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티베트, 네팔

티벳 1

좋은 아침 2010. 2. 10. 17:58

2002년 7월 23일부터 8월 11일까지 20일 동안 언니와 여행친구 둘에 모두 네 명이 여행사에 의뢰,

가이드와 운전기사, 차량을 동반한 맞춤배낭으로 청뚜와 티벳, 카트만두를 돌았던 여행일기입니다. 

필름 시절의 여행으로 

원판은 없어지고 인화해 놓은 사진도 변색되어 자료로 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에 

아예 여행일기를 올려놓았습니다.

 

 

2002년 7월 23일 화요일 제1일 출국, 인천 → 중국 청뚜(성도)

 

19시 45분 출발, 중국 서남 항공.

고산증에 대비, 48시간 전에 약을 먹어야 효과가 있다기에 티벳 입성을 앞두고

미리 다이아막스 1알을 먹었더니 곧 손과 발, 등줄기가 찌릿찌릿 기분이 나빴다.

청뚜까지 3시간 45분 비행, 현지시간 밤 11시 30분 도착.

중국은 전 국토가 단일시간대. 우리나라와 1시간의 시차가 있다.

한밤중에도 후덥지근한 거리는 전체적으로 잘 다듬어져 있으나 어둡다.

공항 출구에서 중국인 남자가 우리 이름이 쓰인 종이를 들고 있다가

미니버스로 청뚜 호텔에 데려다 주었다.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각 층마다 담당 종업원들이 있어 들고 날 때마다 방문을 열고 에어컨을 틀어 주는데 

그들도 영어를 전혀 못해서 필담으로 의사소통.

 

 

2002년 7월 24일 수요일 제2일 청뚜 

 

아침 식사 후 8시부터 청뚜 시내 관광.

망강루 공원(5위안)에서 무후사(유비와 제갈공명의 사당, 30위안), 도교 사원인 청양궁(1위안)을 거쳐

두보 초당(30위안)까지 돌았다.

늘 생활고와 피난살이로 힘겹게 살았던 두보는 여기 청뚜에서 한동안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부유한 가정의 이백과 여러 가지로 비교되면서 그는 이제 중국의 2대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아이러니.

망강루 공원 초입에 중국 역대 임금의 얼굴을 특징적으로 그려 놓은 것이 재미있었다.

공원 안에서 한가롭게 태극권을 하는 노인들이 많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호텔에 들어와서 잠깐 쉰 다음 오후 3시쯤 다시 나갔다.

 

큰 도시, 청뚜는 자전거 행렬도 장관.

도로는 넓고 잘 구획되어 있지만 무질서한 차량과 인파로 혼잡하다.

중국의 유적은 큰 땅덩어리에 걸맞게 모두 규모가 크니 우리의 오밀조밀한 모습과 비교되었다.

 

 

2002년 7월 25일 목요일 제3일 청뚜  라사('신의 땅')

 

비행 스케줄이 바뀌어 새벽 4시 30분까지 공항에 가야 한다는 현지 에이전시의 독촉에 서둘러 출발 준비.

그에게 여행허가서를 받고 팁을 지불했다.

성도 공항 이용료는 1인당 50원.

 

2시간 만에 라사의 공가 공항 도착, 

붙임성 있는 청년, 티벳탄 가이드 ‘타시’의 픽업 버스로 1시간 30분 걸린 9시 넘어

라사의 '스노우랜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중간에 마애채색석불 구경.

 

 

라사 시내로 들어오면서 본 언덕 위에 포탈라 궁은 장엄, 그 자체였다.

 

조캉 사원 옆 게스트 하우스인 스노우랜드는 시장이 가깝고 움직이기도 좋다.

2인 1실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고 화려한 티벳탄 문양의 커다란 대문 앞에는

공안 1명이 지키고 있다.

잠깐 쉬었다가 오후 4시부터 조캉 사원과 바코르 돌기.

 

 

高地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에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하여 물병을 가지고 다닌다.

가디드 타시와는 내일 아침 9시 30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

 

'타시 레스토랑'에서 점심.

숙소에서 오른쪽으로 100m 걸어 맞은 편 모퉁이의 2층에 있는 작은 가게인데 찾기 어려워서 한참 헤맸다.

먼저 들어온 우리나라 스님에게 네팔 카트만두의 타멜 거리에 있는 ‘짱 하우스’가

깨끗하고 값도 싸다는 숙박 정보를 얻었다. 

(타멜 거리의 마낭 호텔 앞. 네팔 412715, 441536. 1박 900루피)

그래서 출국 전, 현지교포가 운영하는 여행사에 예약한 민박을 취소할 생각. 

(korea @ wlink.com.np , http://www.nepal.pe.kr)

 

고산증인가 가슴이 답답하고 약간 몽롱한 상태.

3650m의 고도 탓에 라면 봉지까지 빵빵해졌다.

오늘 라사는 맑은 날씨.

그 이전에 비가 많이 온 듯 얄룽창포는 거의 도로 높이까지 물이 차서 흘렀다.

 

 

숙소의 게시판에는 여행 경비를 절약하는 여러 가지 팁과 조장이며 사원의 축제 안내,

네팔 비자를 받는 방법 등 여행 안내 메모가 많이 붙어 있다.

‘가려는 사람 붙잡을 때까지 물건 값을 깎으라, 사려는 사람은 자기 입으로 가격을 말할 것이 아니라

상인에게 그의 마지막 가격이 얼마인지를 물어 보라’는 쇼핑 정보가 인상적이다.

8월 1일의 시가체, 7월 30일부터 시작하는 노부링카 사원의 축제는 우리 일정과 맞지 않아 아쉬웠다.

네팔인이 운영하는 한국 식당도 있다.

 

거리에는 많은 장족들이 마니차를 돌리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조캉 앞에서는 승려 예닐곱 명이 모여 있기에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어디선가 공안이 나타나 그들을 흩어 놓았다.

시계 방향으로 바코르(八角街)를 돌다가 작은 마니차와 티벳탄의 8가지 상징적인 문양 

- 파라솔, 승리의 깃발, 흰 소라껍질, 영원의 매듭, 황금 물고기, 연꽃, 보물화병, 법륜이 새겨진 작은 심벌즈를 샀다.

1달러에 약 8元, 우리 돈으로 1元은 약 150원 정도.

 

오후 6시, 조캉(大昭寺) 사원 안에서 승려들의 자유로운 토론 구경.

손뼉을 치며 대화를 나누는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7시는 모든 승려들이 모여 불경을 낭송하고 찬불가를 부르는 예불시간,

그 안쪽 석가모니 부처 앞에는 가타를 바치며 공양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서 공기가 나쁘고 야크 버터 촛불 냄새도 강해서 속이 안 좋았다.

옥상에서는 멀리 포탈라가 보이고 사원 앞에는 오체투지하는 사람들이 내려다 보인다.

한쪽에서 사원을 보수하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오른 쪽으로 70m쯤 떨어진 ‘티벳 커피 앤드 팝’(사천면옥)에서 

김치찌개와 돌솥 비빔밥으로 저녁 식사.

육계장에 닭도리탕, 된장찌개, 사발면, 김치볶음밥 들이 영어로 표시 되어있고 

괄호 안에 설명이 되어 있다.

푸실푸실한 안남미 쌀밥이지만 밑반찬이 괜찮다.

규모가 크고 깨끗하며 종업원들도 영어를 잘 한다.

계산할 때 100원 짜리를 내니 모택동 초상화의 인민복 깃을 만져 보며 진위를 감정했다.

위조지폐가 많아 돌아다닌단다. 

 

히말라야 산맥의 북단, 유라시아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 티벳은 중국 면적의 1/4로 

우리나라 전 면적의 12배가 되는 광활한 고원.

평균고도 3500m에 남쪽은 히말라야, 서쪽은 카라코람, 북쪽에 쿤룬 산맥 등

6000~7000m의 고봉들로 둘러 싸여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며

외부와 격리된 독특한 불교 왕국으로 존재하다가 지금은 중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곳은 그 옛날, 천산 북로 실크로드의 한 길목.

이 오지의 낯선 풍경과 문화에 이끌려 여행사에 위험부담에 대한 각서를 쓰면서 찾아 왔다.

 

 

2002년 7월 26일 금요일 제4일 라사

 

난방이 안 되는 숙소에서 침낭 안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길가에 면한 방이어서 아침 일찍부터 자동차 소리와 뜰을 청소하는 빗질 소리가 요란.

숙소에서는 아침이 제공하지 않는다.

 

오늘 일정은 오전에 포탈라, 오후 드레풍(哲蜂寺 35원) 사원.

다른 한국 팀과 같이 합류하여 다녔다.

 

포탈라는 입장료가 1원인 내국인과 비교하여 외국인은 70원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옥상의 입장료는 별도로 10원, 박물관도 10원을 따로 내야 한다.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생활했던 겨울 궁전, 포탈라.

뒤편으로 들어 간, 공개된 홍궁 몇 개 층에는

보석으로 둘러싸인 역대 달라이 라마의 무덤과 불당이 화려하다.

어두운 내부를 관람할 때는 손전등이 필요하다. 주중 오전에만 개방.

신도들의 시줏돈을 승려들이 빗자루로 쓸어 담고 있었다.

 

 

금정에서 내려다보는 라사 풍경도 좋았고.

 

 

드레풍에서는 특이하게도 부엌을 개방하여 천여 명 승려의 밥을 해냈다는 전날의 규모를 보여 주었다.

 

밤에 비가 많이 왔다.

남쵸 가는 길은 다리가 끊어져 못 간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러나 티벳은 지금이 여행 적기, 여행자들이 많다.

 

 

2002년 7월 27일 토요일 제5일 간덴 다녀오기

 

간덴 사원 행(甘丹寺 35원)

그 오르막의 멋진 길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내내 아팠다.

구토, 설사에 식은땀, 손발은 뜨겁고 위가 쥐어짜듯 아픈 전형적인 고산증 증세.

손끝을 따도 안 되고 진통제와 소화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어 내 몸에 대한 절망감만 생겼다.

사원 안으로 들어 가다가 야크 버터 냄새가 싫어서 혼자 차 안에서 참담한 기분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샤카모니에 송첸 캄포, 파드마 삼바바며 총카파 등 내부의 모습이야 다른 사원과 비슷하겠지만 

키츄 강과 그 계곡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원 돌기, 코라를 못해서 속상하다.

어제 밤에 모처럼 머리를 감은 것이 잘못된 것 같다.

 

오후 2시, 출발 즈음에 탕카 걸이 의식이 있었다.

경전이 쓰여 있는 노란 천 안쪽으로 석가모니 부처가 협시불에 둘러싸인 그림이 천천히 펼쳐진다.

자주빛 가사를 걸친 승려와 많은 티벳탄들이 펼쳐진 탕카에 카타를 던지며 기도했다.

주변에는 중국 홍위병이 파괴한 예전 사원의 잔해가 그대로 널려 있고

몇 개 건물만 겨우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오후에는 세라 사원(색립사)행이 예정되었지만 나는 숙소에서 휴식.

세라 사원에 갔던 사람들도 오후 4시, 문 닫는 시간에 임박해서 제대로 구경을 못했단다.

 

밤에는 가이드 타시를 따라 나이트 클럽 행.

젊은이들 틈에 끼어 나도 무대에 나갔다가 숨이 차서 몇 분을 못 넘기고 의자로 되돌아왔다.

타시는 내일부터 다른 팀을 맡는단다.

 

우리의 새 가이드는 돌치(21세), 기사는 나와(35세). 두 사람 모두 티벳탄.

내일부터는 우리끼리 랜드크루저로 여행을 하게 된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내일 사미에 사원에 다녀오는 것이었지만 

도로 사정이 좋을 때 남쵸에 다녀오려고 일정을 바꿨다.

아침 9시 출발 예정.

 

돌아 오는 모레 저녁에는 '키레이 호텔'에서 7시에 진행하는 민속 공연을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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