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금요일) 제9일, 냥쉐의 인레 호수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
어제 미리 예약한대로 아침 6시에 간단한 식사 후 호수 유람하기.
호수 입장료는 1인당 3달러, 한국인 여행자 2명이 합류한 5인승의 보트 투어는 3500짯으로 1인당 700짯.
기대했던 플로팅 마켓은 장날에만 열린단다.
처음 들른 상설시장은 골동품을 파는 리어카며 옷가게,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화려한 전통의상의 여자들과 원색의 꽃에 색색의 과일, 검은 색의 길쭉한 배와 맑은 물빛,
초록색 물풀의 그림 같은 장면.
맑게 개인 하늘과 호수에 떠 있는 수상 경작지, 쭌묘.
한 발은 중심을 잡고 다른 한 발로는 노를 저어가며 고기를 잡는 어부와 수상 시장의 풍경이 이국적이다.
이 호수 위, 대나무로 만든 집에 사는 인따족은 여기서 수영하고
이 물로 끼니를 준비며 목욕에 배설과 빨래까지 모두 해결했다.
주변 경치는 아름답고 이곳의 사람살이는 특별하다.
마지막 코스는 점핑 캣으로 유명한 사원, 응아 페 사원-Ngapho Chaung.
링을 넘었다는 재주부리는 고양이는 이제 볼 수 없다.
사원보다도 그 앞, 떠 있는 밭의 풍경이 좋아서 오후 4시 까지 보트를 타고 돌아 다녔다.
추천받은 'Mr.cook'에서 바나나 라씨를 마시고 돌아 와서 샤워.
역시 강추라는 미얀마 전통 음식점 ‘Four Sisters Restaurant’에서 저녁식사.
고풍스럽게 꾸민 실내에 깨끗하고 조용한 동양적인 분위기, 다소곳한 태도로 음식을 주문 받고 내오는 일,
밑반찬이 떨어지는 대로 다시 갖다 주는 후한 인심 등이 미얀마의 이미지 그대로이다.
이들 샨족의 음식은 담백하고 미얀마 상표의 맥주는 산뜻했다.
식사 끝 무렵, 전통 악기 연주자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거기에 맞춰 한 여자가 춤을 추었다.
단조로운 멜로디에 느린 동작이 여유롭고 편안하다.
이곳은 음식 값을 내고 싶은 만큼 지불하는 레스토랑, pay-what-you-like restaurants.
미국 911 테러 여파가 여기까지 미치는 탓인지 관광시즌이라는데도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계속 같은 얼굴과 마주친다.
호수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미얀마인들은 오른손은 신성하게 여기지만 왼손은 불결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물건을 만지거나 가리킬 때는 오른손을 사용해야 한다.
종교적인 장소에서는 반바지, 민소매 차림을 피하고 모든 사원은 맨발로 들어간다.
특히 여자는 발목 보이지 않게 조심해야 하며 부처나 스님을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된다.
시내에서도 옷차림을 단정히. 노출을 삼가야 한다.
가족 간에 밀접한 유대가 있으며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어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 배를 탈 경우 여자가 2층으로 올라가는 것도 금기.
이러저러한 생활풍습은 과학적인 근거 여부를 떠나 이 나라의 풍속이니 지켜주는 것이 좋다.
몇몇 서양인이 이 조용한 나라의 품격을 무시하고 시끄럽게 떠들거나
노출 많은 옷차림에 버릇없는 행동을 할 때는 나도 기분이 나빴다.
1월 12일 (토요일) 제10일, 깔로
예정했던 차웅따 해변은 불편한 교통 문제로 포기, 깔로 트레킹으로 바꾸었다.
삔다야 동굴은 차에서 내려 험한 산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해서 오늘 오후의 일정으로 잡을 수가 없고
깔로에서 45km 떨어진 빠오족의 마을에서는 샨 종이와 승려들의 우산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다는데
내일의 트레킹을 위하여 그것도 포기.
10시, 쉐냥 행 버스.
정원 25명이 차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시간에 쫓긴 우리가 남은 자리값을 지불한 후에야 떠날 수 있었다.
쉐냥에서 소나무 향기 쾌적한 고산 휴양지, 깔로까지는 버스로 3시간. 1인당 500짯.
먼저 앉아 있던 미얀마 사람들이 좋은 자리를 양보해주기에 고마워서 쪼코렛을 돌렸더니
운전수는 휴게소에서는 구입한 바나나를 우리에게 나눠 주었다.
우리의 미얀마 몇 개 단어가 그들을 웃기고 분위기를 즐겁게 한다.
Pine Restautant에서 점심을 먹고 트레킹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Winner Hotel에 체크 인, 1일 15달러.
지금까지의 숙소 중에 가장 깨끗하다.
숙소의 소개로 가이드를 만나 점심 포함, 1인 3달러에 내일 아침 8시 출발, 오후 4시 돌아오는 왕복 16km의 트레킹 예약.
두 개의 마을에 사는 뻘랑 족을 보게 된다.
냥쉐의 ‘Four Sisters Restaurant’이 생각나서 찾은 ‘Seven Sisters Restaurant’에서 저녁 식사.
고급스런 이 전통가옥 레스토랑은 아주 깔끔하고 조용하다.
음식은 '네 자매'보다 못했지만 맥주 1병이 곁들인 식사비는 무려 3250짯.
호텔에서 트레킹용 운동화를 1켤레 200짯에 빌렸다.
1월 13일 (일요일) 제11일, 깔로
양곤이나 버고로 가는 버스는 따웅지나 쉐냥에서 출발하든 깔로에서 출발하든 버스요금이 똑 같다.
그리고 행선지가 서로 다른 모든 버스도 거의 같은 시간대에 하루 한 차례 운행된다.
그러니 오늘 트레킹 후 4시 넘어 돌아오는 우리는 내일 오후 2시 30분에 오는 버스를 타야
짜익티요와 양곤에 갈 수 있다.
지난 번 시간이 없어 들르지 못한 황금바위, 짜익티요에 다녀오기에는 양곤의 일정이 너무 짧을 것 같아서
아쉽지만 짜익티요 포기.
그러면서 호텔 매니저에게 양곤 행 버스 티켓 예매를 부탁했다. 1인당 2500짯.
숙소의 매니저가 깔로 근처, 8000개 작은 불상이 있는 삔다야 동굴은
왕복 3시간에 1시간 관광으로 충분하다기에 내일 오전에 다녀올 생각으로 차편 예약. 11달러.
8시 트레킹 출발.
산세가 완만한데다가 소나무가 많은 산그늘 길은 걷기 힘들지 않다.
도중에 만난 뻘랑족 남자는 군청색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여자는 빨강과 초록의 화려한 옷에
수 십 개의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머리에는 터번을 쓴다.
그러나 젊은 여자들은 편한 복장을 하고 있어 이곳에서도 전통은 사라지고 있었다.
그들은 산비탈을 일구어 차이니스 차를 재배하고 깨와 밭벼를 주로 심었다.
뻘랑족 마을의 아이들은 손을 내밀며 먹을 것을 달라 했다.
우리 가이드 ‘도’는 늘 있는 일인 듯, 미리 준비한 볶은 콩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우리도 가진 것을 풀면서 입 주변이 헌 아이에게 가지고 다니던 연고를 발라 주었고.
여기 여자들도 화장품을 좋아한다.
뻘랑족의 집, Long House 안을 구경하면서 차와 바나나를 얻어먹고 답례로 500짯을 놓고 왔다.
기다란 집 2층에는 세 가구에 모여 산다.
여기도 1층은 축사.
View Point는 온갖 꽃들로 화사하다.
도가 준비한 짜파티 2장에 아보카도 샐러드, 단호박과 오렌지, 커피로 점심 식사.
도중에 길을 보수 중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도의 조언대로 헌금, 방명록에 이름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에게 일거리를 주고 기부 받은 돈으로 임금을 주는 제도라고 한다.
도에게 13FEC와 팁 지불.
그는 미얀마 현 체재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 듯 말을 아꼈다.
길 건너 '뚜망 식당'에서 저녁 식사.
우리나라의 무짠지무침 같은 반찬이 입에 맞아 잘 먹었더니 네 번이나 더 가져다주었다.
‘시간이 멈춘 땅’에서 어느 새 ‘늘 시간에 쫓기는 땅’으로 돌아 갈 날이 되었다.
1월 14일 (월요일) 제12일, 깔로
달력은 빨간 글씨로 연휴.
Winner 호텔의 후론트에 있는 40대 중국계 여자, 루비에게 물었더니 카렌족의 설날이란다.
8시에 삔다야로 출발하려 했지만 방송을 들은 매니저가 아웅반에
정부 관리가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가 있어서 교통이 통제된다고 했다.
여기서 기다리나 거기서 기다리나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일단 출발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곧 정지 명령를 받았다.
수소문 끝에 10시가 되어서야 통제가 풀린다는 말에 그냥 돌아와야 했다.
트렁크를 로비에 내 놓고 점심을 먹으러 ‘뚜망’에 갔더니 어제의 그 반찬이 없어 한참동안 손짓발짓 설명.
영어가 안 통하면서 겨우 알아들은 지배인, 잠깐 기다리라더니 금세 시장에 가서 사왔다.
짠지무침 이름은 '마스터리'.
양곤 행 야간 버스는 아웅반의 행사 탓에 연착이 되어 2시 50분이 되어서야 호텔 앞 도착,
승객은 거의 미얀마인이다.
양곤까지 14∼16시간 소요 예정.
비포장의 깊게 패인 황톳길에서는 버스도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이 좁은 길에서는 반대편에서 오는 차에게 길을 비켜주는 일도 힘이 꽤 들었을 것이다.
긴 시간의 야간 버스라서인지 스페어 운전수도 있다.
그들은 털모자를 꺼내 쓰면서도 에어컨을 계속 켜놓고 있었다.
조수에게 춥다고 여러 번을 부탁했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그들의 유일한 오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승객 모두 몰입하여 웃고 즐겼다.
오버 액션의 시끄러운 TV소리와 에어컨의 추위로 잠을 설쳤다.
중간에 모든 미얀마인들이 내리면서 경찰관이 들어와 짐을 조사하는 일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마약 단속인 듯.
1월 15일 (화요일) 제13일, 양곤 2
아침 8시 넘어 양곤 터미널, 소바지공에 도착, 택시 3달러에 Garden G.H로 체크 인.
더운 물 샤워를 할 수 있고 위치가 좋으니 계속 여행객이 들어온다.
한국인 투숙객도 보인다.
짐을 풀고 옆의 오끼나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도니에게 전화, 저녁 식사 약속.
낮에는 보족쩨 시장을 구경하다가 향나무로 만든 정교한 천녀 목조각과 몇 가지 전통 음악 CD를 샀다.
이 시장은 오후 5시에 폐장된다.
택시 타고 인야 호수로 들어가 잠시 산책, 호숫가의 초록 숲이 아름답다. 입장료 1인 15짯.
오후 6시 30분, 도니와 퉁나웅 미팅.
우리의 이번 여행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Karaweik Restaurant’에서 전통음식과 양식이 곁들인 뷔페 음식과 화려한 민속춤 공연에
미얀마 여행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 값으로 1인당 3000짯에 맥주 2병 값으로 모두 17000짯을 내고 미루었던 첫날의 도니 집 숙박비 지불.
숙소의 창밖으로 석가모니 부처의 머리카락을 모시고 있다는 쉐다곤 파고다 노란 탑이 보인다.
1월 16, 17일 (수, 목요일) 제14, 15일 양곤 → 서울
뱅골 만의 일출을 보려고 마하반둘라 공원 옆을 지나 15분 거리의 양곤 항구로 가서
작은 통통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구름 없는 맑은 날씨여서 6시 30분의 멋진 일출 감상하고
양곤 떼인코따라 언덕의 성스러운 쉐다곤, 미얀마 최고의 불탑을 찾았다.
경내에는 온갖 보석과 황금으로 장식한 높이 98m의 중앙탑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금빛 탑들이 즐비하다.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중앙탑은 두 차례의 지진과 화재로 붕괴되었지만
그때마다 역대 왕들이 계속 보수, 증축되었단다.
입장료 5달러인 도심의 이 사원 안에서는 가이드를 자청하는 사람, 탑을 보수하는 사람에 사진사며 청소부,
금박을 입히거나 꽃을 바치며 기도하는 사람들,
많은 여행자들로 사찰의 고즈넉함은 찾을 수는 없었다.
가난한 생활에도 사원에 금과 꽃을 바치고 염주를 돌리며 경배하고 촛불을 켜면서
소원이 적힌 종이를 사르는 미얀마인들의 신앙심이 대단하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소수의 군벌은 국민들의 이러한 절대적인 신앙심을
절대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관례가 된 뽄지, 띨라신의 과정에서 순화된 국민은 모든 것을 전생의 업으로 돌리면서
내세를 위하여 현실을 체념하고 인고하는 것은 아닌지.
깐도지 호수에서 택시로 이동, 숙소 첵크 아웃.
리셉션에 캐리어를 맡기고 ‘Royal Garden’에 가서 딤섬을 먹었다.
세 명이 먹은 열 두 가지 만두 값은 무려 5088짯, 언니가 무사 귀국을 축하하며 지불했다.
멀리 야경 속, 금빛 찬란한 쉐다곤 파고다가 보인다.
공항세며 택시비, 저녁식사 값 등 쓸 돈을 남겨 놓고는 모두 달러로 재환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족쩨를 마지막 코스로 남겨 놓았는데
보족쩨의 중국인은 FEC는 달러로 재환전이 안 된다며 거절한다.
공항의 출국세로 1인당 10FEC를 남겨놓고 짯으로 환전했지만 그것마저 100달러 단위로만 바꿔 주니
수중의 돈은 무려 22만 짯.
시간이 없어 쇼핑도 못하면서 그 돈이 그대로 남았다.
달러보다 FEC를 먼저 사용, 처리해야 했었다.
남은 짯은 미얀마 여행을 계획하는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어야겠다.
1시간의 비행 끝에 방콕 도착.
밤 11시 50분 인천행 비행기 탑승.
아침 7시 공항 도착.
15일의 여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