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남인도, 스리랑카

스리랑카의 누와라 엘리야, 스리 파다, 하푸탈레

좋은 아침 2011. 2. 11. 17:00

 

남인도 첸나이에서 항공편으로 스리랑카에 도착, 캔디에서 불교유적을 찾는 일행들과 헤어져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누와라엘리아에 왔습니다.

콜롬보 공항에서 환전하니 1유로에 14.5 스리랑카 루피. 

1루피는 우리 돈으로 약 10원입니다.

 

 

고원의 서늘한 날씨를 기대했지만

12월이면 끝난다는 우기가 1월이 되어도 여전하여  누와라엘리야에서는 계속 비가 왔습니다.

그러나 남인도와 비교되는 짙푸른 숲과 울창한 가로수들, 깨끗한 거리에 사람들의 표정도 밝습니다.

이곳은 스리랑카 중부의 고원지대로 차 재배의 중심지입니다.  

 

 

첫날의 내 숙소는 숲에 둘러싸인 외곽에 있었지요.

 

 

다음날 아침 일찍, 'Sri Pada'에 가기 위하여 이동.

누와라엘리아에서  Hatton까지 2시간, 거기에서 Maskeliya는 1시간, 다시 1시간 걸려 Dal Housie.

4시간 동안 완행 버스 세 번의 환승 끝에 비포장길을 달려 도착했습니다.

직접 가는 버스는 없습니다.

주요 도시를 잇는 길들은 포장이 잘 된 직선도로인데

산골마을 지선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짧은 길인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달 하우제에 도착 직전에는 버스 바퀴가 펑크 난 탓에 짐을 끌고 한동안 걸어야 했네요. 

 

'Sri Pada(2230m)'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Adam's Peak라고도 불리는 세 종교(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입니다. 

1월부터 4월까지의 순례기간 동안 많은 순례자들이 5200개의 계단을 걸어

저 꼭대기에 있는 사원에 찾아갑니다.

 

 

낮에는 그 순례길의 시작,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

 

 

영어와 힌두어로 쓰인 안내문을 보고

 

 

 

 

중간중간 걸려 있는 '부처의 발자국'을 구경하면서  

 

 

답사.

 

 

 

밤 12시에 다른 순례자들처럼 그 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여 새벽 5시, 해발 2243m의 정상에 도착, 

아침 일출과 부처님에게 바치는 공양 의식을 보고 내려 왔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계단 양쪽에는 가로등이 환하게 켜 있고 중간중간에 짜이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있어서 불편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정상에 도착한 현지인들은

얇은 옷에 맨발로 새벽의 바람과 추위에 떨면서도 경건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해가 뜨면서 보이는

 

 

사원 안, 큰 바위 안에 있다는 부처의 발바닥 흔적을 찾았지만 그 안은 너무나 어두워서 구경도 못했네요. 

줄지어 들어오는 현지인들 때문에 오래 있을 수도 없었지요.

 

 

이곳은 스리랑카인들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다녀가는 최고의 성지랍니다. 

늙은 아버지를 업고 그 긴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젊은이에 

걷기도 힘든 그 오랜 시간 동안 들고 온 공양물을 불전에 바치는 모습에서

인간에게 미치는 종교의 힘을 생각합니다. 

나는 자신이 믿는 대로 각각 부처와 시바신, 마호멧의 발자국이라 믿고 

거의 고행과도 같은 과업을 이루려는 이 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보고 싶었네요.

 

 

그들처럼 다녀감을 알리는 종 한 번 치고 돌아서는 하산길,

길가의 가게에서 따뜻한 차이 한 잔 마시고 한밤 내내 5시간 동안 올랐던 길을

이제는 내려갑니다.  

 

 

 

다시 누와라엘리야로 돌아와 열차를 타고 

 

 

 

하프탈레로 가는 길 양쪽은 온통 차밭이었습니다. 

싱그러운 초록빛 세상 속으로 열차는 천천히 들어갔습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Lipton's Seat'로 가기 위하여  

하푸탈레에서 담바테네 공장까지 11km, 미니버스를 탔습니다. 요금은 20루피.

'Lipton's Seat'에 가기 전, 차 공장을 들여다보는 시간,

 

 

 

 

안내 그림에서는 동양의 차들과 함께 '실론 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독립 후 스리랑카로 국호를 바꿨지만 영국 식민시대의 옛 이름은 실론이었거든요.   

 

 

차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네요.

영국의 식민 시절, 차 농장 노동자로 남인도의 이들 타밀 족을 많이 데려 왔지만 독립 후에는

70%를 차지하는 원주민 싱할리와 20%의 타밀 이주민 사이에 여러 문제가 누적되면서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답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행자들에게 친절했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보통의 인도인이었습니다.

 

 

 

 

차 공장 앞에서 툭툭이를 대절, 7km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깊은 산속에 들어왔습니다. 

도착 무렵부터는 길이 엉망이어서 아예 툭툭이에서 하차, 한동안 걸어야 했지요.

 

 

식민 시대에 넓은 열대 밀림을 개간하여 자신의 차 왕국을 만들어냈던 영국인 맆톤이 

자주 앉아 있었다는  'Lipton's Seat'는 사진 오른쪽의 정자 안에 있습니다. 

입장료는 50루피.

 

 

 

전망대에서

 

 

 

이곳을 관리하는 한 노인이 끓여준 따뜻한 블랙티를 마시며 이 고원의 추위를 녹였습니다.

찾는 사람이 드문 듯, 오늘은 나까지 3명의 외국인이 찾아왔다고 했지요.

 

 

구름이 발아래 보이는 고원입니다.

 

 

 

산을 개간하여 만든 몇 개의 언덕은 모두 초록의 차밭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