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에서 나와 미황사에 왔습니다.
오늘은 '달마고도'를 걷는 날입니다.
달마고도는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산세와 다도해의 절경이 어우러진 달마산(489m)에 조성된 17.74km의 둘레길.
'땅끝의 이 아름다운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하여 중장비를 쓰지 않고 주변의 돌을 채취,
석축을 쌓고 곡괭이, 삽과 호미 등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만들어냈다'는 명품길입니다.
1코스(2.7km) 출가길로 미황사 ~ 큰 바람재,
2코스(4.37km) 수행길, 큰 바람재 ~ 노지랑골,
3코스(5.63km) 고행길, 노지랑골 ~ 몰고리재,
4코스(5.03km) 해탈길, 몰고리재 ~ 인길 ~ 미황사로 총 6~8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의 길이지요.
아침 10시, 먼저 달마산 미황사 일주문으로 들어가
거기서 '완주 인증 스탬프북'을 받아 들고
왼쪽의 길로 들어서서 걷기 시작.
폭신폭신, 쌓인 낙엽을 밟으며
500m 거리마다 지나온 길과 남은 길을 알려주는 표지석을 따라 걷습니다.
왼쪽으로 남서해의 섬들을 보면서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을 지났습니다.
489m의 불썬봉에서 굴러 내린 암석 지대를 넘어가면
연육교로 연결된 완도가 보입니다.
달마산의 준봉, 관음봉과 불썽봉, 떡봉과 도솔봉이 7km의 거리로 이어지면서
골짜기를 따라 굴러 내린 바위와 돌의 너덜길이 자주 나타났지만
그 돌 하나하나 딛고 나갈 수 있게 평평하게 배치해 놓아서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중장비를 쓰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이 길을 정비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고마웠지요.
때는 늦가을, 잎을 떨군 나무들이 앙상한 숲 속 길이지만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다도해를 옆에 둔 기분 좋은 걷기입니다.
1코스의 관음암터, 2코스의 문수암터와 노지랑골, 그리고 3코스의 도시랑골까지 9km 정도 걸으면서
모두 4개의 스탬프를 찍었습니다.
이제 4코스의 몰고리재와 도솔암 밑의 너덜 지역,
미황사 종무소까지 모두 3개의 스탬프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몰고리재를 지나면서 도솔암 갈림길이 나타났지만
400m 거리의 위쪽에 있는 그 암자까지 왕복하기에는
6시간 30분 만에 주차장까지 내려가 버스를 타야 하는 집합 시간이 너무나 빠듯해서 포기했습니다.
어제 일지암에 들르면서 대흥사를 돌아볼 시간을 놓쳤기 때문에
오늘은 도솔암을 포기하고 미황사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거든요.
도솔봉 정상 바위틈에 석축을 쌓아 만든 도솔암의 다도해 풍경은 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답다기에 기대했었지요.
도솔암까지 중계소로 가는 임도가 연결되어 있어 자동차도 드나들 수 있다기에
다음 기회로 마음을 돌렸습니다.
이제 길은 풍경이 바뀌어 짙은 녹색의 동백나무와
편백나무 숲이 이어집니다.
남은 길은 전체 17.7km에서 겨우 3.5km.
이 구간에서는 바다 건너 멀리 진도가 보입니다.
미황사가 얼마 남지 않은 길에서
이정표를 보고 부도전에 들렀습니다.
달마산의 뾰족뾰족한 바위 아래, 아직 단풍이 남아 있는 작은 절, 부도암 옆의 이 부도들은
큰 스님 열반 후 그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탑으로
현재 32기의 부도가 있습니다.
부도탑의 기단에는 특이하게도 다른 절의 부도에는 없는 공작새와
원숭이,
게와 같은 동물들이 새겨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조각을 근거로 우리나라 불교가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왔다는 남방 전래설을 말하기도 합니다.
드디어 미황사 도착.
4코스의 몰고리재와 너덜, 마지막의 미황사 종무소에서 한 개씩 3개를 더해서
모두 7개의 스탬프를 받고 종무소에 제출하니
며칠 후에 집으로 '달마고도 완주증'과 기념 메달을 보내준다 했네요.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17.7km의 긴 달마산 둘레길을 끝까지 걸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즐거운 날입니다.
미황사 대웅전 뒤로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기암과 괴봉'의 달마산이 보입니다.
남해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풍광이 수려하고 힘찬 기상과 장엄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장면입니다.
달마산은 '경전(달마, dharma)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
달마대사가 중국에서 선을 전한 뒤 해동인 우리나라의 이 달마산에 머물렀다 하여
달마산으로 부른다는 설도 있습니다.
대웅보전의 주춧돌에도 부도전에서 보았던 거북이와
게 조각이 보입니다.
추사의 글씨일까요?
대단한 필력의 글씨체, '만세루'를 지나
달마대사와
'공룡 능선'을 되돌아보며
천왕문으로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산의 네 개 봉우리 둘레길을 6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조릿대와 활엽수, 동백과 편백, 삼나무가 무성한 산길, 오밀조밀 작은 섬들이 보이는 다도해 풍경,
낙엽이 쌓인 오솔길과 잘 다듬어진 돌길을 걸으면서 흐뭇한 시간을 보냈지요.
사계절 어느 때 걷더라도 실망스럽지 않을, 멋진 풍경 속의 트레일이었네요.
근처 식당에서 '해남 산채 정식'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어둠이 짙어지는 달마산을 보면서 나주역으로 출발, 다시 KTX를 타고 2시간 만에 용산역 도착.
짧은 일정이었지만 알찬 여행이었습니다.
PS. 2주 후 해남에서 반가운 선물이 도착했네요.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난 후에 받은 증명서만큼이나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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