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도바에서 그라나다까지는 버스로 2시간 30분 거리입니다.
오전 9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하루 7회 운행에 1인 요금은 11.45유로.
길가, 높고 낮은 구릉에 올리브 밭이 이어지면서
수확철을 맞아 나무 밑에 검은 천을 깔고 익은 열매를 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버스 터미널에서 3번 버스를 타고 그랑비아 1에서 하차, 가까운 여행사에서
내일 아침 11시 30분에 입장하는 알람브라 궁전 티켓 예매하였습니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인원만을 입장시키기 때문에 미리 표를 사야 합니다.
입장료는 1인 10유로에 여행사 수수료 1유로.
거기서 조금 걸어 올라와
누에바 광장 근처 하얀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 Pension Viena에 숙소를 정하고
주인여자에게 싸끄로몬떼의 알바이신에서 진행하는 플라멩고 야경 투어 예약을 부탁한 후
남은 시간에 시내 구경에 나섰습니다.
빕람블라 광장 근처,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아랍식 가게들과
알카이세리아를 돌아 도착한 그라나다 대성당의
지하에는 까스띠야의 여왕 이사벨과 아라곤의 왕 뻬르난도에 그 일가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었지요.
그 당시 막강했던 이 두 왕국의 군주가 결혼하면서 스페인은 사실상 통일국가를 이루었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그라나다를 공략, 이슬람 세력에 빼앗겼던 국토를 온전히 탈환(레콩키스타)하여
이 나라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번영의 시기를 만들었습니다.
밤에는 9시 40분에 픽업 나온 가이드를 따라 산비탈의 미로 같은 알바이신(El Abaicin) 골목길을 산책하다가
언덕에 있는 '산 니콜라스 광장'에서 조명 속에 빛나는 알함브라 성을 조망한 다음
집시들이 모여살던 사크로몬테의 타블라오 'Casa de La Memorias',
플라멩고의 전설인 Mariquilla의 사진과 구리 냄비며 국자들이 걸려 있는,
동굴처럼 좁고 긴 공연장에 왔습니다.
양쪽에 관람석이 있는 통로에서
밤 11시부터 여자 무용수 세 명과 남녀 가수 두 명에 기타리스트 한 명이 연주와 노래, 춤으로 만들어낸
열정적인 무대였습니다.
인도에서 시작되어 유럽의 서쪽 끝까지 이어진 집시들의 춤은 이제 스페인을 대표하는 플라멩고가 되었지요.
카리스마 넘치는 절제된 동작이 매력적인 플라멩고는
세비야의 세련된 공연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오랫동안 내 마음에 각인되었네요.
감동적인 밤, 새벽 1시의 그라나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현존하는 유럽 최고의 이슬람 건축이라는 '알함브라 궁전(붉은 성)'에 왔습니다.
8세기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던 800년의 이슬람 세력, 그 황금시대에 건설된 이 아름다운 건물에는
'나사리 궁(까사스 레알레스)'과 여름 별궁인 '헤네랄리뻬', 13세기의 요새인 '알카사바'가 있고
16세기에 기독교인들이 만든 '카를로스 5세 궁전'도 있습니다.
겉에서 볼 때는 평범해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놀랄 만큼 화려하고 섬세하면서도 품위 있는 멋진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나사리 궁전'은
왕의 집무실인 '멕쑤아르 궁'과 사신을 맞이하던 '코마레스 궁',
왕의 사적인 공간인 '사자의 궁'으로 나뉩니다.
나사리 궁에서 제일 먼저 지어진 멕쑤아르 궁의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기도실과
'대사의 방'인 코마레스 궁 앞의 분수가 있는 '빠띠오 데 아라야네스'에
섬세한 조각과 정교한 타일 배치의 안 뜰이 아름다웠고
무하마드 5세 때 만들어진 '빠띠오 데 로스 레오네스(사자 궁의 안뜰)'의
124개 대리석 기둥과 아치도 아주 화려했습니다.
건물마다 빈틈 없이 하나하나 나무를 조각하고 색칠한 타일을 맞춰 장식한
이슬람 장인들의 예술적인 감각과 열정, 기술은 경탄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들은 수학과 기하학의 원리를 활용하여 궁전의 내부에 이렇듯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새겼답니다.
12마리 사자가 받치고 있는 중앙의 이 분수대에는 피비린내 풍기는, 전설 같은
궁정의 암투가 있었답니다.
천장의 장식이 특별했던 '아벤쎄라헤스가의 방'에
19세기 이 궁에 머물면서 '알람브라의 전설'을 썼던 미국의 작가 위싱턴 어빙에게 헌정된 방도 있습니다.
그의 기행문이 발표되면서 이 궁전은 세상에 알려졌다지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한 타레가에게도 그 공을 돌려야 할 듯했네요.
왕궁은 30분마다 입장객 200명으로 제한했지만 나갈 때는 티켓 검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되돌아가
다시 천천히 돌았습니다.
제한된 시간으로는 충분히 감상할 수가 없었거든요
햇빛이 약한 이런 겨울철에는 내부가 어두워서
빈틈없이 새겨진 그 현란한 조각과 환상적인 색채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운 모습과 사라져 간 그 시대 삶의 덧없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원이 아름다운 여름 별궁 '헤네랄 리뻬'
이슬람 건축의 특징이 모두 담긴 아세키아 중정(Patio de la Acequia)의 담으로 둘러싸인 안뜰,
양쪽으로 탁 트인 긴 회랑과
분수와 나무가 있는 산책길이 좋습니다.
대탐험을 앞두고 '이사벨 여왕과 뻬르난도 왕을 알현하는 콜럼버스'의 동상도 보입니다.
이 궁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건축물이 아닌 것은 카를로스 5세 궁전으로
이 땅에서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낸 후 에스파냐 왕국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렇듯 거대한 궁전을 세웠답니다.
섬세한 아라베스크의 이슬람 궁전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건물이었네요.
카를로스 궁전을 지나면 로마 시대의 성채를 개조한 이슬람의 요새,
알카사바(Alcazaba)의 벨라의 탑(Torre de la Vela)에 오르면
멀리 시에라 네바다의 봉우리와
맞은편 언덕의 집시들이 사는 동네, 알바이신이 보입니다.
지금도 그 알바이신의 산 니콜라스 교회 광장에서 이쪽 알람브라 궁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네요.
다음날, 우리도 다시 알바이신의 산 니콜라스 교회 광장에 와서 낮의 알함브라를 바라보았니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독특한 선율, 타레가의 그 트레몰로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날이었지요.
1492년, 10년 전쟁 끝에 그라다나 나스리드 왕국의 통치자 보압딜을 마지막으로
이슬람 세력은 이 땅에서 완전히 물러났습니다.
퇴각하던 보압딜은 이 아름다운 궁전에 대한 미련 때문에 눈물을 쏟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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