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베트남, 캄보디아

캄보디아 2 -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유적

좋은 아침 2007. 4. 20. 22:30

프놈펜 숙소에서 미니버스로 30분 이동,

수상 가옥이 늘어선 '톤레샵 호수' 선착장에서 배를 탔습니다. 1인 25달러입니다. 

동남아에서 가장 큰 이 민물 호수에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상가옥에 살면서

수위에 따라 집을 끌고 이사 다닌답니다. 

우기와 건기의 수위 차이는 1~9m, 우기에는 수량이 6배 정도 늘어난다니 '톤레샵'이라는 이름 그대로 '거대한 호수'입니다. 

수로를 지나 넓은 호수를 달리는 5시간 40분의 한가로운 뱃놀이 끝에 

 

 

도착한 씨엠립에서 시내에서 자가용 택시기사, 타이를 만나 

3일간의 앙코르 관광을 포함, 씨엠립에 있는 4일 동안 편리한 이동을 위하여 70달러에 그의 차를 대절하고 

 

 

앙코르 유적지 입구 매표소에서 

내일부터 시작할 3일권 입장료 40달러와 사진 1장을 제출, 코팅된 입장권을 받았지요.

사진이 없는 사람은 무료로 찍어 줍니다. 

그 입장권으로 오후의 앙코르 왓 입장을 부탁했더니 별 말없이 들여보내 주어서

우리는 모두 4일 간 앙코르 유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크메르 제국은 9~15세기의 고대왕국으로 전설 속의 도시로 

앙코르왓과 앙코르 톰이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앙코르 왓('신성한 도시'의 뜻)'은 연잎 가득한 해자로 둘러싸인, 생각보다 큰 규모의 힌두 양식 건물로 

힌두교의 신, 비슈누를 숭배한 수르야바르만 2세의 사원이면서  능묘이지요.

이 나라의 국기와 화폐에도 등장하는 캄보디아의 긍지로 12세기에 건설된

세계 최고의 종교 기념물이라했네요.

지금도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이 찾아와 발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 '고푸라(탑문)'를 지나면

 

 

1층의 동서남북 네 면, 800m의 긴 회랑에는 힌두 신화와 크메르 제국의 승전 장면을 새긴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부조가 있고,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간 2층의 외부 벽에는 

비슈누 신을 섬기는 천상의 무희, 1500명이 넘는 압사라를 다양한 모습으로 새긴 부조가 보입니다. 

 

 

 

그 당시에는 왕이나 고위 승려들만 출입할 수 있었던 3층 중앙 성소까지 돌다가

폐관 시간인 일몰이 되어서야 나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8시, '박쎄이 참끄롱'을 시작으로 

 

 

해자로 둘러싸인 '앙코르 톰('거대한 도시'의 뜻)'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인 남문의 다리 양 난간에는 각각 27개의 신,

 

 

왼쪽에는 선한 신이, 오른쪽으로는 악한 신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 앙코르 톰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인간 세계를 떠나 천상의 귀한 존재가 된다 했지요.

 

 

처음 만난 것은, '천 년의 미소', '앙코르의 미소'로 불리는 '바욘 사면상'입니다.

이는 관세음보살과 그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는 힌두 신앙에서 개종, 이 땅에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이 불교사원을 짓게 됩니다. 

 

 

 

그러나 바욘 둘레에 새겨진 조각에는 부처 외에도  비슈뉴 신에 각 민족의 정령들이 등장합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이렇게 인도차이나 반도의 수많은 종족과 그들의 종교를 포용하는 정치로

크메르 왕국의 전성기를 이루어냈답니다.

일본에서 5년씩 두 차례의 복원작업 끝에 54개의 탑을 모두 복원해 놓은 작품입니다.  

 

 

프랑스에서 복원 작업 중이라는 '바푸온'을 본 다음,

한낮의 더위를 피해 호텔로 돌아가서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나왔습니다. 

 

 

바푸온 옆, 왕실의 제단이자 사원이었던 '피마아나까스'를 보며

 

 

왕의 사열대인 길이, 400m의 '코끼리 테라스'를 거쳐서

 

 

'문둥이 왕 테라스'에 왔습니다. 

앙코르 톰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가 말년에 나병을 앓으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그 자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를 위하여 지은 사원, '쁘리야 칸'은

 

 

중앙으로 들어 갈수록 문의 높이가 낮아집니다. 

                   

 

이는 신성한 장소에서는 머리를 숙여 복종을 드러내야 한다는 의미였답니다.

 

 

 쁘리야 칸의 웅장한 열주.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을 새긴 사원, '니악 뽀얀('똬리를 튼 뱀'의 뜻)'을 지나

 

 

도착한 2일 차 일몰 장소인 '쁘레룹'은 힌두교의 시바신에게 헌정된 사원.

그의 거처인 메루 산을 형상화하여 뾰족한 모습으로 지었습니다. 

 

 

거기서 한 잔 술로 맞이한 

 

 

정글 속의 환상적인 일몰과  

 

 

다음날 새벽에 만난 앙코르 왓 배경의 감동적인 일출입니다. 

 

 

'크메르의 보석',  '반띠아이 쓰레이'는 앙코르 유적 중 가장 먼 곳에 있습니다. 

 

 

복원에 참가했던 프랑스 건축가들은 이곳을 '크메르 예술의 극치'라 했답니다. 

나무에 조각한 듯 붉은 사암에 새겨진 섬세한 부조가 놀랍습니다.

고대 인도의 서사시 내용을 담았답니다. 

 

 

 

이날은 유적 탐방을 일찍 끝내고 극장식 레스토랑, '꿀렌 2'에서 푸짐한 저녁을 먹은 후

이들의 민속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캄보디아인의 일상을 담은 춤에 이어 압살라 댄스가 나옵니다.

'천상의 무희'답게 느린 동작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춤이었지요.

 

4일째 아침은 서쪽 '승리의 문'을 지나 

 

 

해자로 둘러싸인 '톰 마논'의 뜰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일정 시작합니다. 

건너편에는 중국에서 복원 중이라는 '차우사이떼보다'가 있습니다.

인도까지 이 작업에 참가하고 있었네요.

 

 

 

피라미드 형태의' 따께오'를 지나

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이 되었던 '타프놈'은

 

 

                   

나무에서 떨어진 씨앗이 유적의 돌 틈에서 자라며 유적을 파괴했지만

400년의 긴 세월 동안 정글 속의 반잔 트리에 묻혀 그대로 한 몸이 되면서 

이제는 둘을 분리할 수 없는 공생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복원 불가 판정이 내려진 유일한 사원이 되었답니다. 

 

 

9세기에 수립, 15세기 후반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크메르 제국은 

이후 태국, 아유타야 왕국의 침략에 밀려 프놈펜으로 천도하게 됩니다. 

가뭄과 기근으로 여기 살던 사람들도 떠나면서 앙코르 유적은 한동안 밀림 속에 묻혀 있다가 

1850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크메르루주의 점령기가 지난 1992년이 되어서야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오후에는 '쁘라삿 끄라반', '반띠아이 끄데이'를 거쳐 앙코르 유적에서 제일 좋았던 바욘에 다시 들렀다가

앙코르에서 가장 높은, 해발 67m의 '프놈 바켕'에 왔습니다.

이곳은 일몰 감상의 최적지가 되면서 시간에 맞춰 여행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장엄한 일몰을 마지막으로 11일간의 캄보디아 여행도 끝났습니다. 

크메르 왕국, 이 앙코르 유적의 웅장한 석조 건물들, 내외벽을 장식한 섬세하고 다양한 부조는 

크메르 인들이 만들어 놓은 감동적인 예술이었지요. 

앙코르 유적을 보면서

'동남아의 한 빈국'으로 과소평가했던 이 나라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졌습니다. 

 

꿀렌 2에서 압살라 무희들과 같이 찍은 기념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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