음을 추모하고 있었고 

 

'반은 인디언, 반은 멕시코인' 사진과  

 

 

 '인디언을 죽이고 사람을 구하라, 인디언을 구하고 사람을 죽여라'의 그림처럼 성조기의 별을 파이유트 족의 바구니 무늬로 바꿔 표현하면서 원주민들은 여전히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루이세뇨 족 원주민이 그린  '소총을 들고 앉아 있는 인디언'은 

이제 자신과 가족, 공동체를 지키려는 굳건한 전사의 이미지로 재구성되었네요. 

 

 

한 뼘 땅일지라도

소중한 것을 지키라

홀로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

그대가 믿는 것을 지켜라

먼 길을 가야 할지라도

그대가 해야 하는 것을 하라

(프에블로 족의 기도)

 

흑인 공동체의 상징, '블랙파워'를 복제한 '인디언의 힘'은

이제 미국 전역 원주민의 자결권과 행동주의의 시각적 상징이 되었답니다. 

말 위에서 주먹을 힘껏 쥔 그림 속 주인공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원주민들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었네요. 

 

 

캐나다 작은 마을, '프렌치 리버'에 들렀을 때, 거기 선주민들이 운영하는 'Trading Post'가 백인에게는 제한된 몇 가지의 특권 아닌 특권을 받으면서 점점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간다는 말을 듣는 순간 

뉴질랜드의 당당했던 원주민, 마오리 족을 떠올린 일이 있었지요.

 

 

호주 정부의 원주민 생활비 보조 정책 속에서도 어두웠던 표정의 울룰루 원주민, 애보리진.

호주 본토에서 쫓겨나 외딴 섬 브루니에서 멸족, 마지막으로 죽은 원주민 여자를 미라로 만들어 박물관에 전시했던 이주민들의 횡포.

흡수, 동화되는 일본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의 활기 없던 모습. 

그와 달리 '꺄 오라(안녕하세요?)'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하던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모녀를 보면서 원주민을 쓰레기 취급, '보호 구역'으로 내쫓고 생색도 나지 않는 돈을 지불하여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교육과 취업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우리는 이주민인 백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일방적인 편견을 수정, 위대한 자연에 감사하며 조화와 균형의 가치를 소중하게 지켜왔던 원주민들을 제대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북미 원주민들이 그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전통 속에서 '인디언의 힘'으로 다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날이 밝으면 태양이 당신에게 새로운 힘을 주기를

밤이 되면 달이 당신을 부드럽게 회복시켜 주기를

비가 당신의 근심걱정을 모두 씻어 주기를

산들바람이 당신의 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를

당신이 이 세상을 사뿐사뿐 걸어갈 수 있기를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기를

(아파치 족의 기도)

 

내 뒤에서 걷지 말라

내가 이끌 수 없을지도 몰라

내 앞에서 걷지 말라

나는 따를 수 없을 지도 몰라

내 옆에서 걸어라

우린 하나가 될 수 있을 테니

(유트 족 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