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문경새재 주변, 2

좋은 아침 2022. 9. 8. 23:12

남한강 목계 다리를 건너서 우회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목계나루터에 서 있는 신경림의 시비에 왔습니다. 

 

 

지난번 문경새재에 왔다가 놓친 '목계장터'입니다.

그러나 흐린 날씨, 역광에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비에 새겨진 시 구절이 잘 보이지 않았네요.

 

 

목계 장터/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자연스럽게 다듬은 화강암 대리석에 판화가 이철수의 글씨로 

앞면에는 '목계장터'가, 뒷면에는 시인의 대표작과 시집 이름들을 음각해 놓았습니다.

 

 

위에 나오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 '가난한 사랑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시인이 노래한 목계나루, 목계장터는

조선 초 중부 내륙의 물산과 해안 지역의 해산물이 오가면서 보부상의  상거래가 큰 시장이었으나

1973년 목계대교가 준공되면서 쇠퇴, 지금은 그 터만 남았습니다. 

시인은 예전에 번성했던 이 장터의 조락을 향토색 짙은 시어들로 전개하면서

뿌리 뽑힌 민중의 애환을 표현했지만  

'가난한 사랑 노래'에서 그 비극적인 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하고 따뜻한 삶에 대한 믿음으로 승화됩니다. 

 

 

이 길은 목계나루터에서 중앙탑까지, '충주 중원문화길'의 1코스입니다. 

 

 

목계나루터에서 이동, 벼 이삭이 익어가는 들판을 지나

 

 

요즘 보기 드문 너와지붕의 개인 작업실을 보면서

 

 

우람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문경 남단의 

 

 

봉천사에 왔습니다.

 

 

절 앞, '봉천대'에서 바라보는

 

 

아래 마을 모습이 평화롭습니다.

 

 

절 주변의 소나무 숲과 

 

 

웅장한 바위들,

 

 

 

 

 

 

개미취 밭이 좋았네요. 

 

 

 

아담한 절과 향 짙은 소나무, 큰 바위와 보랏빛 꽃들로 소박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주는 풍경이었지요. 

 

 

 

아직은 개화되지 않은 꽃들이 많지만 

올해 9월 11일부터 10월 초까지 개미취 축제가 열리는 시기에는 이 일대에 환상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답니다. 

 

 

 

개미취는 어머니가 가꾸시던 내 유년의 꽃밭에서도 많이 보던 꽃이었지요.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김영주의 소설, '객주'를 기리는 '객주 문학길'이 보입니다. 

 

 

오늘의 숙소는 조령산 자연휴양림, '조령 3 관문'이 지척인 2인용의 '숲 속의 집'입니다. 

이 휴양림에서 제일 좋은 위치, 해발 600m 지점의 몇 채 안 되는 이 집들은 예약하기  힘들어서

역대급 태풍 예보에도 포기할 수 없었고 또 그만큼 만족스러웠네요.

 

 

이 휴양림의 아래쪽, 전에 묵었던 오래된 숙소와는 달리 새로 지은 입식 시설에

신선한 편백나무 향이 짙었고

 

 

테라스에서는 숲을 바라보며 족욕도 할 수 있었거든요.

 

 

여행자들이 내려간 늦은 오후,  3 관문 뒤쪽에 조성된 정원에서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즐거움도 컸네요.

 

 

누각의  통행문 천장에 그려진 

 

 

용 두 마리의 화려한 채색도는 여러 번 왔어도 처음 발견한 거라서 새삼스러웠고 

 

 

태풍 뒤끝의 맑은 날씨,

 

 

성벽에서 바라본 

 

 

투명한 풍경도 좋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휴양림에서 '새재길'의 끝, '고사리 마을'까지 걸었습니다. 

조령 3 관문을 지나 충청도로 접어들면서 출장길의 관리들이 머물던 숙소, '신혜원'이 있던 자리입니다. 

 

 

고사리 마을로 들어서면 '이화학당'에서 운영하는 '고사리 수련원'과 

 

 

'신선봉'이 보이고

 

 

암행어사 박문수의 '어사또가 쉬어간 자리' 뒤로는

 

 

마을의 수호목인 500년 수령의 서낭 나무가 있습니다. 

 

 

고사리마을에서 하늘재로 왔습니다.

신라 아달라왕 3년(156년)에 개통, 지금의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대원지에서 경북 문경시의 관음리까지 연결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랍니다.  

당시에는 계립령, 고려시대에는 대원령으로, 조선시대 때 한훤령이라 부르다가

이후 한울령, 하늘재로 이름이 바뀌었고

조선 태조 때 '새재길'이 열리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던 고개입니다. 

 

 

이 지역은 예부터 백두대간을 축으로 한 남한강 중상류 지역의 교통의 중심지이며 군사적 요충지로

삼국이 서로 뺏고 빼앗기던 각축의 땅이었지요. 

 

 

'차량 통행금지'의 하늘재로 들어가는 길은 

 

 

숲이 깊었네요. 

 

 

초입의 '하늘재 역사, 자연관찰로'와 

 

 

작은 오솔길에

 

 

분홍빛 물봉선이 활짝 피어 있는

 

 

2km 거리의 기분 좋은 숲길.

조선 후기에 조성된 백자 가마터를 지나면

 

 

‘김연아 소나무’라는 특별한 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많이 사용하는 '비엘만 스핀'이나 '비엘만 스파이럴' 동작을 하는 김연아의 모습이라네요. 

우리의 영웅에 대한 찬사인가요?

 

 

짧은 산책 끝에 탐방안내소 도착.

 

 

여기는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포암산과 탄항산 사이에 있는 하늘재입니다. 

 

 

입산 시간에 제한이 있는 포암산을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백두대간의 '하늘재' 표지석이 나옵니다. 

고갯길이기는 해도 울창한 숲에서는 아쉽게도 아랫동네를 조망할 수가 없었네요.

 

 

하늘재에서 내려오는 길에 본 충주 미륵리 원터는

고려 초기에 충주와 문경을 잇는 대원령(하늘재)에  출장길의 관리들이 머물렀던 숙소, '미륵대원'이 있던 자리로

조선 시대 조령에 조령원, 동화원, 신혜원이 개통되면서 점차 그 기능을 잃고 

 

 

지금은 개망초가 우거진 건물터에

 

 

무너져 내린 돌들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망국의 한을 품고 이 하늘재를 넘어 금강산에 은거했던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지금의 충주 미륵리에 세웠다는, 경주 석굴암을 닮은 10.6m 석조여래입상은

그동안의 보수를 끝내고 곧 공개할 예정이랍니다.  

동행했던 누이동생, 덕주공주는 이 석조여래입상이 마주 보이는 월악산 영봉 아래에 덕주사를 짓고 마애불을 조성하면서 

오랜 세월, 신라의 부흥을 염원하는 기도를 올렸다지요. 

 

 

그 석조여래입상을 모신 절, '미륵세계사'의 토담이 예뻐서 한 장 찍고

 

 

주 산지임을 알리듯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는 과수원을 보면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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