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도, 네팔

인도 2

좋은 아침 2009. 12. 24. 21:30

2000년 12월 29일 금요일 제4일, 보팔  뉴델리

 

새벽 4시 보팔 도착.

호수를 끼고 있는 이 조그만 동네에는 인구의 48퍼센트가 무슬림으로 이슬람사원이 많단다.

 

호텔에 짐을 풀고 잠깐 휴식 후 '산치 대탑'을 보러 나갔다.

불교 전성기인 아쇼카 왕 때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탑은 무슬림의 파괴를 입지 않아 

그 원형이 온전히 남아 있다.

제 1수투파는 규모가 큰 탑으로

인물 숭배를 금지한 석가모니의 뜻에 따라 연꽃, 수레바퀴, 보리수, 발자국 등과 같이  초기 불교의 상징이 되었다.

 

보팔에서 오후 2시 40분에 출발하는 델리 행 기차를 탔다. 밤늦게 도착 예정.

기차에서 나누어 준 저녁 도시락이 입에 맞지 않기에 옆에 놔두었더니 델리에 도착하자마자

우루루 뛰어 올라 온 현지인들이 모두 가져갔다.

 

내일부터 델리를 기준으로 남동쪽의 아그라와 남서쪽의 자이푸르를 잇는 코스, 

골든 트라이 앵글로 들어간다.

이 코스는 인도의 모습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기본 여정이다.  

 

 

2000년 12월 30일 (토요일) 제5일, 뉴델리  자이푸르

 

아침 일찍 호텔 밖을 산책하다가 복수의 여신, 깔리 신전 발견.

거기서 빈민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는데 구경하는 나에게도 나뭇잎으로 만든 그릇에

사과 파이와 카레로 양념한 콩을 담아 주었다.

어둑어둑한 새벽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꽃과 음식을 바치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도 30루피를 시주하면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빌었다.

 

8시부터 델리시내 구경.

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자마마스지드'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소수의 무슬림이 힌두교도들과 어울려 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어 성역으로 꾸며진 자무나 강변의 간디 기념탑과 레드 포트 구경.

붉은 성은 며칠 전 발생한 테러 때문에 무장한 군인들이 통제하고 있다.

이 성은 무굴제국이 몰락하면서 정복자들에게 많이 훼손당했지만 여전히 장엄하다.

'인디아 게이트'에 다시 갔다가 관청가인 '라즈 파스'에도 들렀다.

1월 26일 인도 공화국 창건일을 앞두고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중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시장에서 ‘라자스탄의 칼러’라 제목 붙은, 이들의 전통 음악 테잎을 샀다. 

72루피, 약 2100원.

낮 1시 30분 시간에 쫓기면서 뉴델리 출발.

타지마할의 모형이 되었다는 '후마윤 황제의 무덤'이며 

지상 73미터의 이슬람 최고, 최초의 승전탑, '꾸룹미나르'를 못 본 것이 서운하다.

 

이 나라는 어딜 가도 매연으로 시계가 뿌옇고 공기가 탁하다.

자이푸르로 가는 고속도로는 계속 공사 중.

현대적인 장비는 보이지 않는, 남자들은 곡괭이로 흙을 파고

여자들은 바구니에 돌을 담아 머리로 이어 나르는 아주 비효율적인 노동 현장이었다.

얇은 아스팔트 도로는 곳곳이 누더기.

길가에 소의 주검을 뜯는 개와 까마귀가 보였다.

그러나 들판에 만발한 유채꽃과 초록의 산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밤 8시 자이푸르 도착.

이곳은 네 달 동안 비가 안 와서 물이 부족하다고 한다.

호텔 안에는 물을 아껴 쓰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00년 12월 31일 (일요일) 제6일, 자이푸르

 

자이 싱그가 세운 자이푸르는 인도 타르 사막의 관문이며 라지스탄 주의 수도.

도시 주변의 성벽이 모두 붉은 색이어서 '핑그시티'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코끼리를 타고 엠버 성에 올랐다.

 

 

 

이곳은 17세기에 세워진 궁전이자 전투요새.

보석으로 화려한 궁 안에는 지배자의 만능과 호사가 보인다.

 

 

그곳에도 관람객을 위하여 직업적으로 라이터를 켜주고 팁을 받는 남자가 있었다.

출입문을 닫은 어둠 속, 수많은 거울 장식이 불빛에 반짝이는 그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것.

 

 

카펫의 모형이 되었다는, 기하학적 문양이 인상적인 정원에는 진분홍색 부겐빌리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라쥐완자‘라는 볼품없는 악기의 음색이 좋아서 거리의 악사에게 수고비로 20루피 주고.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호수 안의 아름다운 궁전은 주 정부에서 개수하여 관광호텔로 사용할 예정이라했다. 

∼푸르는 힌두교인들이 세운 도시, ∼바드는 무슬림이 세운 도시.

 

오후에는 '시티 팰리스'와 인도에서 가장 크고 훌륭하다는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며 '하와마할(바람의 궁전)' 관광.

시티 팰리스는 가문의 영광을 보여 주는 개인 박물관으로 화려하고 정교한 작품들이 많다.

분홍색의 하와마할은 후궁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왕은 궁 안에 갇혀 사는 후궁들이

바깥 세상을 구경할 수 있도록 많은 창문을 만들어 주었단다.

 

 

저녁 식사 후에는 50루피(약 1350원)씩 갹출, 선물을 들고 현지 가이드 리씨의 집 방문.

인도인들의 가정생활이 궁금하기에 우리가 요청해서 찾은 곳인데 

왕족 가문이라는 그의 집은 생각보다 아주 소박했다.

거실 벽은 앰버성의 내부처럼 거울 조각으로 장식했다.

 

인도의 이색 직업

-건물 벽에 거울 하나 걸어 놓고 의자 한 개로 영업하는 거리의 이발사.

-저울 한 개 앞에 놓고 손님의 몸무게를 재 주는 사람.

-의자 하나 놓고 손님의 귀를 청소해주는 사람.

 

 

2001년 1월 1일 (월요일) 제7일, 자이푸르  파테푸르시크리  아그라

 

설 아침, 일행들과 새해의 덕담을 나눴다.

호텔 로비에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축하하는 장식이 붙어 있다.

코끼리 형상을 한 힌두의 신, 가네쉬는 부자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모시는 신으로 

음식점이나 호텔 로비에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인도인들은 3억의 신을 모신다고 했다.

주변의 모든 것에 신격을 부여한 것.'

 

오늘은 파테푸르시크리를 거쳐 아그라 행.

길에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돌산만 보인다.

'아그라'는 '하늘의 낙원'이라는 뜻의 아그라바나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무굴제국의 수도였다.

 

오랜 시간 버스에 시달리면서 본 것들.

-인간과 소, 돼지, 염소, 개가 함께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소똥에 짚을 섞어 호떡처럼 빚은 것을 벽에 붙여 놓고 말렸다가 땔감으로 쓴다.

-대낮에도 철로변에 쪼그리고 앉아 배설하는 아이들, 남자들.

-눈이 마주치면 웃거나 손을 흔들어 주는 친절. 그러나 거지는 눈이 마주치는 순간, 끝까지 따라왔다.

-인간이나 동물에서 장애를 가진 모습이 흔하고 동물의 사체가 길가에 방치되어 있다.

-낡디낡은 구두 밑바닥을 정성껏 기워주고 1루피(우리 돈으로 약 27원) 받는 신발수선공.

-‘빤’이라는 것을 씹은 남자들이 뱉어내는 시뻘건 침.

 

아그라 남서 37km 지점의 '파테푸르시크리' 관광.

대를 이을 아들을 원했던 악바르 대제는 아들, 자항기르를 낳은 후 성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1574년 백성을 이끌고 타르사막을 지나

데칸고원을 넘어서 새로운 수도로 이전했지만 물 부족으로 14년 뒤에 다시 환도한다.

그 뒤 아들 자항기르는 아버지 악바르를 독살한 혐의를 받으며 왕위에 올랐다.

힌두와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섞인 아름다운 건물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을씨년스럽다.

 

저녁 5시 20분 아그라의 '붉은 성' 도착, 아질징그문으로 들어갔다. 

붉은 사암과 흰 대리석으로 포인트를 둔 건물은 안팎에 새긴 정교한 조각 장식이 아름답다. 

샤 자한의 유폐지였던 이곳의 상당 부분이 군사 주둔 지역으로 공개된 곳은 일부분.

6시의 폐관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를 들으며 쫓기듯 돌아 다녔다.

타지마할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이라는 '팔각탑'에서도 짙은 안개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이 성은 주위의 해자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침식 위험이 있다고 한다.

 

 

전통 복장의 현지인들도 많았다.  

 

 

타지마할은 월요일, 오늘은 휴관이어서 관람을 내일로 미룬다.

 

도시 간 이동 거리가 멀어서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내일도 카주라호에 가기 위해 오랜 시간을 차에서 보내야 하는데 타지마할 관광 등의 미뤄진 일정 때문에

새벽부터 움직여야 한다.

제대로 보고 다음 목적지로 가자고 가이드에게 일정 변경을 요구했으나 기차 예약 시간 때문에 안 된단다.

 

 

2001년 1월 2일 (화요일) 제8일, 아그라  카주라호

 

인도 여행의 하이라이트, 세계 7대 불가사이의 하나인 아름다운 건축물, '타지마할'을 안개 속에서 ‘만져만’ 보았다.

걱정했던 대로 새벽 6시 30분의 어둠과 짙은 안개 속에서는 건물 윤곽도 흐릿.

생전의 뭄타즈마할은 수줍음이 많아서 타인에게 자신을 잘 내보이지 않았다며 그 탓이라고

현지 가이드, 변명을 늘어 놓았다.

 

 

샤 자한 왕과 왕비의 화려한 관이 중앙에 놓여 있지만 진짜 관은 지하에 따로 있단다.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내부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빗물과 새똥에 젖어 더러워진 발로 부지런히 돌아 다녔지만 여기에서는 야무나 강도, 붉은 성도 안 보였다.

카시미르 분리주의자들의 폭파위협 때문이라며 몸수색에 소지품 검사 몇 차례.

 

타지마할은 무굴 제왕 샤 자한이 왕비인 뭄타즈마할의 죽음을 애도하여 

할아버지 악바르 황제의 재물을 퍼 부으면서 22년의 공사 끝에 완성한 무덤으로 무굴 제국 최고의 건축물이었다. 

아들 아우랑제브의 반란 빌미가 될 정도의 사치를 다하여 지은 건물은 무슬림 세력이 약화된 지금은

엉뚱하게도 힌두인들이 관리하고 돈을 번다.

유네스코에서는 이 건물의 보존을 위하여 안식년을 권유했지만 주변 장사꾼의 반대로 집행할 수 없었단다.

엽서로 대신한 타지마할!

악바르 - 자항기르 - 샤 자한 - 아울랑제브로 이어지는 이슬람 제국, 무굴 제국은 피의 역사였다.  

 

델리의 붉은 성과 자마마스지드도 샤 자한 시대의 건물.

아쉬움을 두고 서둘러 아그라 역에 도착했지만 안개 탓에 열차 도착이 지연되면서 계속 대기 상태.

역 구내 안에서 4시간을 보내고 12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카주라호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들른 오차 古城은 주변의 산과 나무, 강 풍경이

아그라의 혼잡과 비교되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낡은 건물은 음산하기만 하다.

 

거리의 매연과 먼지, 인도인들의 찌든 일상과 남루한 옷차림.

관광지의 그악스런 떼거지와 장삿꾼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무너지고 있는 유적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 유채 밭, 사람들의 친절과 미소는 그런 아쉬움을 상쇄시킨다.

 

몇 개 안되는 인도말이 그들과 우리를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 나마스테

미안합니다 - 마프키지에 / please - 한 지

좋다 - 아차. / 아니오 - 나힝

오케이 - 티케. /  비싸다 - 멩가

no, thank you - 내히 단네밧 / 감사합니다 - 단네밧

모릅니다 - 파타 나힝 / 맛있다 - 아차 가나

 

 

001년 1월 3일 (수요일) 제9일, 카주라호  알라하바드

 

카주라호는 ‘야자수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

오지에 있어서 이 힌두 사원은 무슬림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1000년 전 세워진 큰 규모의 서쪽 사원에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조각 작품이 많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칸데리야 바하레브 사원(에로틱 사원)의 내, 외부 벽에는 

형태의 섬세한 조각 872개가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그 옛날 인도인들은 남녀가 하나 되는 성행위를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단다.

한편으로는 풍요와 다산의 의미도 있고.

간디가 ‘다 부숴버리고 싶다’고 했다던 노골적인 이 부조들은 전체의 10% 정도.

동쪽 사원군에는 여러 종교의 사원이 공존한다.

짓궂은 언행으로 교합상 열쇠고리를 파는 아이들이 많았다.

 

 

 

점심을 먹고 12시 알라하바드로 출발, 밤 10시 도착.

좁고 낡은 버스 안에서 포장이 엉망인 길을 10시간 동안 달렸다.

그런데도 주의 경계를 넘을 때마다 사람 수에 따라 또는 의자 수만큼 통행료를 받는다.

작은 시골 마을의 휴게소에서 파는 짜파티는 맛있었다.

금방 화덕(탄두리)에서 구워 낸 것이 10루피(약 270원)에 6장.

 

하늘에서 신들끼리 싸우는 와중에 물단지의 생명수가 네 방울, 인도에 떨어졌고 그러면서 그곳은 성지가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알라하바드'.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 天界의 강인 사라와티 강, 세 강이 만나는 이 상감은

인도인들의 강에 대한 신앙심과 더불어 이곳을 최고의 성지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여기서 목욕하면 모든 죄를 씻을 수가 있다는 믿음으로

12년 만에 돌아오는 꿈부멜라('신들의 축제')기간에는 수많은 인도인들이 찾아오는 순례지가 되었다.

이생을 참회하고 내세를 기원하는 소박한 힌두인들의 신앙심이 대단하다.

 

알라하바드 성은 군인 주둔지여서 공개가 안 된다.

근처에 아난드 바반이라는 네루 생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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