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10일부터 17일까지 8일간 친구와 둘이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중국 실크로드에 다녀온 여행일기입니다.
필름 시절의 여행으로
원판은 없어지고 인화해 놓은 사진도 변색되어 자료로 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에
아예 여행일기를 올려 놓았습니다.
'실크로드(絲綢之路)'는
기원전, 2~3세기경에 시작된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무역로이자 세계사가 전개되는 한 중심.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헬레니즘, 인더스, 황하의 여러 문명이 섞이고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불교 등의 종교에 동양과 서양의 문화, 문물이 교차되는 길목이었고
그 길목에는 여러 오아시스 도시가 세워져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은 중국 서안(그 당시의 장안).
로마까지는 직선거리로 9000km, 실제 거리는 12000km로
오전에 20km, 오후에 20km의 낙타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가는 시간 만으로도 400일, 거의 2,3년의 거리였다.
이 길은 크게 천산 산맥의 북쪽 기슭, 초원의 스텝 지역을 횡단하는 천산 북로와
천산 산맥의 남쪽,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 오아시스를 동서로 연결하는 천산 남로.
거기에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쿤륜 산맥의 북쪽 오아시스를 이어 주는 서역 남로(사막 공로)와
홍해, 페르시아만, 인도,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의 화남지역에 이르는 남해로(해상 실크 로드)가 있고
여기에 따른 수많은 지류가 있었다.
천산 북로는 하미와 투루판을 거쳐 돈황에서 천산 남로와 서역 남로가 갈라진다.
천산의 물이 흘러 내려 이루어진 오아시스 도시들은 실크 로드 대상에게 중요한 거점이 되었고
이들의 흥망은 천산에서 내려오는 물의 흐름에 있었다.
서안에서 돈황까지는 1500km로 한반도의 길이 1000km보다도 길다.
거기에서 다시 우루무치까지, 같은 거리를 다녀왔다.
바람의 고장!
뜨거운 모래 사막에서 실크로드의 유적은 희미하고 남은 것은 바람 뿐이었다.
황량한 사막의 그 거친 모래 바람은 오래 오래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2001년 8월10일 금요일 제1일, 출국, 서안
중국 서북 항공으로 비행 2시간 45분, 서안의 함양 공항 도착 오후 5시.
한국과 1시간의 시차가 있다.
기내 방송은 중국어, 한국어 두 가지로 나오는데 중국인 승무원들은 표정이 없고 불친절.
서비스라는 개념을 모르는 듯했다.
기내에서 마신, 陴酒로 음차한 중국 맥주는 싱거웠고.
공항에서 서안 시내까지 다시 公路(고속 도로)로 1시간.
연변 출신의 현지 가이드가 마중 나왔다.
서안으로 가는 길은 끝없는 평야.
길가에 사과밭이 늘어서 있고 다모작이 가능한 옥수수는 새싹에서 수확기까지 모든 시기를 볼 수 있었다.
거리의 간판에 간체가 많이 쓰여 있다.
당나라 때 장안으로 불렸던 이 서안은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성곽도시이고
실크 로드의 거점이 되었던 도시이며
당시 인구 백만 명이 거주하던 최초의 국제도시답게
6차선의 양쪽에는 자전거 도로가 각각 2차선, 그 옆에 인도를 만든 바둑판같은 계획도시.
길이 13.74km, 높이 12m인 명 시대의 성벽은 지금도 완벽하게 남아 있다.
처음 찾아간 높이 76m의 사각형 '대안탑'은
'삼장법사'가 16년의 긴 여행 끝에 인도에서 가져온 경문을 보관해 놓은 절, '자은사' 안에 있었다.
'반야당' 안, 검은 벽면에는 삼장법사의 그 긴 여정을 표현한 부조가 보인다.
절 경내의 탑에 올라가 서안 시내를 보려던 계획은 가이드가 경내 관람을 15분으로 제한하는 탓에
시간에 쫓겨서 못 보았다.
따로 돈을 받는다.
동방대반점에서 저녁 먹고 밤거리 산책.
唐城 호텔은 낡고 허술하다.
2001년 8월 11일 토요일 제2일, 서안 → 우루무치
32도의 더운 날씨.
오전에는 서안에서 40km 떨어져 있는 화청지, 병마총인 '秦陵地宮(진시황릉)'을 둘러 보고
오후에 우루무치에 왔다.
'華淸池'는 아름다운 연못으로
당나라 현종이 지은 '화청궁' 안에 있다.
아들의 후궁이었던 양귀비와 당 현종의 사랑은 안록산의 반란으로 끝났다.
이곳은 장학량이 국공 합작을 위해 장개석을 감금한 12.12사건으로도 유명한 곳.
진시황제의 무덤인 지하궁전, 秦陵地宮은 27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하나의 거대한 산이다.
세계 최대의 무덤으로 36년간 70여만 명을 동원하여 조성했다고 한다.
호사의 극치!
내부 가장자리에 축조 과정을 부조로 재현해 놓았다.
'짐을 시황으로 영원히 번창하리라'했던 진 왕조는 그러나 단명했고
기원전 221년, 25세에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던 그는 38세에 죽었다.
그렇지만 진시황제는 중국 사람들에게 대단한 영웅.
병마용과 만리장성, 아방궁 축조에 도량형, 화폐, 언어를 통일시킨 왕으로 그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秦陵地宮에서 1.5km에 있는 '秦俑博物館'에는 묘 안에서 발굴한 근위 사단 병사와 군마, 병기를 전시해 놓았다.
모두 실물 크기의 도기로 만들어 시황제의 주검과 함께 묻었던 것이 1974년에 발견된 것.
20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 위용은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받고 있다.
1호갱은 길이 230m, 폭이 62m로 아주 크다.
현재 발굴 구역은 전체의 1/10.
박물관 입구에는 밭일을 하다가 이 무덤을 발견했다는 '양치발'이라는 노인이 관련 사진첩을 팔고 있었다.
서안의 명물, '교자연'으로 점심.
600여 가지 색깔과 모양, 서로 다른 맛으로 유명한 교자이다.
알콜 램프로 손톱만 한 교자를 끓여 주는 것까지 모두 열 아홉 가지가 나온다.
먹기 아까울 만큼 작고 예쁜 만두!
서안, 돈황, 투루판, 우루무치의 일정이 역으로 변경되면서
오후 3시 30분 서북 항공 국내선 편을 이용, 우루무치로 출발.
비행기는 왼쪽에 천산 산맥을 두고 더러더러 오아시스 마을이 보이는 끝없는 사막 위를 날았다.
만년 설산, 천산 산맥이 북쪽은 대초원으로, 남쪽은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자연을 갈라놓았다.
3시간 비행 끝에 6시 35분 도착,
공항에 내리니 마치 모닥불 옆에 있는 듯 아주 더운 날씨.
숙박은 '環球大酒店(환구호텔, 영어식으로는 Hotel world plaza)'.
저녁을 먹은 '익룡대주점'은 새로 지은 듯 깨끗했다.
중국은 호텔이름에 주점, 賓館, 飯店 등의 명칭을 써서 음식점인듯 헷갈리게 한다.
밤의 시가지가 보고 싶었는데 현지 가이드, 밤중에 외국인이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다며 말렸다.
통제가 지나치다.
우루무치는 신강 위구르 자치구(중국 대륙의 1/6, 우리나라의 8배)의 중심도시로
석유가 채굴되면서 그 위상이 달라졌다.
'죽음의 사막'이 '검은 황금의 땅'으로 바뀐 것.
천산 산맥 북쪽의 중심 도시는 우루무치, 남쪽의 중심은 투루판.
현지 가이드 서연은 조선족으로 사범대를 졸업한 27살 여자,
흑룡강 주변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옥 장사를 하는 어머니와 동생까지 온 식구가 여기로 이사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도시는 원주민인 30%의 위구르인에 이주민인 70%의 한족으로 인구 구성이 역전되었다.
중국 정부의 계획적인 이주정책이 원주민을 소수민족으로 만들어 놓은 것.
공용어는 중국어와 위구르어로 시내 간판에는 두 개의 언어가 병기되어 있다.
이곳은 티벳의 장족과 더불어 독립을 요구하는 위구르인의 반발이 강해서 중국 정부의 견제도 심한 듯하다.
두 민족은 그들의 식문화때문에 칼을 합법적으로 소지할 수 있어서 위험하니
외국인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이 지역은 중국 내 소수 민족 56개 가운데
47개의 민족 - 위구르인, 코작, 회족, 몽골족, 만주족, 티벳족, 장족 등이 모여 사는 '소수 민족의 박물관'이란다.
이 도시의 주산업은 정유, 무역.
해바라기, 마늘, 포도를 주로 재배한다.
실크로드를 통해 낙타, 당나귀, 호도, 석류, 고추, 수박, 당근, 클로버, 양잠, 참깨, 오이, 융단, 벼, 면화, 감귤, 모직물,
유리, 옥, 제지법, 금속, 도자기, 폴로 경기 들이 오고 갔다.
2001년 8월12일 일요일 제3일, 우루무치
중국어 표기 '烏魯木齊'는 우루무치의 차음으로 ‘광활한 목초지’라는 뜻.
2시간 40분 걸려 구절양장의 해발 1950m 만년설, '천산'의 '天池'에 도착했다.
잘 자란 백양나무 숲길은 이곳이 오아시스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이다.
추울 것 같아서 쉐터를 준비했지만 지금은 여행하기 좋은 계절.
그러나 10월부터는 폭설이 쌓이면서 관광이 금지된다고 했다.
호숫가에는 '서왕모의 비녀'라는 전설 담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뒤로 멀리 절이 보인다.
호수에서 20여 분 배 타고 유람.
우루무치에 돌아 와서 점심 식사 후 ‘고산 목장’으로 이동, 카자흐(하지크, 코작)의 관광촌에 왔다.
한 파오에 들어가 우유차와 기름에 튀긴 과자를 대접 받은 후
코작 아줌마와 동승, 말을 타고 40여 분 평원을 돌아다녔다.
각 20위엔, 우리 돈으로는 3200원 정도.
화려하고 대담한 색깔의 카펫과 벽걸이가 걸려있는 파오 내부에는 추위에 대비한 난로가 있다.
먹을 것을 담아 놓은 보자기를 풀면 식사 준비 끝, 다시 싸기만 하면 정리가 되니
여자들의 부엌 일이 아주 간단해 보인다.
파오 밖의 화덕 옆에는 잡은 양을 손질하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4살이 되면 자신의 말을 받는다는 이들에게 말 타는 실력은 필수이며 사람 대접을 받는 일이라고.
눈이 내리는 10월이 되면 유목 생활을 끝내고 산 밑의 집으로 내려갔다가
새 봄 5월에 다시 산으로 돌아오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란다.
2001년 8월 13일 월요일 제4일, 우루무치 → 투루판
우루무치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홍산공원'과 '인민광장'을 돌았다.
인민광장에는 중국의 '위구르 접수를 기념하는 해방탑'이 서 있다.
우루무치는 연간 강우량이 168mm, 투루판은 더 적어서 16mm. 수분 증발량이 연 3500mm으로
아주 건조한 사막지역.
10시 30분 우루무치 출발, 투루판(吐魯番) 도착. 3시간 걸렸다.
도중에 풍력 발전 시설이 많이 서 있다.
그러나 우루무치는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만들어 쓰고 있고 정작 여기서 얻는 전기는 지방으로 보낸단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위구르인의 민요 테잎을 15위안에 구입, 투어 버스 안에서 들어 보려다가
시끄럽다는 다른 일행에게 핀잔을 들었다.
투루판 역시 덥다.
현재 기온 45도에 지표면은 60도, 밤의 기온은 35도인 154m의 해저로 세계에서 사해 다음으로 낮은 지대.
전 인구 54만 명 중에 위구르인이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면서 이목구비 또렷한 서역 미인들이 많았다.
주 산업은 포도 농사로 길가의 민가에도 포도 건조 시설이 있다.
뜨거운 햇빛을 받은 청포도는 아주 달았다.
호텔 옆, 재래시장에서는 각종 향신료, 양고기며 야채, 과일을 좌판에 놓고 팔았다.
거리의 간판에 '고창'이라는 말이 많이 보이면서 고창국의 故地라는 것을 알게 한다.
오후에 이슬람 사원, '소공탑'과 지하 수로이며 우물인 '카얼정(카레즈)'을 둘러보고 위구르인의 민속춤 구경.
카얼정(坎兒井)은 이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을 유지해주는 관개시설로
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관리하는 땅속의 이런 시설은 300여 개.
그 수로의 전체 길이는 약 5000km, 4000km인 만리장성보다 더 길다했다.
호텔 로비에서 진행된 민속춤은 젊은 남녀의 삼각관계, 지역의 풍속을 표현한 것으로 밝고 화사하다.
그러나 공연 30분은 너무 짧았다.
아쉬운 마음에 이곳의 대표적인 작곡가, '왕락빈'의 테잎 구입. 1달러.
위구르인의 노래를 중국어로 부른 것이다.
소공탑은 높이 솟은 미나렛과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문양의 타일 모자이크에 돔 형식의 지붕이 아름다웠다.
탑 위에서는 멀리 포도밭과 탁 트인 사막 풍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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