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청주, 2

좋은 아침 2022. 7. 18. 15:13

초정행궁은 세종이 초정 온천수로 피부병을 치료하면서 잠시 머물렀던 행궁입니다.  

'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이 1444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이곳에 행차, 121일 동안  온천수로 눈과 피부병을 치료했다네요.

그러나 당시 이용했던 행궁은 1448년(세종 30년) 방화로 전소되었고 

이후 청주시에서 고증에 따른 복원 작업 끝에 2020년 6월 일반에게 개방하였습니다. 

시설관람은 하절기 3월부터~10월(09:00~18:00), 동절기 11월부터~2월(09:00~17:00)

입장료는 무료. ​

 

 

행궁 안에서

 

 

세종이 국사를 보던 독서당으로 들어가면 

 

 

          '오봉일월도'가 보이는 편전과 그 뒤의 침전, 

       

 

옆으로는 왕자들의 거처가 나옵니다. 

 

 

그 앞, 수행원들이 머물렀던 집은 이제 전시관이 되어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드느라 혹사했던 눈을 여기서 치료했다는 이야기며 

 

 

행차 모습을 재현하여 놓았고, 

 

 

                                     치료 중에도 쉬지 않고 국사를 돌보았음을 알리고 있었네요. 

                                

 

그 옆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한옥체험관이, 

 

 

 

 

수라간에서는 

 

 

왕가에서 초조반상으로 마셨다는 맑은 미음, '九仙王道糕 시식체험'을 진행합니다. 

 

 

                               이 행사는  청주 시청의 지원을 받아

                               2022년 6월 11일~10월 30일, (매주 토, 일), 9시, 11시, 14시로 1일 3회 운영하며

                              

 

인터넷이나 전화(010-3050-5009)로 예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11시 음식 체험을 예약,

'위를 깨우는 아침의 식전 음식'답게 가볍지만 귀한 음식을 먹어 보았네요.

한방 보양식이랍니다. 

 

 

한쪽에는 1913년 청주에 살았던 양반가의 며느리, 진주 김 씨가 자신의 요리법을 한글로 기록하여 남긴 책, 

'반찬등속'에 나오는 음식을 일부 재현해 놓아서 청주 지역의 식생활과 식문화를 구경할 수 있었지요.

 

 

수라간에서 나와 

 

 

세종정이 있는 광장으로 나오면 훈민정음 서문이 보이는 조형에

 

 

세종 때 만든 다양한 천문관측기구들이 보입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재는 '풍기대' 옆에는

강우량을 살피는 '측우기'와 하천의 수위 변화를 측정하는 '수표'가 있습니다.

특히 측우기는  우리나라에서 1442년부터 사용하던 기구로 1639년의 로마에 200년이나 앞선 발명품이었다네요.

새로운 사실! 

 

 

세종 때 가장 널리 보급되었다는 오목한 반구형의 해시계, '앙부일구'에

 

 

시계방향으로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장영실의 발명품, '혼천의'와 

휴대용 해시계라는 '천평일구',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고 시간을 측정하던 작고 간편한 '소간의',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만들어 밤낮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던 '일성정시의' 들도 보입니다. 

강우량을 측정하고 강과 개천의 수량을 재며 바람을 측정하는 일,

천체의 운행을 측정하여 세시를 알려주고 시간을 보는 일 들은  

과학에 근거를 둔 합리적인 방법으로 농업국가를 이끌었던 세종의 또 하나 업적이었습니다.  

 

 

 

언덕 위에는 '조청약수 체험관'이 있어 

 

 

약수에 발을 담그며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초정행궁에서 청원구 내수읍에 있는 '운보의 집'으로 왔습니다.

 

 

여기는 운보 김기창 화백(1914~2001) 어머님의 고향집이 있던 자리.

1976년 부인(우향 박래현 화백)과 사별 후

1984년 '운보의 집'을 완공하면서 정착, 자연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노후를 보내던 곳입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전통한옥이 잘 어울리는 예술 공간이었지요.

관람시간은 화~일요일. 09:30~17:30. 월요일은 휴관.

관람요금은 일반 6,000원.

 

 

집으로 들어가는 어귀에는 운보의 말씀이 전합니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듣지 못한다는 느낌도 까마득히 잊을 정도로 지금까지 담담하게 살아왔습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소음공해가 심한 환경에서는 늙어갈수록 조용함 속에서 내 예술에 정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이미 고인이 된 아내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게 유감스럽고

또 내 아이들과 친구들의 다정한 대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는 것이 한(恨)이라면 한(恨)이지요.

예술가는 늙으면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의 창조주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늙어가면서 하늘과 대화를 나누며 어린이의 세계로 귀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나의 마지막 소원은 ''도인이 되어 선(禪)의 삼매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안채에서 보이는  

 

 

뜰의 정자와 작은 연못 풍경이 평화롭습니다. 

 

 

운보 작업실과  

 

 

57세로 먼저 떠난 부인, 박래현의 사진 병풍이 벽을 차지한 안방에서

 

,

'예수의 생애'를 찾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작업 중인 운보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벽에는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절박한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피란 길의 군산에서 예수의 생애를 더듬는, 한국인이 등장하는 성화를 완성합니다.

그는 예수의 일대기가 동족상잔의 우리 비극과 비슷하다고 생각,

빨리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네요.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한복 차림이며 배경도 모두 우리의 산하입니다.

내가 보고 싶던 작품이었지요.

 

 

천녀에게 영보를 듣는 한복의 마리아, '수태고지'와 

 

 

왼쪽부터 '아기 예수의 탄생', '동방 박사들의 경배', '아기 예수 이집트로 피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에 

 

 

오른쪽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를 시작으로  '예루살렘에 입성', '최후의 만찬', '재판받다', '수난'당하다',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힘', '시체를 옮기는 제자들' 등 30 작품이 사방의 벽을 가득 채웠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최후의 만찬'이었지요.

 

 

      '운보의 집' 뒤에는 고무신을 신고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운보의 동상을 배경으로 '운보미술관'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대형 그림 두 개,

무궁화로 둘러싸인 백두산 천지의 '조국 통일'과 

 

 

'수묵화 습작'이라는 힘찬 선의 소싸움에 압도됩니다. 

 

 

벽을 꽉 채운 운보의 연보에는 

 

 

                                              어릴 때 장티푸스를 앓으면서 청각을 잃은 일,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사사하던 시기,

                                              1932년의 모친 타계와 18세에 선전 입선에 

                                              '예수의 생애'를 그리던 1952년,

                                              입체파를 실험하던 50년대의 그림, '복덕방'도 보이고

 

 

                                                뉴욕 체류 중에 그렸던 반추상의 '태양을 먹은 새'에

 

 

1970년대의 청록산수, '귀가'와 

 

 

'천산비학'

 

 

바보 산수인 '오수'와

 

 

 '한정'이 보입니다.

운보는 삶과 해학이 담긴 민화의 정신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었답니다.

'바보산수'는 민화에 대한 그 나름의 유머가 담긴 명칭이었지요.

 

 

만원 지폐에 보이는 세종대왕의 어진도 운보의 그림이었고. 

 

 

그가 모로코 여행 중에 그린 풍속화도 재미있습니다. 

 

 

사랑하고 의지했던 아내, 백래현의 죽음은 운보에게 큰 상실이었지요.

그가 그린 자화상과 아내의 얼굴이 있는 안쪽에는 

 

 

 

같은 길을 걸었던 화가 우향 박래현의 판화, '무희들'과 

 

 

1956년의 '종이에 수묵담채' 등 몇 개의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미술관 안에 운보의 그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한복 성화, 바보 산수들을 보면서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운보는 한 인터뷰에서

'세 분의 여성, 외할머니와 어머니, 아내가 자기희생적 봉사정신과 사랑, 그리고 의무감으로 오늘을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 지극한 사람이 없었던들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하며 그들을 그리워했다지요.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꼭 한 가지,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그 가운데서 우선 가족들의 목소리, 그다음엔 친지의 목소리, 마지막으로 신부님의 강론입니다.'에서는

그 절절한 염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미술관 옆으로는 조각과 수석공원이 이어지고 

 

 

그 한쪽 녹음 속에 부부의 무덤이 있습니다. 

저 세상에서는 부디 운보의 귀가 틔여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대화 나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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