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몽골,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좋은 아침 2007. 4. 29. 23:30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모스크바에서 시작, 블라디보스토크까지 7박 8일 동안 시베리아 벌판을 횡단하며 

9288km를 달리는 장거리 열차입니다. 

우리는 3박 4일의 일정으로 중간의 이르쿠츠크에서 승차, 종점인 블라디보스토크까지 4100km를 갔습니다.  

횡단 열차의 중간 지점에서 승차한 탓에 우리 일행은 한 군데로 모이지 못하고 각각 다른 쿠페로 흩어졌지요.

한 쿠페에는 2층 침대가 두 개씩 모두 네 개의 침대가 있습니다. 

 

 

북경을 중심으로 단일 시간을 운영하는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광활한 지역별 시차를 인정,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시간을 계산합니다. 

열차 안 복도에는 그에 대한 안내가 나와 있습니다.

 

 

열차는 자작나무 숲을 지나 

 

 

 

바이칼을 옆에 두고 넓은 초원을 달렸습니다. 

 

 

 

 

 

 

 

중간중간 쉬는 작은 역에는 

 

 

현지인들의 좌판이 

 

 

 

늦은 밤까지 이어지면서 재미있는 구경거리와 간식 시간이 되었습니다. 

승무원이 열차 안에서 파는 우리나라 초코파이와 컵라면은 현지인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음식.

그러나 이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훈제 생선, '오물'은 슬루잔카 역을 지나면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한가한 날들, 느긋한 시간에 밀린 일기도 쓰고

 

 

같은 쿠페의 러시아인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블라디보스토크에 산다는 바바라와는 서로 마음이 맞아 보드카도 나눠마시고

 

 

 나란히 누워 얼굴에 오이 팩을 하는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지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기웃거리던 이웃 쿠페의 사람들까지 모여들면서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좁은 열차 안에서 보내는 3박 4일이지만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궁.

 

 

이 복도의 끝에는 난로가 있어 언제든지 뜨거운 물을 마실 수 있고 

 

 

쿠페의 선반에는 밤의 추위를 이길 두툼한 이부자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일행과 떨어지면서 내 자리는    

경찰관 제복이 벽에 걸려있어 확인한 뚱보 샤샤와 궤냐, 자칭 러시아 마피아라는 눈이 날카로운 고웬, 세 사람에

일반 좌석에서 놀러 온 디혼까지 

모두들 짧은 머리에 팬티 바람으로 밤을 새워 노는 청년들이 선점한 쿠페.

밤에는 술, 담배에 떠들며 카드놀이, 낮에는 코를 골며 정신 없이 자는 그들 속에서

혼자인 내 처지가 아주 난감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팩소주를 내밀며 다가서려 시도했지만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으면서 건성으로 악수하는 그들에게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네요.

바바라가 나서서 다른 쿠페의 남자들과 자리를 바꿔주려 했지만 

내 쿠페의 상황을 들여다 보고는 그들 모두 거절.

낮에는 일행이 들어 있는 다른 쿠페와 복도에서 지냈지만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열차, 좁은 객실 안에서 보드카에 취해 낄낄거리며 

놀고 있는 젊은 남자들 속에 혼자 있는 것이 불안해서 오기로 1박을 버틴 후 결국

우리 일행이 쓰는 다른 쿠페의 이불자리를 쌓아두는 선반으로 잠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그들은 블라디보스토크 직전인 하바롭스크에서 내리더군요.

되찾은 내 자리는 엉망이 된 채 반납해야 할 침대 시트와 수건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서 

종점을 앞두고 용품을 수거하던 고압적인 차장에게 바바라가 그 상황을 설명해주어야 했지요.

영어가 통하는 유일한 사람이어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았네요.

불편한 잠자리에 잠도 설쳤지만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추억' 이 또 하나 남았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아름다운 역사. 

 

 

역 앞에서 우리나라 선교사 일행을 만나 그들의 소개로 교회와 가까운 호텔에 짐을 풀고  

곧 '조명희 문학비'를 찾아 나섰습니다.

조사했던 자료대로 근처 버스 정거장에서 41번 버스를 타고

중간에 있는 혁명광장에서 환승, 145번 버스로 간 곳은 극동대학교.

그러나 반대쪽의 극동기술대 안에 있다는 현지인의 말에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지요.

문학비는 이 대학, 빨간 지붕의 도서관 옆에 있었습니다. 

 

 

일만 리 먼길에 굽이치는 아무르강

북빙양 찬 바람의 추위를 받아

가만히 누워서 새 날을 기다리니............

 

 

그의 비석 뒷면에는 그의 시 '아무르를 보고서' 한 구절이  새겨 있습니다. 

그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로 망명했다가 그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반혁명 분자로 몰려 숙청을 당했지요. 

문학을 통하여 사회를 개혁하려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젊은 나이로 죽습니다.

북빙양의 추위를 참으며 새 날이 오기 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엄혹한 시대, 

춥고 어두웠을 그의 삶에 마음이 아팠네요. 

 

술 한 잔에 노란 국화 한 송이, 영전에 바칩니다. 

 

 

근처 독수리 전망대에 오르니 아무르 강변에 숲과 바다가 어울린  도시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부동항입니다.  

 

 

오가는 차들로 번잡한 시내로 들어가 

 

 

굼 백화점에서 기념품을 사며 귀국을 앞두고 최소한의 루블 남겨 놓고  

 

 

혁명 광장의

 

 

'꺼지지 않은 불꽃'

 

 

부조로 기리는 전몰용사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근처에는 

 

 

문이 닫혀 있는 '한국민족문화실'도 있습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해산물이 가득한 시장에서 전자레인지로 데워주는 새우며 게살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우리 말소리에 반가워하며 좌판의 찐 옥수수와 김치 한 봉지를 주셨던 고려인 할머니와 

 

 

기념사진 한 장.

이 장사로 자식 교육 잘 시키고 집 두 채에 차도 장만했다고 평생 이룬 것을 자랑하던 분.

이북 사투리의 우리말을 아직도 잊지 않은, 

불행한 역사 속에서 참으로 고단하게 살았을 '정말 자랑스러운 분'이었습니다.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고 즐겁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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