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의 일정은 비바람으로 망쳤습니다.
개별적으로 가기에는 너무 번거로워서 트레킹 전문 여행사의 상품, 1박 2일의 '위도와 고군산군도의 말도 여행'에 합류했는데
첫날부터 비바람이 거칠어 위도 행 배는 출항하지 못하고 그래서 군도의 끝에 있는 말도는 포기.
일기예보에 따라 다음날 위도에 가기로 하고 그 대신
선유도의 선유봉과 대장도의 대장봉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선유 1구의
포구에서 시작,
작은 주상절리의 특이한 형태와
팥배나무 꽃을 보며
'옥돌해변 명품데크길'을 걸어갔더니
선유봉 올라가는 데크길 일부가 거친 비바람에 파손되어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가이드의 설득.
그러니 선유봉도 포기.
되돌아나와 대장봉에 가려고
선유대교
밑을 지나
선유 2구의
선착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언제였던가 신시도휴양림에 머물 때, 와서 먹었던 추억의 짬뽕집도 지났네요.
너무 춥고 배도 고픈 시간이었거든요.
곧 망주봉이 나옵니다.
고군산군도라는 명칭은 중심인 선유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여기에 수군 진영을 두고 군산진이라 불렀고 조선 세종이 진영을 내륙으로 옮길 때 지명도 따라가면서 그곳은 군산이 되고 여기는 古군산이 되면서 현재는 인근 섬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이 되었지요.
모든 섬들은 원형으로 모여 있는데 그중 신시도가 가장 크고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들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의 물줄기가 모이는 이 고군산군도는 예부터 동북아 해양문물 교류의 중심지.
망주봉 아래에는 1123년 송나라 휘종이 고려에 파견한 국신사, 서긍에 대한 영접행사가 있던 곳으로 사신을 맞던 군산정, 임금의 임시거처였던 숭산행궁지, 용왕에게 제사를 올리던 오룡묘와 객관들이 있어 고려 해양역사문화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했지요.
우리는 '해안누리길' 58개 중의 하나이며
군산 구불길의 8길 중
옥돌해수욕장 - 선유대교 - 선유도 관광안내소 - 선유도해수욕장 - 초분공원 - 장자마을 - 대장봉 - 선유도해수욕장까지 걸었습니다.
최치원이 잠시 머물렀다는 인연으로 포토존이 된 조형물을 지나
선유도해수욕장과
장자교스카이워크를 건너
장자도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대장도로 들어갔지요.
왼쪽의 숲길로 들어서서
숲길,
구불길 포지를 보면서
뒤에서 올라간
대장봉의 정상입니다.
선유봉 앞의 장자대교, 그 앞의 붉은색이 보이는 장자스카이워크에
작은 다리로 연결된 장자도와 대장도,
멀리 무녀도와
동쪽으로 저 멀리 고군산대교, 가운데에 망주봉과 선유도해수욕장이 보입니다.
이런 대단한 풍경이 짙은 비구름 속에서 모두 회색으로만 보이기에 많이 아쉬웠네요.
하산길에는 전설 담긴 장자할매바위를 보면서
정면, 급경사의 가파른 나무 계단으로 내려왔습니다.
빗속에 피어난 동백과
등꽃이 아름다웠네요.
옛 조상들의 일상을 그린 듯, 재미있는 벽화 길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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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에서 솔섬의 일몰을 보려고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격포항으로 왔습니다.
여기서는 변산 마실길 4코스인
'해넘이 솔섬길'의 일부,
봉화봉 둘레길을 돌아
상록해수욕장과
언포를 지나
솔섬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었습니다.
물이 빠져나간 솔섬입니다.
이 섬은 우리나라에서 화산활동이 가장 활발하던 중생대 백악기(약 8000만 년 전)에 만들어졌답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한 화산재와 용암이 굳어지면서 생겨난 땅은 바닷물과 해풍에 깎이고 물길이 트이면서 육지와 분리되어 지금과 같은 섬이 되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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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까지 운항이 안 될 정도로 비바람이 거칠었기에
거의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몰은 막바지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네요.
부안 읍내에는
서림공원이 있어
그 안에 매창의 시비가 있다기에 들렀지요.
허균, 한준겸, 권필, 유희경 등 당대의 문사들과 교류를 맺으면서 그들과 시를 주고받았던 기생 매창.
그가 연인이었던 유희경에게 보낸 시조입니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난 오락가락하노라
매창이 죽은 후 허균은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哀桂娘)'라는 애도의 시를 남겼습니다.
다음날 아침, 거리를 산책하며 다시 만난 매창의 시조.
그러면서 갑자기 신석정문학관이 생각나서 출발시간을 앞두고 급히 찾아왔습니다.
개관시간이 먼 아침 8시.
건물 앞에 내걸린 시인의 모습을 보며
그 앞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고
시인의 뜰에 있는
그의 시를 읽으며 그의 맑은 감성에 동화되는 시간이었지요.
돌아오는 길, 숙소까지 차를 태워준 현지인의 친절에도 감동했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