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왔습니다.
아래 보이는 곳은 '스탈린 광장'에서 이름을 바꾼 '자유광장'은
2003년의 무혈혁명으로 독재자를 몰아내고 자유를 되찾았던 '장미 혁명'의 근원지였지요.
광장 한가운데에 삼성 로고가 보여서 흐뭇했습니다.
고풍스러운 번화가를 지나
요새 '나리 칼라'로 올라가면
시오니 성당과 메데키 성당 등 크고 작은 성당이 보입니다.
곡선이 아름다운 평화의 다리도 있습니다.
시내 어디서든 산 정상의 '마더 상'이 보입니다.
한 손에 포도주 잔, 다른 한 손에 칼을 든 이 어머니상에는
'친구는 포도주를 대접하며 환영하지만 적에게는 끝까지 대항한다'는 이 나라 사람들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네요.
기독교가 국교인 이 나라는 이슬람 국가에 둘러싸이면서 파란 많은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강변에 자리 잡은 메데키 성당은 트빌리시를 대표하는 건물로
그 옆에는 이 도시를 건설한 장군의 기마상이 서 있고
거기서 언덕에 올라 탁 트인 정원을 지나면
조지아 국보 1호인 십자가,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인 '성 니노'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었다는
그 십자가를 소장한 시오니 성당이 나옵니다.
성당 앞에서 검은 상복의 슬픔에 잠겼던 노부인이 우리에게 젊은 군인의 사진을 하나 내밀며
손바닥에 2008이라는 숫자를 써 보이더군요.
2008년 8월에 있었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분 같았네요.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이 너무나도 커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 하고라도
그 아픔을 나누고 싶었던 것일까요?
나는 가만히 그의 어깨를 안고 토닥이며 위로를 했지만 자식을 앞세우는 일은
세월이 가도 결코 치유되지 않는 고통일 듯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조지아는 5일간의 이 전쟁에서 무려 3500명의 젊은이를 잃었답니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가는 석유 파이프가 이 나라를 지나가는 것에 대한 불편함,
정치권에서 펼치는 친 서방 정책과 친미 성향에 남 오세티 등 영토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러시아의 침략이 시작되었고
이 전쟁에서 조지아 군대는 참패를 당하게 됩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이 하나하나 그 영향력을 벗어나 독립해 나가는 상황이 불편했던 러시아는
이 상황을 계기로 주변 국가에 경고의 멧시지를 보낸 것이지요.
약소국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네요.
정부는 이후 나라 이름을 러시아 식인 그루지아에서
미국식 발음인 조지아로 바꿔 불러달라고 전세계에 요청합니다.
동유럽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금빛 사메바 교회에도 검은 옷을 입은 사람과 군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오늘은 그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위한 추모의 날인 듯합니다.
이 나라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분의 이름이 붙은 지하철 역, 루스타벨리 역 근처에는
토요일 오전의 벼룩 시장이 열렸습니다.
이 거리에 오페라며 발레 극장 등 공연장이 많은 것을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도
대단한 듯합니다.
혹시 하고 공연장의 벽에 붙은 프로그램을 들여다보았지만 우리 일정에 맞는 공연은 없었네요.
거리 양쪽, 건물 벽에는 모두 조각을 새겨 있습니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색소폰 부는 남자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터키 식 목욕탕인 하맘에 왔습니다.
이 도시의 이름, '트빌리시' 는 '천 개의 온천'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
아바노티반 거리의 골짜기를 따라 돔형 지붕의 하맘이 주욱 늘어서 있습니다.
여러 등급의 하맘에서 우리는 대중탕인 '5번가'에 입장, 뚱뚱한 조지아 아줌마들과 같이 샤워를 했습니다.
마사지를 권하기에 부탁했더니 딱딱한 돌판에 뉘어 놓고는 비누 묻힌 타올로 몇 번 밀어주고는 끝.
돌판에 닿은 등이 너무 아파서 오래 걸리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해야 했네요^^
유황온천입니다.
다음날 찾아갔던 트빌리시 근교 언덕 위의 즈바리 성당은
이 나라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니노가 포도나무 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 놓았다는 전설이 있는
코카서스 정교회 신도들의 순례지입니다.
이 성당 앞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던 사람이 나에게 조지아의 민요, '백만 송이 장미'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의 연주와 노래는 너무나도 감동적이어서 나는 완전히 몰입해 있었지요.
러시아 민요로 알고 있던 '백만 송이 장미'는 사실 이 나라에서 시작된 노래라 했네요.
그곳에서는 저 아래 므츠헤타 시내에 있는
스베티 츠호벨리 성당이 내려다 보입니다.
조바리 언덕에서 아래로 내려와 찾은 그 스베티 츠호벨리 성당은 예수님의 성의가 보관되어 있다는,
신자들에게는 기념비적인 또하나의 순례지입니다.
성당 안, 성화가 그려있는 탑 속에 그 성의가 있답니다.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
그 앞에서 경배를 드렸습니다.
한 여자의 기도하는 모습은 아주 감동적이었네요.
스베티 츠호벨리 성당에서도 언덕 위 즈바리 성당이 보입니다.
서치라이트 불빛의 밤의 요새와
시내를 관통하는 므츠바리 강 위에 세워진 '평화의 다리' 야경,
밤의 카페 거리 풍경이 편안해 보였습니다.
이 도시에 있는 동안 마음 편하게 머물렀던 숙소, 이리나 GH의 여장부, 이리나의 모습도 한 장 남기면서
트빌리시를 떠납니다.
코카서스 산맥 남쪽에 있는 세 나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인 요지에 있어 수많은 외침을 겪은 나라,
특히 기독교가 국교인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는 주변 이슬람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더 힘든 갈등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요.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 영토 문제 등으로 여전히 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터키와 아르메니아 사이에는 국교가 단절되면서 국경이 폐쇄되었고,
구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2008년에 있었던 러시아와의 영토 전쟁 이후
러시아 항공이 조지아 운항을 중지하는 등 국경이 닫혔습니다.
아에로플로트를 이용한 우리는 이번 여정에서 아제르바이잔으로 들어갔다가 조지아로 가서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에서 다시 조지아로 나와 동부 터키로 가는 우회 코스를 택해야 했네요.
힘없고 작은 두 나라의 생존이 안쓰럽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과 따뜻한 인심, 싸고 맛있는 음식들로 코카서스 세 나라의 여행은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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