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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좋은 아침 2009. 12. 18. 19:00

밤 8시 20분 비행기로 카이로 도착.

이곳의 교통질서는 엉망. 모든 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경쟁적으로 달렸다.

문짝도 없는 미니버스는 사람을 가득 태우고도 질주, 신호등이 있어도 지키는 사람이 없다.

초록색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일도 안심할 수 없을 정도이니 차와 사람이 뒤엉킨 무질서가 대단했다.

 

아프리카 북동쪽에 있는 이집트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변의 비옥한 땅을 중심으로 

세계 최고의 고대 문명, 이집트문명을 꽃피웠다. 

기원 전 3000년 경 부터 발달한 이집트문명의 유적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대표적.

그들의 홍수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십진법과 수학, 기하학을 발달시켰으며 측량술, 천문학을 창안하여 전 세계인이 쓰는 달력을 만들었고 파피루스와 상형문자를 이용한 기록문화를 만들었다. 

기원 전 부터 미라를 만들었던 해부학과 생리학, 의학 분야의 수준도 상당했던 뛰어난 민족이었다.

그러나 기원 전 664~332년에는 외래 민족이 권력을 잡아 이후 리비아, 누비아, 페르시아가 번갈아 이 지역을 다스렸고

기원전 332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시대가 시작된다.

기원전 30년에는 클레오파트라 여왕과 안토니우스가 이끈 이집트 해군이 로마 옥타비아누스 황제의 악티움 해전에

패하면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러면서 5000년의 이집트 역사 중 3000여 년에 걸친 그리스와 로마, 프랑스, 영국 등 외국의 통치는 이집트에 

페르시아, 헬레니즘,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남겼다.

1952년 낫세르 혁명 이후 자주 독립이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쿠데타로 얼룩진 군사 정부가 집권 중.

거리에는 현 대통령인 무바라크 장군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곳곳에 무장 군인들이 서 있었다.

 

 

2000년 1월 26일 수요일 제12일, 카이로

 

기자 피라미드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멤피스에는

이집트의 번영기를 만들었던 정복왕, 람세스 2세의 와상이 2층 건물 속에 잘 보존되어 있다.

뜰에는 완벽한 모습의 스핑크스 1개.

사카라는 왕과 귀족, 고관들의 거대한 분묘 지역이다.

 

국립박물관은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관.

무장 군인들이 군데군데 서 있는 살벌한 분위기로 두 번의 검색을 받으며 들어갔다.

외국관광객이 많다.

제일 볼 만한 것은 18세로 죽은 소년왕,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도굴 되지 않은 유일한 이 파라오의 무덤에는 노란 '황금의 관'과 가면에 갖가지 보석 장신구가 화려하다.

이집트에 원정한 나폴레옹 군대가 나일강 하류에서 발견,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로제타 스톤도 한쪽에 당당하게 서 있다.

람세스 2세의 미라를 보려면 따로 입장료를 따로 내야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나가는 과정으로 생각,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고

그가 사후세계로 가는 도중 길을 잃거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안내서, '사자의 서'를 비롯한 많은 부장품들을 함께

묻었다.  

 

 

이집트의 많은 신화 중에는 고대부터 전해지는 오시리스와 이시스 신화가 있다. 

창조신인 아툼의 자녀, 게브와 누트가  낳은 네 아이 중 오시리스와 이시스, 세트와 네프티스가 각각 결혼.

왕과 왕비가 된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어진 정치를 베풀며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를 질투한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후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주검을 찾아내 마법으로 살려낸 뒤 아들인 호루스를 잉태,

네프티스의 도움을 받아 이승에서 몰래 키운다. 이후 호루스는 세트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이시스는 오시리스가 죽어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신전을 지었는데 이것이 무덤의 효시라한다. 

이후 오시리스는 지하 세계의 왕이 되어 죽은 자들의 삶을 심판하면서

이집트인들은 죽은 뒤에도 편안하게 살기 위해 오시리스를 숭배한다는 것.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를 호루스 신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고귀한 신분이라 생각했다. 

자칼의 머리를 가진 지하세계의 신 오시리스,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 등 그림이 재미있다. 

영원을 상징한다는 풍뎅이 그림도 많이 보인다. 

수메르문명에서 시작된 신화는 터키의 동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신화를 만들어내고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로 이어졌다.

 

폐관 시간에 쫓기면서 기자의 피라미드 입장을 다른 날로 미루며 무덤을 지키는 스핑크스 앞에서 인증 샷 한 장.

스핑크스의 코는 나폴레옹 군대의 대포 공격 연습 때 조준 대상이 되면서 떨어져나갔단다.

파피루스가게에서 종이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그 종이에 그린 섬세한 풍속화를 구경.

영어 'paper'의 어원은 이 파피루스에서 나왔다.

 

밤에 다시 가서 영어로 진행되는 ‘Sound and Sight Show' 감상하기.

이슬비 내리는 차가운 날씨에 스피커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피라밋에 쏘아대는 레이저 광선이나 조명,

아나운서의 장엄한 어조는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이슬람국가인 이집트는 금요일이 휴일이다.

1달러는 3.2이집트 파운드.

쇼핑은 정가의 3분의 1에서 시작하라고 했다.

여행자들의 숙소에는 수세식 변기가 놓여 있지만 현지인이 사용하는 곳은 터키처럼 이슬람 스타일.

관광지에서는 영어가 통한다.

 

 

2000년 1월 27일 목요일 제13일, 카이로  바하리아 오아시스

 

조식 후 바하리아 오아시스로 이동, 이곳은 사하라 사막의 일부인 리비아 사막 안에 있다. 

거친 바람 속, 끝없는 모래밭을 6시간 정도 달려 야자수 우거진 마을의 아메드 캠프에 짐을 풀었다.

곧바로 찦을 타고 사막 사파리.

 

드넓은 사막의 전망대를 지나면 영국군 진지가 있던 자리며 노천 온천이 보인다.

인적 없는 흙담의 베두윈 마을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마을의 민속박물관은 아주 소박하지만 토속적이고 재미있었다.

 

 

 

 

캠프장에서 끼니 때 나오는 볶은 밥이며 빵에는 사막의 모래가 섞여 서걱거린다.

밤에는 추운 날씨에 예정된 캠핑이 취소되면서

모닥불 옆에서 원주민들의 전통 악기 연주를 들으며 춤과 노래로 그들과 어울렸다.

 

늦은 밤에는 사막의 모래 위에 누워 별 바라보기.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수 많은 별들. 

 

사막의 밤은 아주 추웠지만 캠프에는 난방시설이 없다.

잘 때는 너무 추워서 가져온 옷을 모두 껴입어야 했다.

 

 

2000년 1월 28일 금요일 제14일, 바하리아 오아시스  카이로  룩소르

 

카이로에 돌아 가 밤 8시 30분, 야간 열차를 타고 룩소르로 이동.

이동으로 하루를 보냈다.

 

 

2000년 1월 29일 토요일 제15일, 룩소르

 

아침 8시 룩소르(테베) 도착, 호루스 호텔에 첵크 인 후 

산 자들의 땅,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을 돌았다.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은 테너, 플래시도 도밍고의 ‘아이다’ 공연으로도 많이 알려진 곳.

기원 전 2세기, 람세스 2세 때에 짓기 시작한 이 신전은 이후 약 1900년간 

역대 30여 명의 파라오들이 계속 증축하면서 다양한 문화양식을 담은 

세계 최대의 신전이 되고 야외 박물관이 되었다. 

또다른 신화 속, '아몬 신'과 '태양신 라'가 결합한 이들의 신, '아몬 라'를 모신 지성소는 제일 안쪽에 있고

고왕국 시대 때 파라오들이 자신을 신이라고 자칭하면서 세웠던 파라오 신전이 몇 개 있다.  

이 신전에서 제일 압도적인 것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도 등장하는 대열주.

무게 70톤에 높이 23m인 134개의 이 원통형 기둥에는 동식물과 상형문자가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기둥의 머리 부분에 새겨진 연꽃 조각이 이슬람이나 불교 모두 같은 상징이어서 흥미로웠다.

남북으로 1500m, 동서로 800m의 크기로 현재 원래의 지붕은 화재로 무너져 내렸다고. 

여걸 합쳅수트 여왕의 업적을 새겼지만 후계자에 의하여 그 내용이 지워진 오벨리스크에서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서기를 열망했던 이집트인들의 집념을 본다.

여기에 있던 한 쌍의 오벨리스크 중 한 개는 현재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가 있다.

예전에는 여기 카르낙신전에서 맞은편의 룩소르 신전까지 양옆이 스핑크스로 장식된 2km의 참배로가 있었단다. 

진흙을 쌓아가면서 차례차례 거대한 돌을 끌어 올려 쌓은 후 목표 높이로 완공 되면 그 흙을 걷어 내는,

오롯이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인류사의 걸작들이다. 

이 신전에서도 밤에 ‘Sound and Sight Show'가 진행된다.

 

룩소르 신전은 아몬 신전의 부속 건물로

신전 앞, 제1탑문에는 람세스 2세의 거상이 서 있고

아름다웠다던 그의 왕비, 네페르타리가 그 아래에 조각되어 있는데 

제일 안쪽의 아몬 신 예배소 옆에 뜻밖의 인물인 알렉산더 대왕 지성소도 있다. 

알렉산더의 군대는 기원 전 4세기, 고대 이집트 말기 왕조의 혼란을 틈타 이집트를 정복하고

대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었다. 

 

 

30이집트 파운드에 전통 돛단배인 '펠루카'를 세 내어 타고 다니면서 나일 강의 일몰을 즐기고

젊은 누비안족 뱃사공을 부추겨 그들의 전통 민요를 들었다.

저녁은 마차를 타고 

 

 

그에게 추천받은 전통 요릿집, ‘아몬의 레스토랑'에 가서 삭슈카와 무슈카를 먹었다.

삭슈카는 양고기 냄새가 강하지만 무슈카는 가지를 넣어 만든 찌개 모양으로 그런 대로 먹을 만하다.

리어카 가게, 즉석에서 짜 주는 오렌지 주스는 100%의 순도로 1달러에 2잔, 1잔에 오렌지 5-6개가 들어갔다.

사탕 수수즙도 아주 달다.

 

 

2000년 1월 30일 일요일 제16일, 룩소르  후루가다

 

아침 8시, 더워지기 전에 관광을 끝내려고 서둘러 출발.

기원전 1300년 경에 완공되었다는 파손이 심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 거상'을 보고

도굴을 염려하여 깊은 산속에 60여 개의 암굴 파라오 무덤을 조성했던 '왕가의 계곡'을 거쳐 

최초의 여자 파라오였다는 '합셉수트 장제전' 에 들렀다.

투트모스 2세가 죽자 왕비였던 합셉수트는 수염을 달고 남장, 스스로 파라오에 올라

22년 간 평화로운 시대를 열면서 영토 확장 등의 업적을 쌓았지만 사후,

대를 이은 양아들 투트모스 3세는 이 장제전의 모든 조각에서 합셉수트의 얼굴과 그에 대한 기록을 훼손, 

모든 흔적을 지웠다고 한다.

어제 보았던 여왕의 오벨리스크 내용까지 모두 지웠다는 투트모스는

키워주고 양위까지 물려준 어머니에게  무슨 원한이 그리 깊었을까?

수직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싼 이 장제전은 세 단계의 테라스와 수 십 개의 기둥이 장엄하다.

룩소르의 서편, 이 왕가의 계곡은 죽은 자들의 땅으로 '네크로 폴리스'라고도 불린다.

 

 

이 계곡에는 24개의 파라오 무덤이 있고 그 중 일부만 공개하고 있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도 들어가는 무덤마다 따로 돈을 내야 했다.

파라오의 저주로 한바탕 떠들썩했던 '투탕카멘의 묘'는 40파운드, 그 외는 5파운드.

유일신으로 종교를 개혁하려다 실패했던 파라오, 이크나톤의 뒤를 이은 소년왕,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미라는

현재 카이로 박물관에 가 있고 이곳에는 벽화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기대했던 람세스 2세의 묘는 보수 중이라며 출입 금지.

오전 중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오후에는 후루가다 행.

모든 여행자들이 모여 한꺼번에 출발해야 한다니 외국인까지 통제하는 이집트 군사 정권의 위세를 실감한다.

낮 1시 30분 출발, 아라비아 사막을 가로 질러 오후 6시 30분 도착. 

 

 

2000년 1월 31일 월요일 제17일, 후루가다  카이로

 

홍해 해변의 관광도시, 후루가다 자유 관광.

홍해의 파란 바다 색깔은 환상적이었다.

 

이곳이 산호의 보고라기에 스노쿨링에 참가했지만 수영을 못해서 배 옆, 얕은 바다에서만 놀았다.

그러니 산호는 구경도 못하고.

장비는 15달러, 고무 옷은 7달러의 대여비 지불.

 

밤 2시, 야간 버스를 이용하여 카이로에 갔다가 곧바로 기자로 이동.

 

 

2000년 2월 1일 화요일 제18일, 카이로, 기자 다녀오기

 

카이로 도착 후 곧 기자로 가서 크고 작은 6개의 피라밋을 둘러 본 후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밋 내부 구경.

'알 아몬의 통로'라는 회랑을 지나 깊숙이 들어가니 현실에 석관이 하나 놓여 있었다.

기원 전 2600년에 세워진 이 피라밋은 높이가 146.6m, 지어진 뒤 약 380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한 변은 230m, 벽돌처럼 다듬은 2.5톤의 돌 230만 개로 10년 간 3만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건설한 것으로

헬레니즘 시대부터 7대 불가사의로 불렸다고. 

거대한 돌을 다듬고 쌓아 크고작은 회랑, 석실, 환기구 들을 만들어낸 독창적인 이 건축 기술은 영원한 수수께끼라했다.

밝은 석회암으로 장식했던 외부는 오랜 세월 동안 무너져 내리면서 거대한 안쪽의 돌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쿠푸왕은 건축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딸을 사창가로 내몰았고

거기에서 따로 돈을 모은 왕녀는 자신을 위한 작은 피라밋을 세웠다니 내세를 향한 그들의 집념이 대단하다.

이집트에는 4천여 전인 고왕국 시대에 세워진 118개의 크고작은 피라밋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무덤에 부장되었던 물건은 거의 도굴되면서 지금은 카이로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 전부라고.

 

 

오후에는 지하철을 이용, 카이로의 혼잡에서 벗어나 고풍스러운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남아 있는 올드 카이로의

콥트 지구, 번화가인 타히이르 광장을 거쳐 최고급 람세스 힐튼 호텔의 스카이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카이로의 일몰 감상.

 

 

2000년 2월 2,3일 수, 목요일 제19,20일, 카이로  런던  북경  서울

긴 시간의 환승, 환승을 거쳐 드디어 서울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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